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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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병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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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달의 시인] 이병률
  신작시: 몸에게 / 아무것도 아닌 놀이 / 한 달
  자선시: 김포공항 역 / 기차표

 
  [시인론] 선우은실 "역설적 여행"

 

 

 


신작시


 

 

 

 몸에게    

  

 
   

 

  하루 한 시간 의무나 형벌처럼

  눈을 감고 걸어야 한다면

 

  뒤로 걷는 일은 없을 것이며

 

  누구를 미행하더라도 놓치기 쉬울 것이며

  나처럼 눈을 감고 걸어야 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도 없을 것이며

 

  하루 한 시간 어떤 절대처럼

  나무로 서 있어야 한다면

 

  그렇게 서 있는 나를 뚫어지게 비추는 빛에

  그대로 긁힐 것이며

 

  다리가 하나뿐인 나를 마주칠 것이며

  내가 나에게 말문을 열어 비로소 인사할 것이므로

 

  그렇게 하루 꼭 한 번

  온몸에 할 말이 남아 있지 않게

  속을 발라낼 수 있다면

 

 

 

 

 

 

 



 

 

 아무것도 아닌 놀이

     

     

  

 

  어느 누가 작곡한 음악은

  다른 사람이 작곡한 것으로 수백 년 동안 알려져 오다

  나중에야 누구의 작품인지 밝혀졌다지

 

  어떤 작곡가는 자신이 작곡한 곡을

  타인의 곡으로 알리고는 그 이유를

  세상의 평가가 두려워서라고 했다지

 

  어느 작가는 세상이 자신을 비추질 않자

  또 다른 이름으로 활동을 하고 나서야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는데

   

  내가 한 일은 가만히 그곳에

  손이 지나가고 바람이 지나가고 하는 게 다인 것처럼

  거기 그대로

 

  그것은 그대로 이름도 달지 않아서 영원인 것이고

  그것이야말로 위치가 제대로인 자리인 것이고

 

  겹으로 두 세계를 살게 되더라도

  그 둘의 전부를 가질 수는 없는 것이고

  가져봤자 고작 굴렁쇠 같은 동그라미 하나 물려받는 것이고

 

  비가 내린 뒤

  풀은 서서히 마르고 있고

  지금도 마르는 중이고

  원래 제자리에서

 

 

 

 

 

 

 



 

 

 한 달

        

 

   

   

  내 손톱을 단 한 번 깎아준 당신이 며칠 만에 떠나고

 

  그다음 손톱을 깎을 때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다시 그다음 손톱을 깎아야 할 때

  

  손톱은 당신이 깎아준 다음에도 왜 자라는 것인지

 

  자라는 것까진 좋은데 왜 그걸 또 잘라내야 하는지

 

  무엇이 스쳐 지나갔는데 무엇이 스쳐 지나간 것인지

 

  나만 많이 가졌고 나에게만 여전히 남은 것인지

 

  내 손을 덮던 당신 손의 기억을 실처럼 끊을 날도 있겠지마는

 

  한 달이 지났다는 사실을 알리기라도 하려는 듯

 

  막을 수 없이 손톱달이 솟아올랐습니다

 
  

 

 

 

 

 


근작시


 

 

 

 김포공항 역

   

   

 

   

  헤어질 때 서로 멀어져가는 이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는 이들을 보았다

  둘은 서로에게 최선을 다한 듯

  멀찌감치 방향을 잡고 선 채로 전화기를 든 채

  그들은 애틋하게 그러고 있다

  아쉬운 것 같았지만 그런대로 곧 만날 날이 있을 것이다

  헤어질 때 서로 마지막인 듯 사진을 찍는 부족이 있다

 

