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김상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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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앨버트로스
나는 언제나 너를 그리워해
세계 최고의 비행사, 앨버트로스
지상에선 뒤뚱뒤뚱 조롱조롱(嘲弄嘲弄) 바보새로 통하지만
커다란 날개를 활짝 펴기만 하면 모든 지평선과 수평선을 열어젖히고
우주로, 우주로, 우주의 새가 되어 날아오르는
둥지를 짓고 새끼를 돌보는 시간 외엔
생애의 거의 대부분을 높이높이, 멀리멀리 더 멀리
거침없는 폭풍 속이든 세찬 비바람 속이든 지구에서 달까지든
세상과는 상관없이, 누구와도 관계없이 광활한 바다, 심해 위를
몇 번이고 몇 날이고 몇 달이고 몇 년이고
자유로이 바람을 타고 바람과 함께 바람이 되어 비행하는
거대한 새, 앨버트로스
나는 언제나 너를 그리워해
끝없이 빛을 향해 날아오르고 또 날아오르는 네 날갯짓에
아직도 내가 살아 있다면
그 날갯짓처럼 아직도 내 마음이 자유롭고 행복하다면!
내 삶에 이보다 더 그립고, 더 멋진 이정표가
어디에 또 있으랴
동트는 여명처럼 광대하고 광대한 나만의 도취,
앨버트로스!
딱새의 작은 고추
참새처럼 귀엽고 앙증맞은 딱새가
저보다는 몇 배나 큰 까치와
영역 싸움을 벌이고 있다
딱새는 타고난 싸움꾼이다
상대가 누구이든 아무리 덩치가 크든 상관없이
조금만 수가 틀려도 참지를 못한다
막무가내로 덤비고 악착같이 공격한다
아무리 덩치 크고 힘센 새들도
끊임없이 덤비고 줄기차게 괴롭히는
딱새의 그 공격성을 배겨내지 못한다
싸울 때의 딱새는 누구보다도 부지런하고 끈질기고 용감하다
그런 딱새의 끝없는 근접전에 견디다 못한 까치가
결국은 훌쩍 날아올라 다른 곳으로 줄행랑을 친다
딱새는 보란 듯이 부르르 날개를 한번 털더니
까치를 쫓아낸 그 자리에 득의양양 곧추앉아
자신의 맵고 매운 작은 고추를 쑤욱 내밀며
휘, 휘, 휘, 승리의 휘파람을 불고 있다
작은 고추가 정말 맵다는 걸 보여주기라도 하듯…….
인류
ㅡ 순이의 편지
나는 아파요 아주 많이 아파요
잠에서 깨어날 때가 가장 아파요
하지만 이 아픔은 내가 내 몸을 소홀히 하여
신이 주신 삶의 혈세를 낭비하고 낭비한 탓
그 때문에 신이 내 몸에 슬쩍 심어둔 죽음의 씨앗이
쑥쑥, 무럭무럭 자라난 탓
그래도 아직은 참을 만해요 견딜 만해요
아파서 죽는 것도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사는 것도
모두 다 심오한 신의 뜻이라지만
죽음이 그냥 죽음이듯이
아픔 또한 그냥 아픔일 뿐이에요
신은 누구보다도 바쁘고 도도(滔滔)하여
아마도 나한테까지 마음 쓸 여유가 없을 거예요
그래도 괜찮아요
나는 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삶을 믿어요
철저히 삶의 편이에요
그러니 아무리 신을 등에 업은 죽음이라도
단번에 나를 쓰러뜨리진 못할 거예요
언젠가 때가 되어 내가 죽어야 한다면, 죽을 수밖에 없다면
그건 삶을 사랑하는 내 믿음이 부족해 삶의 눈 밖에 났을 때일 거예요
아파서, 아파서 죽는 것이 아니라
내 사랑이 더는 삶에게 베풀 것도 갈 곳도 없어졌기 때문일 거예요
죽을 때가 되어서 드디어, 마침내 죽는 것일 거예요
그러니 그때까지만이라도 나는 그대들과 함께 있을래요
나보다 더 사랑하고, 더 사랑하는 그대들
매일매일이 힘들고 두렵고 아프지만
언제나 그 안에서 꿈꾸듯 애틋하고 평화롭고 다정하고 싶은
인류라는 그대들과!
