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이준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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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동시
아이들과 토끼
영민이가 놀이터에 토끼를 안고 나오면
아이들은 좋아서
토끼처럼 폴짝폴짝 뛴다
서로 앞다투어
토끼풀을 뜯어다주고
오물오물 풀을 먹는 토끼 입 바라보며
토끼 따라 입을 오물오물 한다
토끼 귀가 신기하고
토끼 수염이 신기하고
분꽃 씨처럼 까만 토끼 똥이 마냥 신기해서
눈이 토끼 눈처럼 똥그래진다
ㅡ 나도 한번 안아볼게
ㅡ 나도 한번....
서로 앞다투어
토끼를 안아보는 아이들
아이들은
토끼처럼 반짝! 앞니가 두 개
토끼처럼 쫑긋! 귀가 두 개
내가 왜 몰라
ㅡ 어디 가니?
ㅡ 몰라
ㅡ 숙제 다 했니?
ㅡ 몰라
말은
모과처럼 퉁명스럽게 해도
얼굴은
모과처럼 못생겼어도
골목길에서 만난
내 친구
마음은 모과 향기가 같은 걸
내가 왜 몰라
민들레
민들레는
복주머니
봄이
허리에 차고 온
복주머니
"복 받아요!"
"복 받아요!"
모두에게 골고루
복을
나누어주는
은실은실
복주머니
짤랑짤랑
복주머니
자선 대표 동시
길을 가다
길을 가다 문득
혼자 놀고 있는 아기 새를 만나면
다가가 그 곁에 가만히 서 보고 싶다.
잎들이 다 지고 하늘이 하나
빈 가지 끝에 걸려 떨고 있는
그런 가을날.
혼자 놀고 있는 아기 새를 만나면
내 어깨와
아기 새의 그 작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어디든 걸어 보고 싶다.
걸어 보고 싶다.
별 하나
별을 보았다
깊은 밤
혼자
바라보는 별 하나
저 별은
하늘 아이들이
사는 집의
쬐그만
초인종
문득
가만히
누르고 싶었다

전북 정읍 출생.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동시, 1974년 《심상》 신인상 시 당선.
동시집 『씀바귀꽃』『내가 채송화꽃처럼 조그마했을 때』『쥐눈이콩은 기죽지 않아』 등,
시집 『가을 떡갈나무 숲』『부엌의 불빛』『천국의 계단』 등이 있음.
〈대한민국문학상〉〈소천아동문학상〉〈방정환문학상〉〈김달진 문학상> 등 수상.
한국동시문학회 회장 역임.

주체의 확장과 만남으로 구축한 동심의 세계
1. 들어가며
이준관은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초록색 크레용 하나로」가 당선되면서 50여 년 가까운 시간을 교육인이자 문학인으로 활동해왔다. 또한 아이들의 정신적, 정서적 가치를 고양시킬 수 있는 동시의 길을 모색하면서도 실존의 비의(秘意)와 문학적 자각을 미적 체험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시의 길도 동시에 천착함으로써 두 영역에 걸쳐 영향력 있는 시 쓰기를 지속해왔다. 때문에 그는 동시가 시의 범주에 예속되면서도 시적 주체의 사유 방법이나 형상화에 있어 독자적인 세계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일찍이 간파하였고, 두 영역의 상보적인 관계를 통하여 어린이의 순수한 지각을 표상하면서도 문학적 완성도를 추구하는 시인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1)
이준관은 “좋은 시를 읽고 자란 어린이들은 마음이 밝고 건강하다는 신념 아래 시인들은 어린이들이 맑고 밝게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동시를 써야한다.”2)고 했는데 이는 그의 동시관을 집약해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오랜 교직 경력을 통해 아이들의 생활과 내면을 깊이 있게 이해하면서 “맑고 밝”은 순수의 세계를 지향하고자 했던 그는 지금까지 일곱 권의 동시집3)을 출간하며 매 시집마다 자신의 문학 세계를 정립하고 갱신해왔다.
이 자리에서는 한국아동문학사의 도도한 흐름을 주도하며 동시의 위상을 높이 세우고 그 외연을 확장하는 데 기여했던 이준관의 작품 세계를 고찰하기 위해 대표 동시 두 편과 신작 동시 세 편을 분석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이준관의 동시를 관통하는 하나의 철학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며 그 고유성으로부터 문학사적 가치와 의의를 되새겨볼 수 있을 것이다.
