| 저자 | 강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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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왼발의 구도
해의 동심(同心)이 무릇 불의 비 같던 날,
갈림길에 우뚝 서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지
누구에게 총을 쏘고
누구에게 꽃을 건네야 할지
왼발은 몰랐다
무릎 안에서 자기 얼굴 찾으려
어제 꿈의 진창 속을 여전히 뒤뚱거리는 왼발
시계를 봐도
밤낮 구분 못하는 천치(天痴)의 기둥
나란히 서 있던 오른발이 벌컥 화를 내며
장딴지가 올라붙었다
이리가 옳고 저리가 틀렸으니
너의 저리는 그저 갈 수 없는 저기일 뿐이라는 것,
오른발이 방향을 잡을수록
자꾸 허공으로 들어 올려지며
오른발의 신념과
오른발의 과오를
오늘 아닌 다른 날에서
불쑥불쑥 끄집어 저기로만 향하는 나의 왼발
계속 나아가며 연신 시계를 가리키는 오른발
그럴수록 반대 방향으로 헛돌며
오른발을 축 삼아 허공에 원을 그리는 외로운 왼발
마음의 눅은 때들이 얼핏 설핏 초록빛이었다가
앞만 보던 눈이 정수리로 올라붙어
이내 붉고 노란 해의 심줄이 발끝의 흑점으로 찍히던 그날,
웬 여자의 전화를 받았다
내 왼 무릎 안쪽에서 밤새 울고 있었다는,
오래전 죽은 춤꾼이었다
시곗바늘이 줄창 왼쪽으로 돌고 있으니
오늘은 다만 기나긴 어제의 짧은 저쪽일 뿐이라고도 했다
짓눌린 날개
사거리가 내려다보이는 12층
팔다리를 쫙 펴
새 흉내를 냈다
옷자락에 티브이가 걸려 넘어져
사람 말소리는 그대로되,
수직으로 직직 그어진
푸르고 빨갛고 노란 선들만 화면에 선명하다
사람 말은 알아듣겠으되,
사람 꼴은 검은 면과 색색의 선으로 분해되니
말뜻을 알아들었다는 수긍이
짐짓 앙큼한 술수 같고
면식 있던 모든 꼴들이
우주 어딘가에서 분사됐다 점멸하는
빛의 요분질일 터,
미세 화소 하나하나가
점점이 별다른 말의 입자로 맥놀이하다가
돌연 소리가 지워지며 선들도 사라진다
까맣기만 한 평면에 평소 비치지 않던 내 모습만 돌올하거늘
필시 몸에 전기가 도는 걸 테다
화면 속에서 떠들던 사람들이 몸속에 들어와
갑론을박 주리를 틀고
그 주파에 맞춰
두 귀가 펄럭펄럭 춤추는데,
중심을 찾는 일렁임인지
중심 없이 흐트러지는 잔망인지 헷갈려할 때,
날개 달고 날아오르려는 사람이
검은 액정 속에서 돋을새김 기어 나온다
스스로 짊어진 날개가 버거운 건가
날개의 찬란함이 스스로를 옥죄어
네 발로 길 수밖에 없는 건가
비상의 환희보다는
비상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홀로 지친 몰골이
음화처럼 떠 있는 공중의 섬에서
날개를 펼쳐야 내려갈 수 있는가
날개를 접어야 걸어갈 수 있는가
두 발을 귀에 대고 몸 안의 전파 소릴 들어봤다
D메이저에서 G메이저로 옮아가는 기본음이었다
배우
마음이 쑥밭 되었을 때
외려 낯빛이 명징하다
말하지도 움직이지도 않을 때
풍채가 쩌렁쩌렁 주변을 품는다
나무이고자 하지 않으나
나뭇잎들이 펄럭이고
강물이고자 하지 않으나
몸 안의 수맥이 바다로 열린다
눈물 흘리지 않으니
이편이 마냥 흐느끼고
무심히 낮은 말을
평서문에 칼로 베듯 얹으니
온몸이 간지러워 웃겨 죽을 지경
이 사람이 곧 다른 사람이고
움직임 또한 다른 움직임의 여울이고 여일(餘日)일 뿐,
무엇이든 그것이고자 하지 않는다
그렇게 모든 그것이고
그것의 다른 얼굴이고
얼굴의 다른 표정이다
제 몸 벗어놓고 그림자가 말하게 하라
그림자 기워 입고 다른 몸으로 움직여라
나는 그를 배우라 이른다
배우는 자기를 기억하지 않는 사람
나는 나의 다른 사람일 따름,
배우는 기억이 벽에 박힌 못인 양
다른 옷 갈아입곤 다른 옷을 거기 건다
쑥밭일 때 외려 낯빛이 수려하다
마음은 그저 탈 벗어놓고 쉬기 위한 빈 공간
