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 저자 | 육호수 | ||
|---|---|---|---|
미아
말라가는 지렁이 앞에서
빛에서 온 축복에 대해 이야기했다
보도블록과 썩은 잎의 방향을
종일 맞추어 보았다
이렇게 좋은 날
누군가 나의 처벌에 정성을 들이고 있구나
놀이터에 집을 짓고 해가 질 때까지
소녀와 함께 살았다
모래로 밥을 지어 먹었다
아이야, 지금은 가족이 둘뿐이지만
이웃들에게 착한 일을 많이 하면
누군가 현관 앞에 새 동생을 두고 갈 거야
주머니가 지저분한 소년이 되어
아이의 옷소매 엄지 검지로 집고
어둔 골목 졸졸 따라 돌아왔다
아이야 네가 잠에 들면,
호랑거미의 통통한 배에 플라스틱 총알을 쏘았던 나의 어릴 적 일과
어항에 고춧가루를 쏟아버리고 울었던 더 어릴 적 일과
소년의 죄와 백치의 기쁨과
얼굴의 닮은 곳을 하나씩 찾으면 우리,
밤은 지날 수 있다
아이는 하얀 잠꼬대를 하고
꿈속에 나의 대답이 들릴까봐 대답 대신
기도를 했다 두 손 대신
용서하고 싶은 사람의 뒷모습을 모았다
넘어지는 꿈을 꾸면 키가 큰다는데
뒷모습은 잘 자란다
하얀 꿈속에서 수백 번 새로 집을 짓겠지
아무도 그 집을 찾지 못하고 지붕 없는 부엌에서
모래로 된 밥을 먹겠지 먹어도 배가 차지 않고
누군가 식탁을 걷어찰지도 모르지만
소꿉놀이가 끝나도 헤로인은 집을 허물지 않아
잠에 든 아이 키 큰 걸 바라보았다
깨진 무릎이 갓난애 머리통 같아,

육호수 ㅣ
2016년 〈대산대학문학상〉 시 부문 당선(2017년 《창작과비평》 봄호 발표)으로 작품 활동 시작.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8년 2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