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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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박진임 

 

 

 

 

 

디아스포라 시조: 시조, 국경을 넘다

  

  

 

   

   鐵嶺 놉흔 봉에 쉬여 넘는 져 구름아

   孤臣寃淚를 비 삼아 띄여다가

   님 계신 九重深處에 뿌려볼가 하노라

 

   *

 

   철령의 높은 봉우리에 쉬어 넘는 저 구름아

   이 외로운 신하의 원통한 눈물을 비로 만들어 띄워다가

   임(임금) 계신 깊고 깊은 궁궐에 뿌려보면 어떠하겠는가.

   

  이항복이 광해 폐모 사건으로 북청으로 귀양 가는 도중에 읊은 시조라고 한다. 후에 광해군이 이 시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알려져 있다. 정든 고국을 떠나가는 이의 설움이 텍스트 전편에 스며 있다. 강원도 회양군과 함경남도 안변군 사이에 있는 큰 재가 철령이라고 하는데 이제 그 고개를 넘어서면 지세는 험난해 질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그 고개를 넘어간다는 것은 본격적인 유배의 길에 들어선다는 것을 뜻한다. 시적 화자는 고개 높은 곳에 이르러 바짝 가깝게 보이는 구름 조각에 자신의 설움을 투사하고 있다. 자신이 나고 자란 정든 땅을 떠나서 머나먼 이국 땅에서 새 삶을 전개해나간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힘든 일일 것이다. 그러나 운명의 힘에 의하여, 혹은 자발적인 개척 정신으로 익숙한 삶의 터전을 벗어나 새로운 영토에서 새 삶을 일구어가는 존재들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그들, 디아스포라 존재의 경험과 기억은 인류 문화를 풍부하고 다채롭게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해 온 요소들이기도 하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말한다. “문화 형성 과정에 있어서 망명, 이민, 경계 넘기의 경험은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동한다. 그 경험들이야말로 기존의 내러티브와는 완연히 다른 새로운 내러티브를 문화의 장에 제공할 수 있는 것, 즉 ‘차이의 담론’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라고 본다. 사이드의 말대로 디아스포라의 경험은 우리에게 “달리 발화하는 방식을 제공해 줄 경험들이다”(315p.). 한국 출신의 디아스포라 주체들이 생산한 문학 텍스트 중에서 시조 텍스트를 무수히 발견할 수 있다. 고향을 향한 그리움과 낯선 곳에서 살아가야 하는 설움을 노래하면서 고국을 떠난 디아스포라 주체들은 종종 시조의 형식을 사용하곤 했다. 그들이 지녔던 정서는 오래도록 우리 시조의 결에 스미어 디아스포라 시조의 전통을 이루어가고 있다. 20세기 초반, 계약 노동자가 되어 미국 하와이의 사탕수수 농장으로 떠난 백여 명의 한인들이 재미 한인으로도 불리는 한국계 미국인의 조상이 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사탕수수 농장에 뿌려진 그들의 땀과 눈물도 오래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보다 덜 알려진 디아스포라 존재들이 있는데, 비슷한 시기 멕시코로 '애니깽' 농장의 노동자로 팔려간 한국인들이다. 그들의 존재는 신소설 『월하가인』에 잠시 소개되기도 했으나 최근에 이르기까지 우리 역사 속에서 주로 망각되어 왔다. 소설가 김영하의 『검은 꽃』이 그들의 사연을 재현한 본격적인 소설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멕시코 농장의 한일들 중 두 명이 고국을 떠난 설움을 시로 남겼으니 참으로 소중한 우리의 문화 유산이 아닐 수 없다.

 

   동창에 달 빗최자

   귀 밋히 쳑쳑하니

   고향의 설은 소식

   날 졉해 주는가

   망향의 슬픈 회포

   내 가슴 ㅅ지르는가

 

   박옥 갓흔 힌 눈은

   우리 강산 덥혀 놋코

   무죄함을 뵈일 게다

   힌 눈 밝고 오고 가는

   힌옷 닙은 우리 민족

   무슨 죄악 잇스련만

   악마의 손에 도리

   호덕임을 아노라

 

   내 ㅅ당인 한반도

   사랑하신 부모님

   날 가라치신 선생님

   갓치 놀든 내 벗들

   힌 옷 입은 내 동표

   나는 졍말 보고 십허

 

   八년 十二월 二十일야

- 묵도 ㅅ더부류 ㅅ비, 「겨울 달밤에」(《신한민보》 1927년 2월 3일 게재)

 

 

   한 비닭이 다려

   이와 갓치 부탁하엿노라,

   이 꼿을 가져다가

   날를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고.

   이 꼿은 내 화원을

   단장한 꼿듕에

   미려하고도

   데일 항거로운

   꼿이라고 하여라.

 

   얼마 후에

   내가 생각하기를

   비닭이가

   그꼿을 가져다가

   나의 스윗 핱에게

   주엇는줄 아럿더니

   날를 지극히

   사랑하시든

   어머님의

   평안하게 영원히

   주무시는 냉냉한

   무덤 우에

   두고왔더라.