새로 논을 풀었다고 쑥밭이라 불리는 마을이 북녘에 있다지 않나
불 지르지 않아도
스스로 불이 되는 나무들의 습성을 배우는 안다
배우지 않았어도 배우니까 안다
다 알아서 무지하고
다 해봐서 백치인 그
웃음이란 탈을 쓰고 오래 울었다
배꼽이 터져 제 몸이 제 무덤인 줄 알았다
배우는 제 기억을 벽에 박혔다 빠진 못 자리라 여긴다
눈을 좁쌀만 하게 줄여 그 안을 본다
쑥밭이 쑥도 없이 구멍 반대쪽에서 끝없다
낯빛은 죽었다 살았거나 곧 죽을 것처럼 기어이 또 찬란하다
죽은 다음에라도 자기가 누구인지
그 구멍에 입술을 대 피리 불어 알리리
탄생 이전을 부풀리는 공기의 알몸으로
또렷이 사라지리
자선시
십자(十字) 그늘
희고 검은 건물들 사이를 걷다
새어든 빛의 길쭉한 나신에 다리가 움칠 걸렸다
건물의 끝이 더 높이 솟구친다
새하얘진 맨땅바닥이 절벽의 아가리거나
보행 중에 발목을 붙드는 걸인의 손목 같다
착각이었을 것이나,
마음에서 백억 분의 일초 동안 죽음을 겪은 다음
착각은 곧 백억 년 만에 재림한 신의 기별일 터,
흰 기둥으로 드러누운 빛의 중심에선 정오 시침 소리
올려다본 건물 모서리가 좌우로 길어진다
다리를 붙들고 머리끝까지 칩떠 오른 소름이
하늘에 띄운 백 년 전 내 얼굴
태어나본 적도 없이 이미 죽은 그가 양팔을 벌려
빛 속에서 그늘 아래로 뛰어내리며 붉은 색 바람을 날리니
그림자 속에서 옷을 벗듯 빠져나온 건물들 사이엔
해의 분진을 핥으며 문득 사람의 말을 지껄이려는,
눈빛이 청색 유리처럼 으깨진
병든 개 한 마리
중음(中陰)의 사령은 늘 죽음 직전의 청명을 품었다
왼손 미사
백지 위에서 오른손은 한갓 환상통의 여운
공기 속에 뿌리내린 투명한 풀잎
왼손으로 붓을 들어 점을 찍는다
쨍그랑 유리 깨지는 소리 안에서 끄집어낸 침묵을,
점을,
점점이
오래 바라보다 눈이 감긴다
왼 눈꺼풀 안쪽엔 푸른색 바다
눈꺼풀 바깥엔 갈색 탁자
오른손이 사라진 자리에 끼워 넣은 왼손
사방이 역방향으로 휘어져
흉부에 꽂힌 세계
오른 눈꺼풀 안쪽엔 붉은색 의자
눈꺼풀 바깥으론 해변을 달리는 초록색 기차
점의 반대편에 점을 또 하나 찍는다
바다 속으로 돌진하는 기차
탁자 위에 올라 천천히 걸어 다니는 의자
오래 감았다 뜬 눈엔 노란색 빗금이 수직으로 번진다
땅과 하늘 사이 곡선을 지우는
오른손의 그림자
왼손으로 움켜쥔 첫 번째 점
강직이 일어난 시체처럼 다시 펴지지 않는다
해와 달이 자리를 바꾸는 한낮

부산 출생. 1992년 《현대시세계》 등단.
시집 『처형극장』 『그리고 나는 눈먼 자가 되었다』 외 5권, 산문집 『콤마, 씨』 외 3권이 있음.

절름발이의 춤
ㅡ 강정의 시
강정의 최근 시는 ‘몸짓’ 혹은 ‘춤’에 사로잡혀 있다. 첫 시집 『처형극장』이 ‘음악’과 ‘소리’의 감각을 강렬하게 환기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그가 ‘음악’의 자리에 ‘몸짓’이나 ‘춤’을 놓고 시의 움직임을 포착해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시적 언어나 형식의 변화라기보다 시적인 정념을 표출하는 방식의 이동에 가깝다. 시인은 ‘몸’ 자체를 사유한다. 시인의 말처럼, “마치 조립식 인형처럼 몸의 각 부위들을 따로 놀게 하는 동시에, 그 따로놀음 자체가 특정을 감정을 전체적으로 드러내는 행동의 총화”로써 ‘몸’을, ‘몸’의 패턴화되고 자동화된 움직임 자체를, 응시한다. ‘몸짓’이야말로 “온전히 살아 있는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죽음의 진심, 그리하여 우주의 뿌리이기 때문”(「시인의 말」, 『그리고 나는 눈먼 자가 되었다』, 문학실험실, 2019)이다. 그러므로 ‘춤’을 추는 일이, 시를 쓰는 일이, 강정 시인에겐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일종의 ‘숨’과 같다.
