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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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박진임 

 

 

 

겨울 소나무

  

  

 

   

 

  여름이 떠나간 자리가 텅 비었다. 울울창창하던 숲이 문득 고개 숙인 듯 숙연하다. 그 자리에 가을이 눈치를 보며 들어서려는 듯하더니 그만 겨울에 밀려나고 만 모양이다. 아침이 되자 기온은 뚝 떨어지고 사람들은 서둘러 겨울 털옷을 꺼내 입고 길을 나선다. 곧 겨울 눈도 내리겠다. 시월의 마지막 밤을 노래하면서 가을의 낙엽을 밟고 천천히 사계의 회전에 적응해가던 일도 옛이야기가 되고 말겠다. 우리 선조들은 뚜렷한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며 모든 계절을 시조로 노래했다. 겨울 눈 속에 망울 터뜨리는 매화를 보며 그 기상이 갸륵하다 노래했고 봄꽃 만개할 때 수레에 술을 싣고 꽃 마중 가는 노래를 부르곤 했다. 다시 국화가 피면 서리에도 굴하지 않는 오상고절(傲霜孤節)을 칭송하였고, 겨울이면 소나무 가지 마다 피어나는 설화를 찬양했다. 겨울 소나무의 푸른 빛과 하얀 눈의 조화란 과연 한 폭의 그림이었으리라.

    

   송림에 눈이 오니 가지마다 곳지로다

   한 가지 것거 내여 님 계신 듸 드리고져

   님계셔 보오신 후에 녹아진들 어이리

 

   *

 

   소나무 숲에 눈이 오니 가지마다 꽃이로다

   한 가지를 꺾어 내어 님 계신 곳에 드리고 싶구나

   님께서 보신 후에 녹아 없어진들 어떠하리.

  

  자연을 바라보면서 그 외부의 대상에 시적 화자의 심경을 투사하는 것은 시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다. 우리 선조들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는 자연의 대상들을 바라보면서 자신들의 마음을 가다듬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충과 효라는 유교적 가치관을 굳건히 지키고자 하는 마음들은 무수한 시조 작품들에 반영되어 있다. 오늘에 이르러 다시 보면 선조들의 시대에 살아가는 것은 오히려 쉬웠을 것 같기도 하다. 학습한 가치관을 잘 내면화하는 것이 미덕이었던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다만 그 가치관이 그 사회를 구성하던 다양한 주체들의 삶을 고루 반영하지 못하였기에 오래 지속되기 어려웠을 따름이리라. 로마 시대의 시민이란 귀족 남성만을 지칭하는 말이었다고 한다. 남성 노예, 여성, 어린이 등 그 밖의 모든 존재는 그 시민의 소유물일 뿐이었다고 한다. 오늘날 가족이라는 말, 영어의 family, 불어의 famille는 라틴어 파밀리아(familia)에서 온 말인데, 파밀리아는 앞서 이른 바대로 여성과 남성 노예를 포함한 남성의 소유물들을 지칭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조선 시대 양반 남성도 로마 시대 귀족 남성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우리의 양반도 로마의 귀족 남성도 가족을 포함한 자신의 소유물들을 모두 지배하고 관리하는 위치에 놓여 있었다. 그러므로 오로지 충과 효를 생각하면서 자신의 님인 군주를 향한 충성의 마음을 노래할 뿐이었다. 그 창작 행위는 어쩌면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하면서 사회 질서를 유지하려는 의도의 표현이었을 수도 있겠다.

   선조들이 형성하고 향유해 오던 시조의 형식을 그대로 이어받으면서도 오늘날의 시인들은 그처럼 제한적인 형식 속에 자유로운 자신의 신념과 상상력을 부어 넣고 있다. 참으로 놀랄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혁명은 차라리 손쉬운 일이다. 시적 형식이나 언어의 혁명도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전통적 형식을 물려받아 지키면서 그 내부에서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 가려는 노력은 더욱 가상하다. 한편으로는 전통이 지닌 덕목들을 유지할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삶을 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겨울 소나무를 여성 주체의 입장에서 다시 노래한 정수자 시인의 텍스트를 보자. 정수자 시인은 소나무 중에서도 옆으로 가지를 벋어가는 언송(偃松)을 노래하고 있다.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오르는 금강송의 기개를 노래한 바 있는 시인이 땅에 드러누운 언송의 존재 방식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언 소나무 아니란다

 

   노옹(老翁)이지

   꽃을 아는

 

   삭풍 장히 칠수록

   흰 눈썹 펄펄 치솟는

 

   밤이다

 

   깊이 눕거라

 

   언 하늘쯤

   쩡!

 

   긋게

― 정수자 「언송(偃松) — 세한도 시편」

 

  한반도의 소나무는 올 겨울에도 변함이 없이 푸를 것이다. 그 위에 흰 눈도 여전히 내릴 것이다. 그러나 그 소나무를 바라보는 주체들의 입장은 확연히 달라졌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여성 시인은 소나무에 핀 눈꽃을 님 그리는 마음으로 번역하지 않는다. 소나무는 이 땅의 여성 시인에게 주체성을 잃지 말라고 속삭인다. 역경에도 굴하지 말고 자신을 지켜가라고 격려한다.

  올해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 아니 에르노(Annie Ernaux)는 소설 『얼어붙은 여자(La femme Gelée)』 서문에 이렇게 쓰고 있다. “왜냐하면, 함께 살아가는 이 모험에서, 우리는 평등하지 않고, 서로의 사랑 속에서도 사회가 전통적으로 남성에게 부여한 특권들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 특권들을 문제 삼고 후대에 넘겨주지 않는 일이야말로 우리, 소녀들, 여성들의 임무다”(7면). 정수자 시인은 늠름하고 곧게 위로 솟는 소나무 대신 “깊이 누운” 언송에 주목한다. 그 언송의 독백에 귀 기울인다. 지금은 아직 “밤이다.” 밤을 견디는 방법을 모색할 때이다. “깊이 눕거라”는 명령어도 소중하다. 눕는 것이 굴복과 굴종, 혹은 패배가 아니라고 시인은 말한다. 깊이 누워서도 “언 하늘쯤 쩡! 긋게” 그렇게 안으로, 안으로 깊어지라고 이른다.

  곧 삭풍 장히 치는 겨울이 오겠다. 남산 언덕에는 소나무 가지마다 가볍디가벼운 눈이 소복히 내려 쌓이겠다. 그 쌓인 눈은 결코 가볍지 않겠다. 한밤중 문득 소나무 가지가 뚝뚝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겠다. 땅에서는 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켜온 언송이 가만히 밤을 지키고 있겠다. 한반도의 하늘은 여전히 얼어 있겠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언 하늘에 조금씩 금이 가겠다.

 

 

 

 

                                                                      

    1) 김천택 편, 홍문표·강중탁 역주, 『청구영언(상)』(명지대학교 출판부, 1995), 39면.

    2) 정수자, 『탐하다』(서정시학, 2013).

    3) 아니 에르노, 김계영,고광식 역 『얼어붙은 여자(La femme Gelée)』(레모, 2021)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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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임 ㅣ

2004년 《문학사상》 평론 등단. 연구서 『비교문학과 텍스트의 국적』 『Narratives of the Vietnam War by Korean and American Writers』, 평론집 『두겹의 언어』 『세이렌의 항해』 등이 있음. 현재 평택대학교 국제지역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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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