- 一九二六, 十二, 六, 묵국 고아, 「어머니 무덤 앞에서」(《신한민보》 1926년 12월 2일 게재)

 

  위에 든 두 편의 시 중 첫째 텍스트는 시조의 형식에 매우 근접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말의 가장 보편적인 3, 4 음절 어휘들을 운율감 있게 배열하면서 창작한 까닭에 시조처럼 읽힌다. 망향의 설움과 두고 온 가족에 대한 그리움, 되찾기 어려운 지난날의 회상과 흘러간 시간의 덧없음 등이 텍스트에 진솔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 텍스트를 읽으면서 문학적 형상화의 정도를 가늠해본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일 것이다. 어쩌면 유실되어 버렸을 우리 현대사의 한 장면이 오롯이 남아 있음에 감격하게 된다. 국권을 상실해가던 1905년 무렵, 국민의 권리를 지켜주어야 할 정부가 무력하기만 하여 허황한 선전문에 속아서 묵서국으로 향하였던 이들이 그들이다. 그런 그들이 고된 삶의 현장에서도 마음을 가다듬으며 그 사연을 기록으로 남겼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조선 시대 유배지에서, 대한 제국 시대 멕시코에서, 그리고 이제 21세기 미국 땅에서도 시조 창작은 멈춤 없이 지속되어 왔다. 귀양길의 설움와 노예 노동의 고난을 노래하던 것도 우리 시조였다. 이제 디아스포라 시인들은 미국 땅에 정착해 살면서 이국 살이의 고독과 당당한 개척의 정신을 노래한다.

 

   어느 별에서 지구별로

   유배를 온 몸인데

   그 땅에서 사막 만 리

   다시 유배를 당했다네

   너 별만 항아사 너 별만

   하염없이 바라보네

 

   사는 날 그리움의 거리

   수수억 광년이네

   은하와 은하 사이를

   드명 날명 물살 짓는

   항아사 너 여울 어디쯤

   나도 부침하는 작은 별 

- 김호길, 「항아사 너 별에게」 전문

 

 

   해 솟고 달이 돋는

   멀리 떠난 스무 살

   네 발길 다리 건너 외곽을 맴돌더라

   세상의 가장자리서 소리 공양 올리더라

 

   둥근 추 가슴을 쳐 숙연하게 울 때면

   발자국 소리마다 인동초로 피는 시간

   걸어라, 밟는 순간이 어디로든 길이다

- 안규복, 「괘종시계」 전문

 

  김호길 시인은 항아사 별의 상징을 통하여 고국 떠난 이의 고달픔과 외로움을 노래한다. 김호길 시인은 이 지구상에 태어난다는 일도 근원을 살펴보면 유배당하는 일이라 노래한다. 그 유배자가 다시 미국 땅으로, 그리고 미국에서 멕시코 사막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으니 유배에 유배를 거듭 당하는 존재가 되었다고 노래한다. 항아사 별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시적 화자의 모습이 텍스트의 전면에 일관되게 배치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외로울 수밖에 없는 것이 지구상의 모든 존재들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도 그리움과 그 그리움의 거리를 함께 노래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검은 밤하늘에는 은하가 흐르고 있고 수수억 광년, 물살, 여울 등의 정결한 시어가 그 은하를 그려낸다. 텍스트에 동원된 그 이미지의 고졸함으로 인하여 디아스포라 주체인 시적 화자는 고독하면서도 동시에 초월적인 존재로 승화되고 있다. 삶의 애환이 애환에 멈추지 않고 고독이 고독에 머무르지 않으며 모두 한 점으로 수렴하면서 존재의 의미를 떠받치게 되는 것이다.

  안규복 시인은 괘종시계의 시계 바늘이 운행하는 원리에 대해 명상하면서 그 괘종시계를 통해 디아스포라 주체인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있다. “멀리 떠난 스무살”에서 이십 대 청춘으로 이국 땅을 향해 떠나간 시적 화자의 기억을 찾을 수 있다. “외곽을 맴돌더라”에서는 이국 땅에서 소수 인종 미국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디아스포라 존재의 현실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종장의 결말은 결연하고도 단호하다. 주변인으로 살아가는 디아스포라 적 존재에 대한 자의식을 분명히 하면서도 기죽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고국 떠난 설움으로 쉽게 회귀하지도 않는다. 대신 적극적으로 개척자 정신을 선포한다. “걸어라, 밟는 순간이 어디로든 길이다” 참으로 당차게 독립적이면서도 당당한 디아스포라 존재의 주체성을 선언하는 장면이라 할 것이다.

  시조는 국경을 넘어 전 세계로 퍼져가고 있다. 미국 미시간 대학교를 중심으로 시조 강의 콜로퀴움이 확대되고 있다고 한다. 엘리자베스 세인트 자끄(Elizabeth St. Jacques), 데이비드 맥캔(David McCann)등 영어로 시조를 쓰는 시인들도 늘어나고 있다. 시조는 한국인의 정서를 잘 드러내는 문학 장르이며 한국인의 삶과 분리되기 어려운 양식이다.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는 이라면 누구든지 쉽게 창작할 수 있다. 우리 말의 자연스러운 운율을 감지할 수만 있다면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시조 형식을 통해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시조는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그 영역이 부단히 확대되고 있다. 고려 시대 말, 조선 시대에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시조가 몇백 년의 세월이 경과한 지금에도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고 이제 국경을 넘어 세계 곳곳에서 창작되고 있다는 사실이 문득 새롭게 놀랍다.

 

 

                                                                      

    참고 문헌

    김천택 편. 홍문표 강중탁 역주. 『청구영언』(명지대학교 출판부, 1995), 112.

    한국이민사박물관, 『2019 한국이민사박물관특별전, 에네켄에 담은 염원, 꼬레아노의 꿈』, 한국이민 사박물관, 2019.

    Said, Edward W. Reflections on Exile and Other Essays Harvard University Press, 2003.

 

 

 

 

ㅡ 그동안 “박진임의 [시조본색]”을 애독해주신 여러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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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임 ㅣ

2004년 《문학사상》 평론 등단. 연구서 『비교문학과 텍스트의 국적』 『Narratives of the Vietnam War by Korean and American Writers』, 평론집 『두겹의 언어』 『세이렌의 항해』 등이 있음. 현재 평택대학교 국제지역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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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