몸의 기관, 그 중에서도 ‘왼쪽’에 강정 시인의 시선이 머문다. 잘 알려져 있듯이, ‘왼쪽’은 ‘오른쪽’과 대비되며 일상적 경험 속에서 오래토록 부정적으로 인식되어 왔다. ‘옳음과 그름’, ‘성(聖)의 세계와 속(俗)의 세계’, ‘정상과 비정상’의 구도에서, 왼쪽은 은폐되거나 불구이거나 거추장스러운 한쪽에 불과했다. 이점에서 오른쪽의 짝패가 아닌, 왼쪽 그 자체에 대한 움직임을 온전히 바라보는 일은 익숙한 삶에 대한 반동이자, 은폐된 몸이 보내는 침묵의 신호를 해독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백지 위에서 오른손은 한갓 환상통의 여운
공기 속에 뿌리내린 투명한 풀잎
왼손으로 붓을 들어 점을 찍는다
쨍그랑 유리 깨지는 소리 안에서 끄집어낸 침묵을,
점을,
점점이
오래 바라보다 눈이 감긴다
ㅡ 「왼손 미사」 부분
오른손의 부재와 왼손의 존재가 선명히 부각되고 있는 시이다. “오른손이 사라진 자리에 끼워 넣은 왼손”은 온 세계를 “역방향으로 휘어져”버리게 만든다. 있는 듯 없는 존재로서, 왼손이 가진 잠재력과 가치는 시에서 ‘백지’ 위에 찍힌 ‘점’으로 표현된다. 작고 조용한 ‘점’에서 시인은 ‘쨍그랑 유리 깨지는 소리’를 듣는다. 투명해서 언제나 잘 보였지만, 투과될 수 없었던 왼손의 목소리를, 어떤 큰 소리보다 강력한 에너지를 전달하고 있는 왼손의 ‘침묵’을 듣고 있는 것이다.
‘왼손’이 찍은 ‘점’은 일종의 시작이다. 그것은 선으로 확장가능하고, 면으로 가득 채워질 수 있으며, 이 세상을 전복할 수 있는 의미심장한 글자의 형상으로 진화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점’은 고요하게 외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그 동안 은폐되어 왔던, 혹은 부정되어 왔던 사물이나 존재, 약자나 소수자의 ‘침묵’만큼 크고 무겁다. 침묵이 침묵으로 발언할 때, 하나의 ‘점’이 ‘점점이’ 번져나갈 때, 완고한 기성의 세계는 느슨해진다. 단 하나의 태양처럼 자리를 지켜온 절대 권력의 힘은 다름과 약함을 포용하는 절대 사랑의 힘으로 변모한다. 시인은 기도한다. ‘오래 감았다 뜬 눈에’ 이전과 다른 세계가 놓여 있기를, 침묵과 함께 우리 모두의 침묵이 함께하기를.
무릎 안에서 자기 얼굴 찾으려
어제 꿈의 진창 속을 여전히 뒤뚱거리는 왼발
시계를 봐도
밤낮 구분 못하는 천치(天癡)의 기둥
나란히 서 있던 오른발이 벌컥 화를 내며
장딴지가 올라붙었다
이리가 옳고 저리가 틀렸으니
너의 저리는 그저 잘 수 없는 저기일 뿐이라는 것,
오른발이 방향을 잡을수록
자꾸 허공으로 들어 올려지며
오른발의 신념과
오른발의 과오를
오늘 아닌 다른 날에서
불쑥불쑥 끄집어 저기로만 향하는 나의 왼발
계속 나아가며 연신 시계를 가리키는 오른발
그럴수록 반대 방향으로 헛돌며
오른발을 축 삼아 허공에 원을 그리는 외로운 왼발
ㅡ 「왼발의 구도」 부분
인용한 시는 ‘오른발’과 ‘왼발’의 대비를 통해 ‘오른발’로 상징되는 세계의 편향성을 지적한다. 앞서, 「왼손 미사」에서는 ‘왼손’이 ‘오른손’의 자리에서 찍은 ‘점’으로 익숙하고 경직된 세계의 균열을 일으켰다면, 「왼발의 구도」에서는 직접적으로 ‘오른발’의 폭압에 의해 짓눌린 ‘왼발’의 무참함과 외로움을 노래한다.