  헤어질 때 힘껏 끌어안았다가 떨어지는 두 사람 몸에서

  나뭇가지가 쩍 하고 갈라지는 소리를 들었다

  도대체 순간이라는 말과

  멀리라는 말이 무슨 말이냐고 호통이라도 치듯

  그 소리가 역 안에 울려 퍼졌다

  두 사람은 그 소리에 놀라 서로의 몸에서 손을 풀고도

  양팔을 내리지 못하고 그렇게 서 있었다

  서로 헤어질 때 나무 부러지는 소리가 나는 부족이 있다

     

                                                 

 

 

 

 

 



 

 

 기차표

  

   

       

  

  저녁에 같이 만난 사람이

  저녁을 다 먹고 헤어지면서 기차표 한 장을 준다

  오늘 책장에서 책을 꺼내 읽는데

  책장 사이에서 오래된 기차표가 나왔다고 한다

 

  뭐라도 주고 싶었다며

  6년 전의 날짜와 먼 나라 독일의 도시의 출발지와 목적지가 적힌

  

  Von: 드레스덴

  Nach: 라이프찌히

 

  나도 책갈피로 쓰겠다고 마음을 먹고 기차표를 들고나오다가

  그 표를 어디에 또다시 쓸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

  기찻길 차단기 앞에 괜히 오래 서서 오지 않는 기차를 바라보다가

  더 사랑해야 할 몇몇 얼굴들을 생각하다가

  

  기차표에 적힌 출발일이 내일 하고도 아침인지도 몰라

  가로등 가까이로 가서 기차표를 꺼내보았다

  

  내가 내일 사라져서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소문을 만들어야 할지도 모르겠으며

  이 기차표는 사용하고 또 사용할 수 있다는 가정으로

  짐을 싸야 할지도 모르겠으므로

 

  Von: 여기

  Nach: 영원

 


 
     

 

 

이병률 I

199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바람의 사생활』 『바다는 잘 있습니다』 『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 등이 있음. 〈현대시학작품상〉 〈발견문학상〉 수상.

 

 

 

 

 

 


시인론 / 선우은실


 

 

 

 

역설적 여행

ㅡ 이병률 작품론

  

 

  

  

 여행

 ‘여행’이란 명사가 곧잘 ‘떠난다’는 동사와 결합되는 것은 그것이 일탈의 경험으로부터 자아를 쉬게 하거나 자신을 구속하는 현실에서 벗어나는 행위로서의 요구를 내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행’을 현실의 무게와 책임으로부터 벗어남으로써 ‘진정한 자신’을 찾는 여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무리는 아니겠다. 그러나 정말 그러한가? 여행은 낯선 곳에서 ‘진짜 자아’를 찾는 여정인가?

 괴로운 현실로부터 벗어나려는 목적과 자아 찾기라는 목표가 여행의 ‘시작’을 추동하기는 하지만 그것의 성공적인 수행까지 보장하지 않는다. 즉 여행은 자신을 이방인으로 만듦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낯설게 탐구하게 만드는 사건이며 결국 오리무중의 상태로 회귀하는 것이다. 어떤 깨달음과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에 대한 주체의 바람과 필요를 전제하되 그것의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나아가 오히려 뭔가를 찾으려는 여정에서 결국 그 무엇도 찾을 수 없었음의 깨달음만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대를 배반하는 여정이 곧 여행이다.