자선 대표시
작은 배*
배가 있었네, 아주 작은 배가 있었네, 라고 노래하던 가수가, 작은 배로는 떠날 수 없네, 아주 멀리 떠날 수 없네, 라고 노래하던 가수가, 어젯밤 아주 멀리 떠나버렸네. 혼자 남아 울고 있는 작은 배만 남기고, 작은 배만 남기고, 아주 먼 곳으로 떠나버렸네. 이 시대의 애끓는 한숨 소리처럼 깊디깊은 여름밤, 홀연히 춤추는 먼지, 허무의 장엄 속으로 떠나버렸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매혹의 뮤지션이 되어 곧 그리운 멜로디로 환생할 작별의 오선지 속으로, 캄캄한 밤이 내뿜는 혼, 미지의 쓰라린 감미(甘味) 속으로 떠나버렸네. 아주 작은 일에도 눈물이 나 한밤중에도 혼자 깨어 있을, 더없이 애틋하고 애잔한 제비꽃, 작은 배만 남기고, 작은 배만 남기고….
* 2017년 8월 28일 새벽에 이 세상을 떠난 가수 조동진을 추모하며.
시인 앨범 6
너는 쓴다, 쓰고 또 쓴다
흰 장미와 분홍 장미
그 아래 무수한 하이에나들
그들을 비껴갈 행운은 어디에도 없고
부지런한 팽이처럼 돌고 도는
이별과 집착 그리고 날카로운 절망들
그 아래 흩날리는 냉담한 천사들의 미소
서로서로에게로 넘나들지 못한 채 민감하게 사라지는
대책 없는 개개인의 평화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소스라치는 절망에, 환멸에
날마다 버스를 놓치고 기차를 놓치고 사람을 놓치고도
결국 발맞추어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어제 구해준 사람에게 오늘은 맞아 죽을지라도
언제나 좋은 게 좋다는 그 함정 안에 옹기종기 모여
한 번도 제대로 차지하지 못했던 사랑을, 행복을 나불대는
마르고, 마르며, 말라가는 꽃송이들
그 아래 훌쩍이며 훌쩍대는 결박된 미래들
한없이 불안하면서도 한없이 방관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어둡고, 어두운 개개인의 이름 석 자
고이 간직했던 지고지순한 문장들마저 비틀고 비틀어야만
점점 심장박동이 정상화되는 무미건조한 영양제들
그 아래 펑펑 울며 부서지는 이 시대의 인간 장난감들
너는 쓰고, 또 쓰고, 또 쓴다
붉은 피 냄새 진동하는 봄날의 키스
불행한 아이들을 모두 먹어치우고
반짝반짝 얼굴에 기름칠을 한
흰 장미와 분홍 장미
그 아래 무수한 하이에나들
사랑하고 싶어서, 사랑받고 싶어서
어쩔 수 없이 단식 투쟁을 하고 인간 사슬을 만들고 소리치고 발을 구르며
도취한 빙산처럼 조난 신호탄에 자신을 내다 맡긴 채
끝없는 폐허로 입맞춤하면서 이어지는 벽 뒤의 도시,
그 참혹한 꽃밭에서!

부산 출생. 1990년 《작가세계》 등단.
시집 『모자는 인간을 만든다』 『검은, 소나기떼』 『잡히지 않는 나비』 『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
산문집 『아버지, 당신도 어머니가 그립습니까』 『오늘은 바람이 좋아, 살아야겠다』가 있음.
〈박인환문학상〉 〈시와표현 작품상〉 〈지리산문학상〉 〈전봉건문학상〉 수상.

바보처럼 살았군요!
누가 들어도 음치인 노랫소리가 좁고 컴컴한 무대와 객석을 꽉 채웠다.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라는 아주 작은 극장에서 김상미 시인은 혼자 조명을 받으며 노래를 불렀다. 2012년 1월의 일이니 벌써 만 6년이 넘은 일이다.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나는 어두운 무대 저편 대기실에 앉아서 그 노래를 듣는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들으면 들을수록 그 노래에 중독된다. 음치의 노래가 아니라, 마치 그 생의 회한을 온몸으로 부르는 듯한 감동이 온다. 그때 김상미 시인과 나는 〈누가 연극을 두려워하랴〉라는 연극 공연에 함께 출연했다.