‘오른발’과 ‘왼발’은 중심과 주변, 이성과 비(非)이성, 강자와 약자, 다수와 소수 등의 상징으로 시에서 부각되고 있다. ‘천치(天癡)의 기둥’이란 표현이 말해주듯, ‘왼발’은 선천적으로 어리석고 못난 존재로 폄훼되어 왔다. 그 모습을 비아냥거리는 ‘오른발’. ‘오른발’의 ‘방향’은 옳다. ‘오른발’의 ‘신념’은 틀리지 않는다. ‘오른발’은 ‘오른발’이기에 반성 없이 또는 부정 없이 ‘오른발’을 다시 옮긴다. 그러나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중심과 주변은 누가 나눈 것이며, 소수는 왜 다수로 인해 피해를 감수해야만 하는가. 이런 물음 없이 이쪽과 저쪽, ‘이리’와 ‘저리’를 구획 짓는 ‘과오’ 또한 ‘오른발’에서 비롯된 것 아닌가.
여기서 ‘시계’는 이러한 ‘과오’를 여실히 보여주는 상징물로 기능하고 있다. 잘 알려져 있듯, ‘철도’와 함께 ‘시계’는 대표적인 근대의 상징물이다. 이 기계의 리듬 속에서 사람들은 시간에 쫓기기 시작했고, 시간이 곧 돈이었으며 시간을 지키지 않으면 부도덕하거나 실패를 경험한다고 배우기 시작했다. 일상생활의 리듬뿐 만 아니라 ‘시계’는 신체의 리듬을 균질화했다. 생활 계획표의 삶처럼 우리는 지금도 배가 고프지 않아도 밥을 먹어야 하고, 잠이 오지 않아도 잠을 자야 한다. 심지어 시간의 낭비는 게으름으로 비판받는다. ‘시계’의 탄생은 이렇듯 각기 다른 삶의 방식을 매우 균질하게 재단하고 설정해 속도감 있는 움직임을 선도해 나갔다. 기계의 리듬은 ‘발전’과 ‘편리’라는 미명 아래, 자연의 리듬, 개인의 리듬 나아가 우주의 리듬을 잠식해 나간 것이다.
이 ‘시계’를 ‘오른발’은 연신 가리킨다. 그것이 우리의 나아감이자 옳은 방향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른발’의 방향과는 다른 쪽에서 ‘외로운 왼발’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허공에 원을 그리고 있다. 정확히 말해 헛돌고 있다. 이 모습은 ‘오른발’의 안중에 없다. 그러나 ‘오른발’과 ‘왼발’의 부조화는 결국 멀리 나아가지 못한다. 몸의 균형을 잃고 무너지기 십상이다. 이 사실을 ‘오른발’만 모른다. ‘천치(天癡)의 기둥’은 그 점에서 ‘왼발’이 아니라 ‘오른발’이다. ‘오른발’의 미래는 어떤 그림일까. 어떤 노래일까. 차라리 ‘오른발’과 ‘왼발’로 상징되는 이분법적 세계로부터 멀리멀리 날아가버리는 것은 어떨까.