2. 어린이의 순수한 세계를 지향하는 동시관
동시란 무엇인가. 일반적인 동시의 개념은 어른이 아이들을 위해 쓴 시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렇다면 창작의 주체인 어른은 탈주체화의 과정을 통해 어린아이의 마음과 생각을 지닌 새로운 시적 주체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이때 아이들의 마음과 생각을 어떻게 인지하고 설정하는가가 동시의 태생과 성격을 결정적으로 규정하게 된다.
아이들에 관한 내밀하고 심층적인 이해를 통해 동심을 파악하고 구현하고자 고투해온 이준관의 작품 세계에 비추어볼 때 그가 생각하는 동심이란 어른과 대비되는 순수성의 패러다임 위에 놓여 있음이 거의 명백하다. 여기에는 어린이를 선한 본성과 무구한 심성을 소유한 존재로 보는 신뢰의 관점이 전제되어 있다. 그렇다면 동시의 창작 방법론은 어린이의 동심을 이상적인 것으로 보고 그것을 추구함으로써 이 세계가 복원해야할 가치를 형상화해나가는 것이 된다. 이는 아동의 본성을 당위에 놓고 이상세계를 그려간다는 점에서 현실성이 소거된 관념론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이준관의 경우 현실비판적인 동시에서 드러나기 마련인 어른의 의도는 작위적일 수 있음을 경계하면서 어린이들이 성장과업을 이루기 위해서는 현실의 긍정적 요소들을 통해 바람직한 세계를 체험하고 지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보았다.4) 때문에 그의 동시에서는 지난한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적이 없으며 가난이나 외로움 같은 어려움이 등장하더라도 어린이의 천진난만함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와 희망을 보여준다.
3. 주체의 확장과 만남의 작동 원리
이준관이 동심에 대한 믿음과 이데아 구현에 부합하는 작품 경향을 고수하면서도 계몽적 주지주의를 극복하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교육자나 시인의 음성을 섣불리 내비치지 않고 행동하는 주체의 장면만을 오롯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동심을 통해 어린이들을 인식하고 바람직한 세계상을 제시하고자 작품을 설계하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어떤 규범과 가치가 바람직한 것인가를 구체화하지 않음으로써 그 항의 의미를 무한히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준관의 대표작으로 첫 시집의 「길을 가다」와 두 번째 시집의 「별 하나」를 보자.
길을 가다 문득
혼자 놀고 있는 아기 새를 만나면
다가가 그 곁에 가만히 서 보고 싶다.
잎들이 다 지고 하늘이 하나
빈 가지 끝에 걸려 떨고 있는
그런 가을날.
혼자 놀고 있는 아기 새를 만나면
내 어깨와
아기 새의 그 작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어디든 걸어 보고 싶다.
걸어 보고 싶다.
― 「길을 가다」 전문
화자는 “길을 가다 문득 / 혼자 놀고 있는 아기 새를 만나”(「길을 가다」)게 된다. 화자도, 아기 새도, 잎들이 다 진 나무도, 빈 가지 끝에 걸린 하늘도 모두 혼자다. 홀로 존재하는 단독자로서 시적 주체와 아기 새는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주체들은 모두 각자의 위치에 자리하며 하나의 세계로 상정되어 있다. 주체와 타자의 동등성은 이준관의 시적 지평이다. 주체와 타자의 동등성은 더 나아가 주체와 주체의 만남이 된다. 그래서 이준관 시의 타자들은 주체의 등장을 위해 마련된 배경으로서의 장치가 아니라 각각 자기 존재의 위상을 지닌 동등한 세계들로 배치되어 있다. 이러한 만남을 통해 주체는 자신의 한계를 넘어 기존의 주체가 닿지 못한 또 다른 영역으로 확장된다. 아기 새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어디로든 걸어감으로써 시적 주체는 새가 살고 있는 세계 속으로 그 영역을 확장하게 된다. 이러한 자유로운 주체들의 만남으로 세계의 배치는 개체들의 독립성을 유지하는 동시에 유기체적인 장으로 구성된다.
