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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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지명 

     

 

 

 

 맹목적 열두 살

     

      

     

 

 

  밤이 나비주름 커튼을 들어 외면한 감정을 하나씩 펼친다

 

  말하지 않는 여행자 같은

  말하며 흥분하는 제작자 같은

  사람을 만난다면

  붉나무 한 그루 자라겠지

 

  처음 내가 아는 공기는

  푸른 단어 몇 개와 분홍 심장이

  집 안을 장악했지

  가끔 소나기용 말이 쏟아졌지만

  흐르는 사랑으로

  나무는 높이를 자랑했지

 

  함께 걷다가

  나의 왼쪽과 오른쪽을 바꾸어 걷다가

  나와 동떨어져 오른쪽과 왼쪽을 걷고 있는

  엄마 아빠

  그런 날은 마른 폭우를 맞는 기분이었지

  나는 자줏빛 입술로

  거실을 떠다니는 말을 주웠지

  내 자양분이 되는 시고 짠맛의 그 말들을

 

  도시 별밭을 지나고 나면

  도시 사막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알아듣기 어려운

 

  마음의 등고선에

  이상 기온이 뿌리를 내렸다

  나쁜 말을 내뱉는 엄마와

  나쁜 말을 받아먹는 아빠는

  서로 다른 종족의 말 같았다

  한파와 열파의 층위가 다른

  예측 불허의 기압골 때문

  우리는 식탁 위 습 먹은 김처럼 쭈글쭈글 고요했다

 

  불을 품은 얼음이 되길

  얼음을 녹이는 불이 되길

  

  나는 어린 신의 역할을 자처했다

  시키지 않는 청소를 하고

  시키지 않는 동생을 잘 보살피며

  시키지 않는 성적을 잘 받아오고

 

  싫지만 내 감정의 솜털들만 만지작대던

  그날들, 가을 타는 붉나무 아래 묵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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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명  l

2013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집 『쇼펜하우어 필경사』 『다들 컹컹 웃음을 짖었다』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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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호 신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