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박진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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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오려, 애오려
요즘 법정 스님이 남긴 법문과 글들을 읽노라니 삶이 한결 가볍게 느껴진다. 주먹을 꼭 쥐고 세상에 태어났다가 떠날 때에는 그 손을 펼친 채 떠나가는 것이 우리의 한 생이라는데 무엇에 얽매여 애태운단 말인가? 법정 스님의 책에서 시조 한 편 인용된 것을 보고 기꺼이 옮겨 적었다. 조선 시대 송순의 시조이다.
십 년을 경영하여 초가삼간 지어내니
나 한 칸 달 한 칸에 청풍 한 칸 맡겨두고
강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놓고 보리라.
ㅡ 송순
강산을 병풍처럼 뒤에 둘러놓은 채 집 안에는 달과 청풍만 들여 조촐히 살아가는 이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법정 스님은 자신의 거처, 불일암에 송순이 바라보던 그 달과 그가 느껴보던 청풍을 그대로 다시 모셔 들였을 것이다.
최근 들어 국가평생교육원의 K-MOOC 강좌를 듣고 있다. 강혜선 교수의 〈조선 문인들이 사랑한 나의 집〉이 있어 배움이 재미있다. “어디에 살아도 내 집을 사랑한다면 내 집 이름은 애오려(愛吾廬) 입니다”하고 강교수는 설명한다. 애오려, 애오려! 그 어여쁜 말은 도잠(陶潛)의 시 「산해경을 읽다 (讀山海經)」에서 온 것이라는 점도 그 강의에서 배웠다. 시 「산해경을 읽다(讀山海經)」 일부를 그대로 옮겨본다.
여름에 풀과 나무 무성하게 자라나서
집을 에워싸고 나뭇가지 우거졌네.
새들은 깃들 곳 있어서 즐겁고
나도 내 오두막을 사랑한다오.
孟夏草木長 繞屋樹扶疎
衆鳥欣有托 吾亦愛吾廬
나무가 주변에 우거지면 새가 날아들게 마련이다. 나무와 새를 벗 삼아 사노라면 작은 오두막을 지녔다 한들 궁궐이 부러울 것인가? “애오려, 애오려“ 뇌며 “나 한 칸 달 한 칸 청풍 한 칸” 하고 읊조릴 만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 중 애오려를 뇔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될까? 아파트라는 이름의 건물이 현대인의 거처가 되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냥갑처럼 서로 닮은 집에 살고 있다. 그나마 젊은이들은 혼자 힘으로는 그 오두막 한 칸 장만하기도 어려워진 시절이다.
규격화된 집이 아파트인지라 그 집들은 비슷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현관문을 닫으면 각기 폐쇄된 공간에 들어박힌 채 이웃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기도 어렵다. 마치도 아라비안나이트에 나오는 40인의 도적들이 똑같이 생긴 독안에 숨어 있는 모습 같다.
서숙희 시인은 현대인의 획일화된 삶을 그려내기 위하여 아파트에 주목한다. 밤이 되면 모두 각자의 처소에 돌아와 창에 커튼을 드리운 채 칩거하는 그 모양새를 「아파트 야화」라고 이름 지어 그려낸다. 천일 야화와 아파트 야화 사이, 그 두 텍스트의 내포항이 서로 겹친 부분은 어떤 것일까? 닮아 있는 것들에 속해 있으면 들키기도 어렵다. 구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자신의 고유한 욕망을 스스로 설계할 수 없게 되고 타자의 욕망을 모방하고 흉내 내면서 그것을 자신의 욕망인 양 여기는 것이 현대인이라고 한다. 동일한 구조의 아파트 한 칸씩을 차지한 채 서로 유사한 삶을 살아가면서 경쟁을 멈추지 않는다. 그것 또한 현대인의 모습이다. “하나같이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것, 시인은 그것은 교란을 일으키는 장치라고 이른다. 현대인들은 균등한 비중을 지닌 고독을 안고 살아간다. 그 고독의 공간을 아파트로 그려내면서 시인은 그중 가장 외로운 심장을 파먹으려 드는 어느 존재를 상상한다. 아마도 그믐밤이면 그는 아파트 야화를 완성하기 위하여 누군가를 찾아 나설 것이다.
저 사내들의 태생은 철근과 콘크리트
깍두기 머리에다 딱 벌어진 어깨들이
단단히 스크럼을 짜고 칼같이 도열했지
하나같이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건
가장 외로운 심장을 파먹으며 찾아드는
잔혹한 슬픔의 순례를 교란하기 위해서지
밤이 되면 창마다 커튼을 드리우고
수척해진 야성을 완강하게 가린채
순장된 고독의 허리를 뜨겁게 껴안곤 하지
그믐달이 사내들의 쇄골에 걸린 밤엔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을 끌고 온
눈 감은 세헤라자데에게 마른 등을 기대지
ㅡ 서숙희 「아파트 야화」
서숙희 시인은 탄식한다. 고유성을 잃고 균질화된 시대에 대한 탄식이다. 불안과 고독이 일상화된 시대에 대한 비판일 수도 있다. 함께 탄식할 수밖에 없다. 오두막 하나 지닌 채 나무와 새, 혹은 달과 바람과 함께 소박한 삶을 이어가던 날들로부터 우리는 얼마나 멀리 와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 여기에서 애오려 하련다. 애오려. 애오려! 아보카도와 망고 씨앗을 물병에 넣어 싹 틔우고 작은 화분에 옮겨 심으며 뇌어본다. 애오려, 애오려!

박진임 ㅣ
2004년 《문학사상》 등단. 연구서 『비교문학과 텍스트의 국적』 『Narratives of the Vietnam War by Korean and American Writers』, 평론집 『두겹의 언어』 『세이렌의 항해』 등이 있음. 현재 평택대학교 국제지역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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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