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2022
Extra Form Output
저자 박진임 

 

 

 

 

시인이여, 외나무다리 위를 홀로 가는 구도자여!

  

  

 

   

 

  어두워지는 하늘에는 새들이 갈 길을 서두른다. “오오, 저녁 산새처럼 찾아갈 고향길은 어드메뇨?”하고 유치환 시인이 고향에서 노래했듯 저녁이면 새들은 둥지로 돌아가기에 바쁘다. 해가 지고 날이 어두워지는가 하면 곧 달이 돋아난다. 달은 스멀스멀 희여멀건한 자태를 드러내며 집으로 돌아가는 이의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고 그 발길을 재촉한다. 그런 시간, 낮 동안의 부산한 활동들이 멈추는 저녁 시간에 홀로 외나무다리를 걸어가는 이가 있다면 그의 모습은 자못 외롭고도 처량해 보일 것이다. 어디로 가는 것인지, 무엇을 이정표 삼아 걸어가는 것인지 알 길이 없지만 그는 걷는다.

  외나무다리 위를 걸어가는 외로운 선사의 모습을 그린 고시조 텍스트를 보자.

    

   잘 새는 나라들고 새 달이 도다온다

   외나무다리로 호을노 가는 져 선사야

   네 절이 엇마나 하관되 원종성(遠鍾聲)이 들니나니

  

   *

 

   잠잘 새는 날아들고 새 달이 돋아오른다

   외나무다리로 홀로 가는 저 선사야

   네 절이 얼마나 멀기에 종소리가 멀리서 들리는가

   

  고시조 원문과 함께 현대어로 번역된 바를 살펴보니 종장에 이르자 무언가 어색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종장은 새로이 해석하고 싶어진다. "네 절이 얼마나 크기에 먼 종소리가 들리는구나"하고. ‘하다’라는 우리 옛말은 ‘크고 넓다’로 해석할 수도 있다. 절이 멀어서 종소리가 멀리서 들리는 것이라면 이는 지극히 당연한 진술이다. 단순한 사실의 설명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절이 아주 큰 절이고 절이 크다 보니 절의 규모에 맞게 종도 크다고 생각하게 되면 그 느낌이 달라진다. 큰 종을 울리는지라 그 소리가 멀리까지 퍼져나가고 있다면 그 종소리는 예사롭지 않은 의미를 지니게 된다. 더구나 그 절과 종이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징적인 것이라면 텍스트의 의미는 한결 깊어지게 된다. 이를테면 선사가 마음에 품고 있는 불심의 세계가 한 채의 둥그렇고 큰 절로 형상화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럴 때, 종소리는 멀고 아득하고 그래서 더욱 은은하게 느껴질 것이다.

  새가 잠들 곳을 찾아 날아들고 달이 하늘에 떠오르는 시간에 다리 위를 홀로 걸어가는 선사의 모습을 그려보자. 그것도 외나무 다리 위를 그는 걸어간다. 그 정경이 허허롭고 적막하게 느껴지는가? 그 텍스트에서 적막함을 읽을 수 있다면 당신은 지상에 속한 사람이요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리라. 세상살이에 부대끼며 사람의 정에 목말라하는 독자이리라. 그 정경이 자유롭고 그윽하게 그려지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초월적인 세계를 꿈꾸는 이일 수도 있겠다. 외나무다리를 홀로 걸어간다는 것, 그것도 해 저물고 달 떠오는 시간대에 그렇게 걸어간다는 것은 정녕 쓸쓸한 일일 터이다. 그러나 당신이 마음속에 절 한 채를 품고 있다면, 영혼의 나라를 상징하는 절 한 채를 지니고 있다면 당신은 외로울 것도 쓸쓸할 일도 없다. 누군가가 자신의 가슴속에서 울려 오는 멀고도 희미한 종소리를 들으며 걷고 있는 장면에서는 초월성을 느낄 수 있다. 그림이라면 구도자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 될 것이고 시라면 영성을 찾는 시적 텍스트가 될 것이다. 초월과 구원을 지향하는 마음이 거기 담기게 된다. 그처럼 고적한 시간을 기다려 사람 없는 곳으로만 걸어가는 이의 모습이야말로 종교적 구도자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종교적 초월을 보여주는 텍스트, 구도의 길을 재현하는 텍스트는 간결하여 그 텍스트가 필요로 하는 소품은 몇 가지에 불과하다. 외나무 다리, 선사, 종소리……. 두어 개의 단순한 시적 소재를 통하여 완성되는 조촐한 텍스트에서 주제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고독이란 예술가의 운명이기도 하다. 종교적 구도자만이 세상으로부터 멀리 떠나 홀로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초월을 꿈꾸는 예술가는 모두 고독을 노래한다. 홀로 있어 세상 만물이 들려주는 내밀한 사연들에 귀 기울이게 되고 밤을 도와 상상의 날개를 편 채 우주 공간을 유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상상의 시간과 공간을 위하여 고독의 시간을 자원하는 것이 예술가의 초상이라 할 수 있다. 샤를 보들레르의 「여행으로의 초대」에서 볼 수 있듯 “그 먼 나라”에서는 자유로운 영혼들이 순한 꿈을 꾸게 될 것이다. 여행의 끝에 다다르게 될 그 먼 곳을 찾아 시인과 예술가들은 길 떠나기를 꿈꾸는 자들이다. 저물녘 절을 찾아 외나무다리를 건너가는 선사의 여행은 저녁이라는 시간대에 전개되고 있어 고독감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그처럼 좁은 길만을 골라 걸으며 마음의 고향을 찾아가는 모습은 오늘날 우리 시인들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윤원영 시인의 「혼자 사랑」을 보자.