 이병률은 이렇듯 어딘가 뼈아픈 자기 분실의 상기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는 것으로서 여행의 역설을 다룬다. 만약 여행이 삶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일에 다름 아니라 하더라도, 적어도 이병률에게 그런 의미의 ‘여행’은 자기로부터 영영 멀어지지 못하는 것을 절감하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삶의 진실을 보는 것이며 이는 시인으로서 문학함과 멀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과거 시인은 한 에세이에서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내가 하고자 하는 문학과 아주 먼 거리에 있음을 알고 힘이 들어, 그 일로부터 도망을 치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고 고백하면서 “문학은 나를 살게 하는 ‘도구’였고, 나를 연명하게 하는 ‘찬란’이었다”1)고 말한 바 있다. 이때 “문학”을 ‘문학-하기’를 위한 혹은 그것을 하는 것으로서 삶 살기의 성찰을 얻으려는 여행이라 할 수 있지는 않은가. 길을 찾기 위해 필연적으로 길을 잃어야만 하는 ‘여행’의 유비적 사건으로서, ‘(문학)하기’를 갈구하면 할수록 하려던 것으로부터 멀어지고만 있다는 성찰을 가능케 하는 지향이지는 않은가. 달리 말하면 문학은 그런 방식으로만 찾아오는 깨달음이자 시인에게는 인생과 크게 다르지 않은 행위성(정확히는 인생을 이끄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병률의 시에서 자주 환기되는 ‘여행’이란 테마는 ‘여행-문학’에서 ‘여행-문학-인생’으로 확장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삶/문학의 비유로서 ‘여행’이 필연적 자기 배반성 내지는 역설을 지니고 있다는 점인데, 이는 영영 오지 않는 미래로서의 시간, 즉 바라는 인생이 오(지 않)는 시점으로 성찰된 바 있기에 일부 참고한다.

    

 그때 난 인생이라는 말을 몰랐다/인생이라는 말이 싫었다 / (……) / 나는 영원히 그대가 오게 되는 것인 줄도 몰랐다 // 그런데 오늘 나한테 인생이 찾아왔다 / 굉장히 큰 배를 타고 와서는 / 많은 짐들을 내 앞에 내려놓았다 / 이제 앞으로는 그 많은 짐들을 짊어지고 /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하나 풀어봐야 한다고 했다 // (……) / 예고 한 번 없이 인생이 여기 구석까지 찾아왔다.

ㅡ「지나가는 바람」 일부(『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 문학동네, 2020)

    

 그의 가장 최근 시집에 수록된 「지나가는 바람」에서 화자는 한평생 몰랐고 모르고 싶었던 “인생”이라는 것이 어느 날 느닷없이 찾아왔다고 말한다. 이것은 ‘영영 오지 않을 어떤 시간’ 즉 인생의 진위를 깨닫는 어떤 시점 같은 것을 아무리 기다려도 만날 수 없는 까닭에 대한 단서다. 그것은 이미 왔기 때문에 영영 오지 않는 것이 될 수 있고, 미래지향적 방향성으로만 존재할 때에야 가치 있기 때문에 영영 도달해서는 안 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어떤 성찰을 얻고자 하는 인생이라는 기나긴 여행에서 삶(혹은 삶의 의미)이란 궁극적으로는 이미 도달해있거나, 얻으려는 것에 도달하지 않았을 때에야 의미있다는 점에서 자기 모순성과 역설적 깨달음을 내재한다.

  

 

    

 멈추기-여행

 그러니 시인에게 길 찾기로서의 여행이란 필연적으로 길 잃기일 수밖에 없으며, 애당초 떠나지 않아도 이미 여기에 당도해있는 것이므로 출발하기도 전에 멈추어야 할 때가 있음을 포괄하는 의미의 ‘길 잃기’다. 궁극적으로 인생의 의미가 무엇이겠냐는 질문에 대해 신작 시에서 유독 멈춰 있기를 선택하는 화자가 등장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하루 한 시간 의무나 형벌처럼 / 눈을 감고 걸어야 한다면 // 뒤로 걷는 일은 없을 것이며 // 누구를 미행하더라도 놓치기 쉬울 것이며 / 나처럼 눈을 감고 걸어야 하는 / 사람을 만나는 일도 없을 것이며 // 하루 한 시간 어떤 절대처럼 / 나무로 서 있어야 한다면 // 그렇게 서 있는 나를 뚫어지게 비추는 빛에 / 그대로 긁힐 것이며 // 다리가 하나뿐인 나를 마주칠 것이며 / 내가 나에게 말문을 열어 비로소 인사할 것이므로 // 그렇게 하루 꼭 한 번 / 온몸에 할 말이 남아 있지 않게 속을 발라낼 수 있다면

ㅡ「몸에게」 전문

 