이준관의 시에서 새는 중층적인 의미를 거느리고 있는 문학적 페르소나다. 새는 초기시의 바탕이 되는 자연의 일부이자 자연 그 자체다. 아기 새가 홀로 있으면서도 외롭거나 무력한 존재로 나타나지 않는 것은 그가 순진무구한 천성을 지닌 하나의 세계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처럼 ‘새’는 무결한 자연으로서 동심의 이데아와 동일한 성격을 띠고 있기에 시적 주체와 만나게 된다. 이준관의 시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새가 시적 주체와 동질성을 지닌 또 다른 주체로서 형상화된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시적 주체는 자신과 닮아 있는 그 작은 아기 새와 교감할 수 있으며 “어깨를 나란히 하고 / 어디든 걸어보고 싶다”고 한다. 이 때 아기 새가 혼자 놀고 있는 길은 이준관이 동심의 원형적 공간으로 회귀할 수 있는 통로이며 어떠한 부정함도 미치지 못하는 순수한 성장과 재생의 공간으로 환원된다.
이준관의 작품이 여타 동시들과 가장 다른 지점은 아이들에게 무엇을 전하고자 애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를 읽는 아이들은 그저 아기 새와 함께 하는 순간을 맞이할 뿐이다. 시인의 역할은 여기까지다. 그 이후 펼쳐지는 이야기는 오롯이 아이들의 몫이다. 동심을 순수성으로 정의한다면 순수성은 방향과 경계가 있을 수 없고 방향과 경계가 없다면 주체의 확장은 무한할 수 있는 것이다.
아이들처럼 미지의 존재이며 비결정적 존재로서 아기 새는 시적 주체와의 만남에 어떻게 반응할지, 어떤 관계를 이루어갈지 알 수 없다. 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채 아기 새와의 만남을 시도하고 있는 시적 주체의 다가서는 행위는 존재자의 확장을 암시한다. 주체가 타자와 공존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보존에만 몰두하고 있으면 안 된다. 주체는 적극적으로 자신을 내어주고 기꺼이 타자와의 만남을 추구함으로써만이 상대 주체와 조우할 수 있고 그러한 만남을 통해서 비로소 열린 주체로의 확립과 도약은 가능해진다. 이준관은 여기서 주체와 타자를 융합시킴으로써 그 가능성을 무한히 펼치고자 한다.
별을 보았다.
깊은 밤
혼자
바라보는 별 하나.
저 별은
하늘 아이들이
사는 집의
쬐그만
초인종.
문득
가만히
누르고 싶었다.
― 「별 하나」 전문
주체 확장의 이러한 작동 원리는 「별 하나」에 이르러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시적 주체는 ”깊은 밤 / 혼자 / 바라보는 별 하나“(「별 하나」)를 만나게 된다. “깊은 밤”이라는 시간적 배경 속에 “혼자” 바라보는 별이다. ‘아기 새’는 이제 해, 달, 별, 물, 나무, 꽃처럼 다양한 자연물로 변주된다.
별은 고귀함과 순수에의 동경을 상징하는 문학적 기호다. 동심과 자연을 동질적이며 이상적인 것으로 보는 이준관의 시각으로 볼 때 시적 주체가 발견하게 되는 별은 “하늘 아이들이 / 사는 집의 / 쬐그만 / 초인종”으로 규정된다. 별은 그저 내가 바라보는 대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로의 통로로 기능한다. 순수한 성장과 재생의 공간으로 가기 위한 매개로서 별은 존재하는 것이다. “하늘 아이들이 / 사는 집”은 지금, 여기의 시공간과 대비되며 어른들이 잃어버린 동심의 아름다운 거처로 나타난다.
시적 주체는 자연 대상물인 별을 보며 “문득 / 가만히 / 누르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이는 동화와 교감의 과정으로서 동심을 지닌 시적 주체가 자신과 동일한 천성을 지닌 존재로 별을 감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지의 존재이며 비결정적 존재로서 별은 충만한 가능성을 품고 있으며 그 세계의 문에 들어서고자 하는 시적 주체의 적극적인 노력은 대상을 타자화시키는 방식을 넘어서서 주체와 주체의 만남으로 승화된다.
이러한 만남의 효과는 초인종을 누르고 싶다고 고백하는 장면에서 시를 종결하기 때문에 극대화된다. 초인종은 누군가를 부르는 신호인데, 그 이후에 대한 시인의 언급은 전무하다. 초인종을 누른 뒤 문이 열리고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비로소 동시는 시작된다. 시인은 동시를 끝냈지만 아이들은 그 끝에서 동시적 상상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별’과 ‘초인종’과 ‘아이’의 만남이라는 구도를 통해 시인은 아이들의 주체성을 무한히 확장시키고자 한 것이다.