김상미 시인과 나의 공통점은 무대에서 질펀하게 경상도 방언을 쓴다는 것이다. 김상미 시인이 나에게 표준말 억양을 훈련하는 장면이 있을 정도로 둘 다 숨길 수 없는 태생적 공유물이 지방어 언어 습관이었다. 그래서인지 남다른 친밀도를 가지고 있는 언니였다. (김상미 시인에 대한 호칭이 ‘선생님’에서 ‘언니’로 바뀌었다. 나와 동갑인 시인과 셋이 만난 적이 있는데 그 친구가 ‘언니’라고 부름으로써 자연스레 호칭 정리가 되어버렸다.)
내가 갓 등단을 하고 처음 언니를 만났을 때는 사실 첫인상이 굉장히 강렬했다. ‘현대시학회’ 모임 장소에 선배 언니를 따라갔다가 다른 식탁에 앉아 있는 김상미 언니가 내게 큰 소리로 말을 걸어오면서 처음 언니를 각인하게 되었다. 강렬한 원색의 빨간 투피스를 입은 상미 언니가 반갑다는 인사를 건네는 것이었는데, 목소리의 깐깐함이나 톡톡 분지르는 듯한 말 습관이 문단에 갓 데뷔한 나를 더욱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친근하고 솔직하게 다가갈 수 있는 ‘누나 시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첫 만남 이후 10여 년이 지나서는 상미 언니와 연극을 함께할 만큼 가까워졌는데, 이 연극으로 인연을 맺은 다섯 시인(김상미, 김영애, 조명, 천수호, 김개미)이 남다른 돈독함이 생긴 것도 아마 5개월이나 되는 긴 연습기간이 있었기 때문일 거다. “아무리 생각해도. 김상미 씨, 오래 쓴다고 시가 다 좋은 것도 아닌 거 같아. 갈수록 시가 허접해지는 거 같아. 시고 소설이고, 10년 쓰고 그만해야 되는 거야.” 이 대사는 상미 언니의 상대역이었던 김영애 시인의 대사다. 상미 언니와 김영애 시인은 마주보고 앉아 대사를 맞받아치는 관계여서 더 끈끈한 사이가 된 듯하다. 이 대사를 들을 때마다 상미 언니뿐 아니라 출연 시인 다섯 명 모두가 움찔했을 거 같은데 모두가 시에 대해서 이런 자책을 하고 있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이 대사에 응대하는 상미 언니의 노래가 “바보처럼 살았군요”였다. 이 노래를 무대 뒤에서 듣고 있으면 무대에 앨버트로스 한 마리가 날개를 질질 끌면서 다니는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앨버트로스는 일명 ‘바보새’라고도 불리며 걷는 것도 서툴고 또 날개를 끄는 모습도 우스꽝스럽다고 한다. 보들레르도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시인 자신을 비유하여 ‘앨버트로스’라는 시를 썼지만 상미 언니는 비록 바보라 해도 이 새처럼 행복과 자유를 누리고 싶다고 한다.
지상에선 뒤뚱뒤뚱 조롱조롱(嘲弄嘲弄) 바보새로 통하지만
커다란 날개를 활짝 펴기만 하면 모든 지평선과 수평선을 열어젖히고
우주로, 우주로, 우주의 새가 되어 날아오르는
둥지를 짓고 새끼를 돌보는 시간 외엔
생애의 거의 대부분을 높이높이, 멀리멀리 더 멀리
ㅡ 「앨버트로스」 부분
상미 언니는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라는 노래의 후렴구처럼 자신을 자책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유로이 바람을 타고 바람과 함께 바람이 되어 비행하”(「앨버트로스」)는 자신의 삶에 대한 이정표를 한 번 더 확인하는 것이 아닐까. “삶이란 언제나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때에도 / 남아 있는 법”(「오렌지」 부분, 『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어요』, 문학동네, 2017)이라는 것을 아는 언니니까. “그녀가 오랫동안 균형 잃은 위태로움을 안고 살아왔다고 생각했”(『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 문학동네, 2017 112p 우대식 해설 부분)지만 “그녀의 시는 액체성의 덩어리고 끝없이 흔들리면서도 강력한 복원력을 가지고 제자리로 돌아오는 물성을 지니고 있었”(같은 책)다는 우대식 시인의 말에 지극히 공감을 한다.
