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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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박진임 

 

 

 

 

영웅과 딴따라를 애도하다

  

  

 

   

 

    白日은 西山에 지고 黃河는 東海로 든다

    古來英雄은 北邙으로 드단 말가

    두어라, 物有盛衰니 恨할 줄이 이시랴

 

    한낮의 해는 서산에 지고 황하는 동해로 흐른다

    옛날의 영웅은 북망산으로 들어간다는 말인가

    두어라, 만물은 성하면 또 쇠하는 법이니 한탄할 것이 있겠느냐

- 최충사(崔沖仕)1)

 

   고려 시대 최충의 시조로 알려진 작품이다. 『청구영언』에는 저자 이름이 최충사로 기재되어 있어 그렇게 옮겨본다. 만물은 성할 때가 있는 것처럼 쇠할 때가 있게 마련이며, 사람의 삶도 마찬가지인지라 언젠가는 마감할 날이 온다. 영웅조차도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는 없어 백일이 서산에 지듯 황하가 동해로 들듯 북망으로 든다. 물유성쇠는 자연의 이치일진대 그를 한탄하여 어찌하겠느냐고 시인은 읊는다. “한할 줄이 이시랴”는 말은 자신을 타이르는 말일 뿐 시조를 읽으며 영웅이 사라져가는 데에 대한 깊은 한탄의 마음을 역설적으로 느끼게 된다.

   우리 시대의 한 영웅의 부고를 다시 전하며 그 영웅에게 바치는 애도를 보여주는 텍스트가 있다.

 

    

    복희라는 본이름을 아는 이는 거의 없다

    땀과 눈물 곰삭혀서 웃음을 보시하는

    해주산 백발 딴따라 송해로 기억할 뿐

 

    장돌림 무대 위에 털고 씻는 이산(離散) 시름

    뱃살과 주름살을 분장처럼 받아 안고

    정년을 적령으로 바꾼 백 살 어름 유랑청춘

  

    예닐곱 살 꼬마 신사 되바라진 악수에도

    무릎 한쪽 굽혀가며 호형호제 하는 남자

    이 땅의 모든 여인이 애인이고 누이였다

 

    딩동댕 실로폰 소리 일요일을 들깨우면

    박치 음치 몸치까지 벼락스타 되는 그날

    얼굴도 미륵만 같아 사자후가 쟁쟁하다

- 임채성, 「딴따라 만다라」

 

   텍스트의 주인공은 무공을 이룬 군인도 아니고 대단한 정치적 지도력을 발휘한 인물도 아니다. 우리 굴곡 많은 현대사의 굽이굽이를 누비며 대중들의 희로애락의 노래들을 지휘한 연예인, 송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일찍이 그 인물이 지닌 문화적 의미를 간파하여 오민석 교수가 그를 주제로 삼은 문화 연구서를 발간한 바 있다. 경제계나 정치권의 거물들이 자신의 자서전을 발간하거나 누군가가 전기를 써주는 일은 흔한 일인지라 뉴스거리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대중 문화에 종사하는 인물을 그 시대의 문화적 상징으로 읽어내면서 그의 삶을 기록하는 일이란 참으로 예외적이고 새로운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그 인물의 개인적 경험, 그가 지니고 있는 사소한 기억의 조각들은 결코 유실되어서는 안될 우리 시대 문화 유산임에 틀림 없다. 일제 강점기의 설움, 해방의 감격, 전쟁과 분단의 고통, 그리고 재건의 역동성……. 그 모든 시대적 특징을 대중들은 ‘유행가’라는 이름의 가요를 통해 표현해 왔고 그 노래들에 자신들의 삶을 투사해 왔던 것이다.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무수히 다양한 인물들의 사연과 그들의 노래를 텔레비전을 통해 안방에 전달해온 인물이 송해라는 예명의 그 사람이다. 더 이상 영웅을 기대하기 어려운 격변의 시대, 그런 우리 시대의 영웅이라 불러줄 만하지 않은가? 그의 생애는 곧 한국 현대사, 그중에서도 현대 문화의 변천 과정에 대한 증언이라 할 수 있다. 그의 회고는 한 편의 구술사로 남게 되는 것이다. 그의 삶에도 땀이 배어 있고 눈물 자국이 가득할 것이다. 그러나 일요일 아침이면 웃음 가득한 얼굴로 마이크를 들고 모두 함께 노래하자고 박수치면서 무대에 오르던 인물. 그가 북망으로 든 그날은 우리 시대 우리 대중 문화의 한 페이지를 넘긴 날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오늘날 현대시조 시인들은 고려 시대, 조선 시대 시조 텍스트의 전통을 이어받으며 온고지신의 자세로 새로운 상상력을 개진해 나간다. 바로 지금 여기, 우리 현실의 장면들을 핍진성 넘치게 재현하는 것이 현대 시조의 사명임을 자각하고 있다. 대중 문화의 한 아이콘을 기억하는 임채성 시인의 텍스트는 그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 우리 조상들은 지극히 높고 곧은 선비 정신을 지닌 이를 영웅으로 우러르며 그 인물에 찬탄을 보내고 그의 죽음을 애도하곤 했다. 낙락장송과 매화와 대나무를 노래하곤 했다. 그처럼 홍진으로부터 멀어져서 고독한 선비 정신을 지니는 것도 필요할 터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홍진 속에 뛰어들어 함께 호흡하면서도 삶의 자세를 잃지 않고 곱게 가다듬는 것도 또한 그만큼 값진 일일 것이다. 모든 사람들과 호형호제하는 인물, 모든 여인들이 애인이고 누이인 인물, 노래하는 모든 이로 하여금 자신이 대중의 별이라고 여기게 만드는 인물. 그 인물을 재현한 텍스트, 우리 시대 영웅의 초상화를 다시 들여다본다.

 

 

 

                                        

 

    1) 김천택 편, 홍문표·강중탁 역주, 『청구영언(상)』(명지대학교 출판부, 1995), 5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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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임 ㅣ

2004년 《문학사상》 등단. 연구서 『비교문학과 텍스트의 국적』 『Narratives of the Vietnam War by Korean and American Writers』, 평론집 『두겹의 언어』 『세이렌의 항해』 등이 있음. 현재 평택대학교 국제지역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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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