    

   매일이 전쟁이었으니 다음 생은 돌이기를

   속살대는 강물 곁에 비스듬 누운 채로

   풀잎을 날아가는 새를

   홀로 사랑할테니

 

   사람의 꽃밭 따위 기웃대지 않기를

   먼지나 뒤집어쓰고 굴러다니지 않기를

   마음결 모두 맡기는

   강물도 순한 강물 곁

  - 윤원영, 「혼자 사랑」

 

  세상은 함께 어울려 부대끼면서 살자고 재촉할 터이다. 그러나 윤원영 시인은 그럴수록 홀로 떨어져 앉아 무심한 돌처럼 굳어 있는 모습을 기리고 있다. 풀잎, 날아가는 새, 속살대는 강물…… 그들을 벗 삼기 위해서 “홀로”이기를 다짐한다. 전쟁, 사람의 꽃밭, 먼지 뒤집어 쓰기, 굴러다니기…… 그 대척점에 놓인 순한 강물을 찬양한다. 그런 순한 강물에 마음결을 모두 맡겨둔 채 강물 따라 흐르듯 살아가자고 재촉한다. 순하고 고요한 강물 곁에 앉은 채 지나온 시간을 가만히 되돌아보는 시인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멀리서 들려오는 종소리를 가슴에 품은 채 외나무 다리를 건너는 선사의 모습이 텍스트 위에 겹쳐 보이는 듯도 하다.

  괴테는 말했다.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는 자, 종교도 가진 것이다.” 바흐나 모차르트의 선율, 그리고 한 줄의 시! 예술과 종교는 서로 닮았다. 예술도 종교도 모두 한 채의 절이라고 한다면 그 절은 모양새가 같은 절일 것이다. 그 절에는 마음을 고요하게 만드는, 굵고 그윽한 소리 내는 종 한 채가 모셔져 있을 것이다. 저물녘이면 원종성이 울려 퍼진다. 그 원종성을 들을 수 있어 시인은 오늘도 걷는다. 종소리 울려 오는 곳이 어디인지, 그 절이 얼마나 먼지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걷는다. 잘 새가 날아들고 새 달이 돋아오를 때, 오히려 그때를 골라 먼 길을 나선다. 부러 외나무다리를 찾아 디디며 물을 건너간다. 작대기 하나 짚고 홀로 걷는다. 홀로 걷는 자만이 진정한 시인이다.

 

 

 

 

                                        

 

    1) 김천택 편, 홍문표·강중탁 역주, 『청구영언(상)』(명지대학교 출판부, 1995), 40면.

 

 

 

 

 

 

 

 

 

 

 

 


 

박진임.jpg

박진임 ㅣ

2004년 《문학사상》 평론 등단. 연구서 『비교문학과 텍스트의 국적』 『Narratives of the Vietnam War by Korean and American Writers』, 평론집 『두겹의 언어』 『세이렌의 항해』 등이 있음. 현재 평택대학교 국제지역학부 교수.

 

 

 

ㅡ

2022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