딱새는 보란 듯이 부르르 날개를 한번 털더니
까치를 쫓아낸 그 자리에 득의양양 곧추앉아
자신의 맵고 매운 작은 고추를 쑤욱 내밀며
휘, 휘, 휘, 승리의 휘파람을 불고 있다
ㅡ 「딱새의 작은 고추」 부분
앞의 ‘앨버트로스’와 위 시의 ‘딱새’를 보면 요즘 언니의 관심이 새에 닿아있다는 것을 짐작하게 된다. 딱새는 “참새처럼 귀엽고 앙증맞”(「딱새의 작은 고추」)지만 “싸울 때의 딱새는 누구보다도 부지런하고 끈질기고 용감하”(「딱새의 작은 고추」)다. 이 딱새의 모습에서도 상미 언니의 어떤 부분이 어룽거린다. 시에 대해 얼핏 처연해 보이지만 남다른 열정이 있다. 상미 언니는 1990년 《작가세계》로 등단을 해서 네 권의 시집을 냈다. 거의 30년이 다 되어가는 시력에 비하면 시집은 참 아껴내는 편이지만, “내가 사랑한 시는 현대인을 위해 활짝 핀 절규도 댄디도 반향곡도 사모곡도 아닌데 그냥 한없이 읽고 또 읽으며 하얀 애벌레처럼 바짝 웅크린 어깨를 펴고 그를 따라 멀리멀리 아주 멀리로 즐거운 외출을 하고 싶을 뿐인데....”(「내가 사랑한 시」 부분, 『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 문학동네, 2017)라고 고백하는 것처럼 늘 시의 세계에 묻혀 읽고 또 읽으며 살아왔다. 산문집(『오늘은 바람이 좋아, 살아야겠다』 김상미, 나무발전소, 2017) 출간 후 채널예스의 인터뷰에서도 언니는 “시집만 늦게 냈지 작품은 계속 쓰고 발표도 했다”고 한다. “마치 아무도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자처럼 이토록 불안하고 두려운”(「내가 사랑한 시」 부분, 『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 문학동네, 2017) 것도 시에 대한 숨길 수 없는 애착이며 과도할 정도의 자기 점검이 아닐까 싶다.
언젠가 때가 되어 내가 죽어야 한다면, 죽을 수밖에 없다면
그건 삶을 사랑하는 내 믿음이 부족해 삶의 눈 밖에 났을 때일 거예요
아파서, 아파서 죽는 것이 아니라
내 사랑이 더는 삶에게 베풀 것도 갈 곳도 없어졌기 때문일 거예요.
ㅡ 「인류 - 순이의 편지」 부분
혼자 남아 울고 있는 작은 배만 남기고, 작은 배만 남기고, 아주 먼 곳으로 떠나버렸네. 이 시대의 애끓는 한숨 소리처럼 깊디깊은 여름밤, 홀연히 춤추는 먼지, 하루의 장엄 속으로 떠나버렸네
ㅡ 「작은 배」 부분(《현대문학》 2017년 10월호)
위 두 편의 시는 죽음을 소재로 한 시이다. 올해 1월에 상미 언니께 각별한 죽음이 있었다. 함께 연극을 했던 김영애 시인이 하늘나라로 떠난 것이다. 상미 언니와 마주보고 앉아서 서로 대사를 치던 각별한 사이였기에 그 이별은 큰 상실감을 주었으리라. 김영애 시인은 상미 언니를 각별히 좋아했다. 마치 귀여운 연인처럼 상미 언니의 작은 두상을 신기해했고, 상미 언니는 그런 김영애 시인의 시원시원한 성격을 좋아했다.