이처럼 이준관 시에서 나타나는 ‘아기 새’나 ‘별’과 같은 자연물로서의 미지의 대상은 고정불변의 상태가 아니라 천진난만한 동심을 공유한 동류 주체로 대응되며 시적 주체의 확장과 만남에 대한 갈망을 견인해내는 무궁한 가능성으로 현현되는 것이다.
또 한 가지 특징적인 것은 동심의 세계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문득”, “혼자”, “가만히” 등의 특정 시어가 빈번하게 활용됨5)으로써 그야말로 예기치 못한 우연성에 기대어 이상과 동경의 세계를 환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연성은 두 시에서 모두 나타나고 있는데, 첫 번째 작품에서 아기 새를 만나게 된 것이나 두 번째 작품에서 별을 보게 된 것은 순전한 ‘우연성’에 기초한다. 의도나 기획 하에 시적 주체의 행동이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우연히 길을 가거나 밤하늘을 바라보다가 발견한 ‘아기 새’와 ‘별’이다.
필연적인 이유나 계획 없이 미지의 세계를 맞닥뜨리거나 그곳으로의 전환을 꾀하는 것은, 불가해한 세계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 자발적인 관계 지향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타자와의 우연한 만남이라는 상황에 놓인 시적 주체가 그에 대한 선택과 대응으로써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만남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문득”, “혼자”, “가만히” 그러나 머뭇거림 없이 타자를 향해 다가가는 이 시적 주체의 자발적 욕망은 만남으로 귀결되면서 자기초월적 존재, 즉 더 큰 주체성으로 거듭나게 된다. 아기 새를 만나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보고 싶다고 하는 장면이나, 초인종 별을 눌러 하늘 아이들을 만나보고 싶다고 하는 장면은, 시적 주체가 타자와 관계를 맺으며 세계에 진입하는 자발적 패러다임을 구축함으로써 스스로 성장의 동력을 갖추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이준관의 시 세계에서 순수한 동심을 지닌 시적 주체는 동일한 가치의 지평에 놓인 또 다른 주체인 자연과 만남으로써 참된 전인성을 회복하고 자신의 주체성을 갱신하게 된다.
4. 좋은 동시가 되기 위한 동심의 재현 양상
이준관의 대표작 두 편을 통해 그의 시 세계를 관통하는 하나의 축으로 주체의 확장과 만남의 원리를 고찰해보았다. 이 장에서는 신작 동시 세 편을 소개하면서 이준관의 시 세계가 지향하고자 하는 바를 해석해보고 그가 과연 어떤 좌표 위에 어린이 독자들의 별자리가 될 만한 동시를 올려두고자 하는지에 관한 진위를 파악하고자 한다. 그가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친구로서 창작자이기도 하지만 샤프하고 논리적인 이론가로서 평론가인 점을 떠올려볼 때 신작시가 가리키고 있는 성좌가 곧 그가 생각하는 좋은 동시의 모델이 될 것으로 판단한다. 따라서 세 편의 동시에서 각각 좋은 동시로서의 요건을 찾아보는 것으로 이준관 시 세계의 의의와 전망을 대신하고자 한다.
시는 음악성을 내재한 장르이며 다른 무엇보다 시가 지닌 운율감이야말로 여타 장르와 변별되는 가장 고유한 특성이라 할 수 있다. 자유시와 산문시가 일반화되어가는 경향 속에서 동시 역시 그러한 영향을 받고 있지만 이준관은 동시가 노래처럼 율격을 지닐 때 리듬의 즐거움과 함께 시에 깊은 인상을 줄 수 있다고 믿는다. 운율의 언어로 소리를 구조화함으로써 둔감해진 말의 감각을 깨우고 춤추게 할 때 아이들은 동시 읽기의 즐거움을 느끼고 오래도록 그 말을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초등 교육과정에서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말의 모형, 외형률을 따르는 동시, 의성어나 의태어, 동음이의어 등을 다루며 언어에 대한 직관을 길러주는 활동들을 비중 있게 제시하는 것은 포괄적으로 말의 음악성을 일깨워주기 위한 활동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민들레는
복주머니
봄이
허리에 차고 온
복주머니
“복 받아요!”
“복 받아요!”