이 시는 두 번의 가정(假定)법을 쓰고 있다. 이때 가정되는 상황은 모두 움직임이나 떠나는 것에 제약을 거는 것과 관련돼 있다(“하루 한 시간 의무나 형벌처럼 / 눈을 감고 걸어야 한다면”, “하루 한 시간 어떤 절대처럼/나무로 서 있어야 한다면”). 심지어 이러한 제약은 절대적 규약을 가지고 있어서 “하루 한 시간” 동안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으로서 제시된다. 앞서 ‘여행’이라는 행위가 현재의 상태에 불만족하여 그것으로부터 떠나오거나 거리를 두고자 하는 바람이 반영되어 있다고 언급했던 내용을 상기할 때, 이런 가정은 화자가 자신이 원하는 것과 정 반대의 상태에 놓여있음을 알려주는 표지가 된다. 즉 화자는 어떤 무제약 속에서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기에 보지 않기, 멈추기를 바라는 것일 테다.

 그런데 무엇이든 보고 얼마든지 움직이는 지금의 상태로는 어떤 것을 충분히 볼 수도 없고 속엣말을 완전히 쏟아낼 수도 없는 모양이다. 두 번의 가정된 상황 안에서 화자는 보이지 않기에 걷고 있는 길 자체가 정방향이 되리라 예측하고(“뒤로 걷는 일은 없을 것이며) 뭔가를 놓치고자 하며(“누구를 미행하더라도 놓치기 쉬울 것이며”) 타인에 자기를 투영해 자신을 발굴해내려는 시도에서 멀어지고자 한다(“나처럼 눈을 감고 걸어야 하는 / 사람을 만나는 일도 없을 것이며). 즉 화자에게 눈을 감는 것으로서의 제약은 보는 것이 삶을 더욱 제한하므로, 보려하지 않을 때 삶을 더 넓게 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역설적 성찰을 드러낸다. 나아가 ”나무“처럼 서 있음으로 하여, 즉 어디론가 떠나지 않고 우두망찰함으로 있을 것을 선택함으로써 자신에게 더 귀기울일 수 있고 그런 만큼 충분히 말을 쏟아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떠나지 않아야 자신을 구속하는 것으로부터 떠날 수 있다는 방식으로 ‘여행’이란 사건은 가정되고 있다.

   

 어느 누가 작곡한 음악은 / 다른 사람이 작곡한 것으로 수백 년 동안 알려져 오다 / 나중에야 누구의 작품인지 밝혀졌다지 // 어떤 작곡가는 자신이 작곡한 곡을 / 타인의 곡으로 알리고는 그 이유를 세상의 평가가 두려워서라고 했다지 // 어느 작가는 세상이 자신을 비추질 않자 / 또 다른 이름으로 활동을 하고 나서야 /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는데 // 내가 한 일은 가만히 그곳에 / 손이 지나가고 바람이 지나가고 하는 게 다인 것처럼 / 거기 그대로 // 그것은 그대로 이름도 달지 않아서 영원인 것이고 / 그것이야말로 위치가 제대로인 자리인 것이고 // 겹으로 두 세계를 살게 되더라도 / 그 둘의 전부를 가질 수는 없는 것이고 / 가져봤자 고작 굴렁쇠 같은 동그라미 하나 물려받는 것이고 // 비가 내린 뒤 / 풀은 서서히 마르고 있고 / 지금도 마르는 중이고 / 원래 제자리에서

ㅡ「아무것도 아닌 놀이」 전문

    

 마치 바로 직전에 언급한 시의 형식에 바치는 이름 같은 「아무것도 아닌 놀이」라는 제목의 시에서 ”가만히 그곳에“ 있는 것을 앞선 시와의 연속선상에서 읽어 볼 수 있다. 어디론가 꼭 떠나지 않아도 여행이 수행되는 것임을 알 때, 시인의 여행은 가장 완고하게 멈춤으로서 가능해진다. 그저 그 자리에 있는 것은 그저 자리보전을 한다는 의미도, 방향성을 상실한다는 의미도 아니다. “이름도 달지 않아서 영원”이라는 말은, 그 어떤 강박과 구속의 명명을 부여받지 않은 채 그저 ‘있음’으로 인해 가장 원하는 것이 되리란 성찰을 담는다. 즉 ‘여행’을 통한 성찰은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되기로 하여금 가능한 것이다.