14년 만에 네 번째 시집을 내고 상미 언니는 ‘지리산 문학상’과 ‘전봉건 문학상’을 받았는데, 작년 크리스마스 때 단톡방에 김영애 시인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씀에도 이런 상미 언니를 응원하는 메시지를 담았다. “상미 시인께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좋은 일이 가득하시길. 그리고 다른 분들도 행복하세요. 저도 내년에는 홀가분하게 살아보렵니다.”였다. 그 메시지에 대한 상미 언니의 답글 같은 것이 김영애 시인의 부고였다.
우리가 공연한 연극에서 다섯 시인들이 반복적으로 읊은 말이 있다. 반복될수록 막연하던 슬픔이 확신에 찬 어조로 바뀌던 그 말은 “우리는 어떠한 것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라는 것이다. 김영애 시인을 보낸 네 명의 시인은 그때의 그 대사를 반복해서 읊조렸는지도 모른다. 아마 세상을 떠난 김영애 시인도 분명 그 대사를 반복적으로 읊지 않았을까.
김영애 시인이 2014년에 첫 시집 『카스트라토』를 출간했을 때 상미 언니는 시집 뒤에 표사를 썼다. 무슨 예견이라도 한 듯이 표사의 타이틀이 “시는 시인이 살기에도 죽기에도 아주 좋은 곳”이었다.
“이제는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이 될 때까지 꼭꼭 숨어 있었던 계집애처럼 혼자 있지 말고, 천 년을 외롭게 살아낸 이야기, 그 세상 끝 정원에서 걸어 나와요 / (…중략…) / 아무리 부질없어도 떠밀리지 말아요. 시(詩)는 시인이 살기에도 죽기에도 아주 좋은 곳. 변명은 필요 없어요. 뒤돌아보지 말고 나아가요. 아름다운 날들이 가고 있어요”(김영애 시집 『카스트라토』, 김상미 표사 부분)
김영애 시인의 상가(喪家)에서 상미 언니는 생각보다 차분했다. “아직 소녀인 채로 까르륵대는 순진무구의 위태로움”(『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 문학동네, 2017, 113p. 우대식 해설 부분)을 가진 언니였지만 상미 언니는 미리 김영애 시인의 시 선배로서 이렇게 위로와 격려를 보냈던 것이다. 연극 속에서 선배인 상미 언니가 김영애 시인께 한 대사가 생각난다. “문단이 언제부터 이렇게 개 족보가 된 거야?” 이 대사는 상미 언니를 잘 아는 연출(최치언 시인)이기에 엮어낼 수 있는 대사였다. 상미 언니는 누구도 쉽게 할 수 없는 말들을 솔직하게 또는 아슬하게 별 탈 없는 수위를 넘기며 직언을 하는 묘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내장도 염통도 간도 다 빼주고 너나 먹으라고 다 던져주고, 시(詩)는 내 사랑이라고 말해줘요”(김영애 시집 『카스트라토』, 김상미 표사 부분)라 했던 상미 언니는 결코 시의 삶만큼은 바보처럼 산 것이 아니었다. “너는 쓰고, 또 쓴다 / 붉은 피 냄새 진동하는 봄날의 키스 / 불행한 아이들을 모두 먹어치우고 / 반짝반짝 얼굴에 기름칠을 한 / 흰 장미와 분홍 장미 / 그 아래 무수한 하이에나들”(「시인 앨범 6」 부분, 《문학동네》 2017년 겨울호)의 이야기를 쓰고 또 쓰며, 이 “참혹한 꽃밭”(같은 책)에서 자신만의 꽃을 피우고 있다. 가끔 늦은 밤에 상미 언니와 통화를 하게 되는데 그때마다 우리 대화에는 시의 꽃들이 피었다 졌다 한다. 그때 듣는 순정한 언니의 목소리가 참 좋다. 언니는 내게 시와 함께 아름다운 날을 지나고 있음을 알려주는 문단 족보의 대선배이다.
글 · 천수호 | 시인.
200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아주 붉은 현기증』 『우울은 허밍』이 있음.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8년 8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