사거리가 내려다보이는 12층
팔다리를 쫙 펴
새 흉내를 냈다
옷자락에 티브이가 걸려 넘어져
사람 말소리는 그대로되,
수직으로 직직 그어진
푸르고 빨갛고 노란 선들만 화면에 선명하다
사람 말은 알아듣겠으되,
사람 꼴은 검은 면과 색색의 선으로 분해되니
말뜻을 알아들었다는 수긍이
짐짓 앙큼한 술수 같고
면식 있던 모든 꼴들이
우주 어딘가에서 분사됐다 점멸하는
빛의 요분질일 터,
미세 화소 하나하나가
점점이 별다른 말의 입자로 맥놀이하다가
돌연 소리가 지워지며 선들도 사라진다
ㅡ 「짓눌린 날개」 전반부
12층 높이에서 ‘새 흉내’를 냈다는 진술에서, 이 시는 두 발을 지상에서 떼어내고 싶은 순간적인 충동을 보여준다. 두 발로 지탱해나가는 세계의 불공평함, 편향성, 그러니까 절름발이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 세계에서 사람은 사람으로, 충분히 그 의미를 획득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성 때문일까. 강정 시인은 이 시에서 사람이 아닌 새처럼 날개를 펼쳐 아래로 내려가고자 하는 선택을 ‘운명’처럼 여기며, 스스로의 방향을 고민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새처럼 날개를 펼친 이후의 일이다. 새처럼 날려고 했으나, ‘옷자락에 티브이가 걸려 넘어져’버린다. ‘티브이’에서 소리는 나오지만 화면이 나오지 않는다. ‘사람말소리는 그대로’이고 ‘사람 말은 알아듣겠’는데, ‘사람 꼴’은 ‘검은 면과 색색의 선’으로 분해되어 그 형체를 알아볼 수가 없다는 시적 진술 속에서, 우리는 사람의 형태, 즉 겉으로 보이는 모양새가 얼마나 쉽게 허물어질 수 있는지, 또 얼마나 가벼운 것인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점점이’ 입자로 변하는 ‘사람 꼴’이란 「왼손 미사」에서 ‘왼손’이 서툴게 그린 하나의 ‘점’처럼, 다시 작고 고요한 하나의 ‘점’으로 소멸할 수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점’은 ‘오른쪽’과 ‘왼쪽’을 무화시킨다. ‘점’은 ‘점’으로 연결되고 확장해나가며 무한해질 수 있다. ‘점’은 가장 작고 나약해보이지만 가장 크고 강력한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온 우주의 근원인 것이다. 시에서는 ‘점’들이 다 사라져 사람의 소리조차 지워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역설적으로 사람의 소리가, 사람의 꼴이 본디 ‘점’으로 돌아간 것임을 뜻하기도 한다.
까맣기만 한 평면에 평소 비치지 않던 내 모습만 돌올하거늘
필시 몸에 전기가 도는 걸 테다
화면 속에서 떠들던 사람들이 몸속에 들어와
갑론을박 주리를 틀고
그 주파에 맞춰
두 귀가 펄럭펄럭 춤추는데,
중심을 찾는 일렁임인지
중심 없이 흐트러지는 잔망인지 헷갈려할 때,
날개 달고 날아오르려는 사람이
검은 액정 속에서 돋을새김 기어 나온다
ㅡ 「짓눌린 날개」 후반부
‘점점이’ 사라져간 ‘티브이’ 속의 사람들. 그리고 ‘티브이’ 앞에 ‘돌올’하게 서 있는 ‘나’를 통해, 시인은 ‘전기가 도는 걸’ 느낀다. 다시 말해 기계의 죽음을 통해 사람, 즉 ‘나’ 자신의 살아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기계 속에서 사라진 사람들이 자신의 몸속에 들어오자 ‘두 귀가 펄럭펄럭 춤’을 춘다. 온갖 난잡한 소리들을 포용한 육체의 감각은 날개짓하며 날아오르는 새의 몸짓처럼 가볍다. 그것이 ‘중심을 찾는 일렁임’인지 ‘중심 없이 흐트러지는 잔망’인지는 사실,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중심’과 ‘중심 없음’이 동시에 한 몸에 얽혀 있다는 그 자체로 ‘두 발을 귀에 대’는 경이를 우리가 목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진수는 강정의 시집 『그리고 나는 눈먼 자가 되었다』를 읽으며, ‘눈멀고 귀먹은 미친 광대의 춤이 우주적인 몸의 리듬, 즉 대지 순환의 절대적 흐름’과 맞닿아 있으며, 그 리듬 속에서 삶과 죽음이 넘나들고 있다고 정리한다. 그렇다. 강정의 시는 춤이자 음악으로 여기저기를 몸을 바꿔 흘러다니고 있다. 한 가지 잊지말아야할 점은, 그 몸을 바꾸는 일이 어렵지 않은 이유이다. 강정의 시가, 춤이, 음악이, 하나이면서 여럿인 데에는 크고 작든, 강하고 약하든 분별없이 사람을 사랑하고,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에 대한 윤리이자 삶에 대한 윤리의식이 바탕해 있기 때문이다. 이점이 “이 사람이 곧 다른 사람이고 / 움직임 또한 다른 움직임의 여울이고 여일(餘日)일 뿐”(「배우」 부분)과 같은 시를 탄생시킨다. 시인 강정을 날마다 다른 몸짓으로 춤추게 한다. 앞으로 강정의 춤이 어떤 형상일지 기대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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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녀 ■ 시인 2007년 《세계의문학》 등단. 시집 『시소의 감정』 『양들의 사회학』이 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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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20년 02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