 

 

    

 종결으로부터 시작되는 여행

 이처럼 이병률의 ‘여행’이란 사뭇 역설적이고 반어적인 형태로만 가장 그 의미 가까운 것으로 말해질 수 있다. 이는 여행의 끝마침을 목격하는 두 편의 시에서 보다 구체적인 장면으로 그려진 바 있는데, “헤어질 때 서로 멀어져가는 이의 모습을 / 사진으로 찍는 이들을 보았다”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김포공항 역」이 하나의 예다. 이 시에서 화자가 관찰하고 있는 두 사람은 여행을 마치고 헤어지는 길인 것 같다. 그런데 그 두 사람의 여정의 종결‘에서부터’ 시를 시작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미 ‘여행’은 시작되었다. 종결이 시작을 촉발한다는 점에서 이병률의 역설적 여행의 원리는 이 순간에도 작동 중이다.

   

 저녁에 같이 만난 사람이 / 저녁을 다 먹고 헤어지면서 기차표 한 장을 준다 / 오늘 책장에서 책을 꺼내 읽는데 / 책장 사이에서 오래된 기차표가 나왔다고 한다 // (……) // 기차표에 적힌 출발일이 내일 하고도 아침인지도 몰라 / 가로등 가까이로 가서 기차표를 꺼내보았다 // 내가 내일 사라져서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 소문을 만들어야 할지도 모르겠으며 / 이 기차표는 사용하고 또 사용할 수 있다는 가정으로 / 짐을 싸야 할지도 모르겠으므로 // von: 여기 / nach: 영원

ㅡ「기차표」 일부

   

 「기차표」 역시 무언가 종결된 시점에서 시작되는 시다. 누군가가 ‘나’에게 건넨 기차표는 이미 그 유효가 다 된 것이다(“책장 사이에서 오래된 기차표가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시인의 시적 성찰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누군가의 끝난 여정을 표증하는 것은 시인에게 너 어딘가 훌쩍 떠나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물론 이때 ‘떠나라’는 정언이 지금 이곳에서 멀어지라는 것이나, 실제 운동성을 가진 무언가를 하라는 것과는 다른 것임을 우리는 지금까지의 시 읽기를 통해 의미화한 바 있다. 또한 애초에 효력이 다한 기차표로 여행을 떠난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불가능성을 가정한 가능태로 기능하는 한, 이는 일종의 역설을 행하라는 의미에 더 가깝다. 마치 이런 역설의 행위로서 삶의 성찰이자 ‘여행’을 시작하려는 듯 화자는 효력이 끝난 기차표를 여러 번 “사용할 수 있다는 가정”을 시도하려고 하며, 그 출발지와 종착지는 각각 “여기”에서 “영원”으로 설정된다. 이는 기실 여기로부터 영영 떠돌겠다는 의미이겠다. 시인이 물으면 물을수록 모르겠는 삶의 의미와 시 쓰기를 탐문함에 여기에 가장 잘 붙들려 있을 수 있는 방법으로 늘 어디론가 떠난다는 ‘여행’을 시도하듯, 그 시도가 멈추지 않아야만 비로소 ‘여행’이 가능해진다는 듯 말이다. *

 

 

                                                

  1) 이병률, 「글쓰는 사람들이 없다면 세상은 글을 쓰는 사람 숫자만큼의 환자들이 넘쳐날 것」, 『문학동네』, 2019년 가을호.

   

 

 

 

 

 

 

 

시인론-선우은실.png

선우은실 I  

201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문학평론 등단. 2021년 대산창작기금 수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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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