모두에게 골고루
복을
나누어주는
은실은실
복주머니
짤랑짤랑
복주머니
― 「민들레」 전문
동시는 노래의 형태일 때 아이들에게 내면화될 수 있다는 이준관의 가치관은 동시의 음악성을 보존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나타난다. 봄이 왔음을 알리는 민들레의 등장을 봄이 모두에게 “복 받아요!”라고 외치며 복주머니를 나누어주는 장면으로 형상화한 이 시는 반복되는 구조와 흉내내는 말, 그리고 발음의 유사성을 활용하여 감각적으로 봄을 의인화하고 있다.
처음 시인은 봄날의 곳곳을 떠다니는 민들레의 둥근 모양을 보고 시각적 유사성을 통해 복주머니를 연상했을 것이다. 또한 시작과 탄생의 상징적인 계절로서 봄이 곧 복과 같다는 의미론적 유사성도 하나의 층위를 형성한다. 이는 ‘봄’과 ‘복’이라는 음성적 유사성을 통해 생명이 움트는 봄의 장면을 한결 입체적으로 이미지화한다. 마지막으로 “은실은실 / 복주머니 / 짤랑짤랑/ 복주머니”라고 하는 구절에서는 의태어와 의성어를 활용하여 리듬을 고조시킨다. 이 작품은 계절의 변화와 감흥을 운율감으로 극대화함으로써 음악성이 좋은 동시가 갖춰야 할 주요한 덕목 가운데 하나임을 말해준다.
ㅡ 어디 가니?
ㅡ 몰라
ㅡ 숙제 다 했니?
ㅡ 몰라
말은
모과처럼 퉁명스럽게 해도
얼굴은
모과처럼 못생겼어도
골목길에서 만난
내 친구
마음은 모과 향기 같은 걸
내가 왜 몰라
― 「내가 왜 몰라」 전문
이 시는 어디를 가는지 숙제는 다 했는지 물어도 “몰라”라고 대꾸하는 친구의 행동을 보여준다. 친구의 그런 퉁명스러운 말과 못생긴 얼굴은 모과에 비유된다. 그러나 그 마음은 “모과 향기 같은 걸 / 내가 왜 몰라”라고 확신하는 화자의 음성에는 친구에 대한 신뢰와 더 나아가 모든 이의 마음속에 모과향 같은 고귀함이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동심이란 무엇이며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준관의 생각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이준관의 동시에서 아이다운 것은 맑고 순하고 고운 것이다. 내가 선의의 마음으로 친구에게 다가갔는데 이런 무성의하거나 불친절한 반응이 나오면 토라져버리거나 상처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시에서 화자는 그런 친구를 탓하거나 미워할 줄 모른다. 도리어 겉으로는 표현하지 못했을 그 애의 따사로운 속마음을 믿고 헤아려주는 착한 마음을 보여줄 뿐이다. 이준관은 지혜롭고 건강한 마음의 상태를 보여주는 어린이 화자를 통해 때 묻지 않은 소중한 동심을 재현하고 진정어린 내면 성찰의 계기를 마련한다. 이로써 좋은 동시란 어린이들이 갖고 있는 사람에 대한 신뢰와 애정을 바탕으로 긍정적인 인간관계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함을 알려준다.
영민이가 놀이터에 토끼를 안고 나오면
아이들은 좋아서
토끼처럼 폴짝폴짝 뛴다
서로 앞 다투어
토끼풀을 뜯어다 주고
오물오물 풀을 먹는 토끼 입 바라보며
토끼 따라 입을 오물오물 한다
토끼 귀가 신기하고
토끼 수염이 신기하고
분꽃 씨처럼 까만 토끼 똥이 마냥 신기해서
눈이 토끼 눈처럼 똥그래진다
ㅡ 나도 한번 안아볼게
ㅡ 나도 한번…
서로 앞 다투어
토끼를 안아보는 아이들
아이들은
토끼처럼 반짝! 앞니가 두 개
토끼처럼 쫑긋! 귀가 두 개
― 「아이들과 토끼」 전문
영민이가 안고 나온 토끼 한 마리는 놀이터의 아이들을 모두 불러 모은다. 토끼가 등장하는 모습을 따라 어느새 아이들도 폴짝폴짝 뛰고, 풀을 먹는 토끼를 따라 아이들의 입도 오물오물 한다. 토끼 귀, 토끼 수염, 토끼 똥이 마냥 신기한 아이들의 눈도 토끼 눈처럼 동그래진다. 앞 다투어 귀여운 토끼를 안아보는 아이들에게는 “토끼처럼 반짝! 앞니가 두 개” 생기고 “토끼처럼 쫑긋! 귀가 두 개” 생긴다.
이 시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아이들의 역동적인 생활상을 반영함으로써 동심의 순수성을 동화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특히 토끼의 외형이나 행동 특성들이 구체적으로 포착되고 생기발랄하게 묘사되면서 궁극에는 토끼의 모습으로 변해버린 아이들의 존재를 환상의 기법으로 보여주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준관은 토끼와 어울려 노는 아이들의 해맑은 풍경을 동화적 서사의 구축과 압축적인 이미지로 집약해냄으로써 동시의 상상력을 고양시키고 그러한 일상성과 환상성의 길항 관계가 시의 균형을 이루고 있을 때 좋은 동시의 요건이 될 수 있음을 말해준다.
5. 나가며
이준관은 매 시집마다 새로운 동시의 모형의 제시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시적 세계의 변모 양상에도 불구하고 그가 놓치지 않고 항상 골몰하고 있었던 것은 동심이란 무엇이며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본원적인 질문이었다. 동심에 대한 오랜 천착 끝에 그는 화해로운 자연의 세계와 순수한 내면을 옹호하는 서정성의 계보를 충실히 이어가면서도 주체와 타자의 관계 속에서 만남의 원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특히 ‘새’와 ‘별’의 대표성을 지녔던 자연, 즉 자신과 닮아있는 또 다른 주체와의 우연한 조우를 긍정하고 자발적인 만남을 지향함으로써 주체는 비로소 자신을 넘어서고 무한한 성장의 궤도에 올라서게 됨을 살펴보았다. 또한 좋은 동시의 필요조건으로서 음악성의 회복과 인간성에 대한 신뢰, 일상성과 환상성의 균형 속에서 발현되는 재기발랄한 상상력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가 동심을 순진무구하고 완전무결한 것으로 바라보는 것은 비록 아이들의 세계가 불완전하고 부조리한 것일지라도 그들이 자신들의 고유한 천성을 희망적으로 고양시켜나갈 수 있도록 하는 발판을 문학적으로 마련해두고자 하는 신념의 발로였으리라 믿는다.
이준관의 동시는 이준관의 것이 아니었다. 그는 동심의 이데아로 들어가는 출입구까지만 데려다줄 뿐 아이들 스스로 그 문을 열 것인지 또한 그 뒤에 펼쳐질 무궁무진한 여행의 주인이 될 것인지 생각하도록 하고 홀연히 사라졌다. 아이들의 것을 아이들의 것으로 돌려준 이준관 시인에게 감사와 경의를 표하며 그가 평생에 걸쳐 동시 문학으로 보여준 아동에 대한 철학과 사명이 이제 한국문학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하나의 길이 되었음을 본다. 시인이 미련스럽도록 정직한 걸음으로 심어둔 도토리들은 언젠가 끝이 보이지 않는 울창한 참나무 숲이 되어 그가 사랑했던 이 땅의 아이들을 안아줄 것이다. 도토리 같은 우리 아이들의 키가 그 숲에 기대어 무성하게, 무성하게 자랄 것이다.
1) 동심과 시심의 상보성과 관련하여 다음의 글을 참고함. 김용희, 「막막한 荒野에서 정신의 집짓기 ― 이준관론」, 한국아동문학연구 제8호, 2000, 73~100쪽.
2) 이준관, 동시 쓰기, 랜덤하우스, 2007, 17쪽.
3) 이준관은 동시집으로 『크레파스화』(을지출판사, 1978), 『씀바귀꽃』(아동문예사, 1987), 『우리나라 아이들이 좋아서』((주)대교출판, 1993), 『3학년을 위한 동시』(지경사, 1999), 『내가 채송화처럼 조그마했을 때』(푸른책들, 2006), 『쑥쑥』(푸른책들, 2010), 『쥐눈이 콩은 기죽지 않아』(문학동네, 2017)를 출간함으로써 동시의 시대를 이끌어내는데 앞장섰으며, 창주아동문학상(1973), 한국아동문학작가상(1978), 대한민국문학상(1979), 방정환문학상(2002), 소천아동문학상(2004), 어효선아동문학상(2008), 국제펜클럽 펜문학상(2010), 한국아동문학상(2018) 등을 수상하며 동시계에서 그 문학적 업적을 인정받았다.
4) 순수 동시의 경우, 자칫 유미주의에 빠지거나 지나친 동심의 미화로 현실생활과 유리된 백일몽의 시에 빠질 위험이 있다. 또 언어유희나 말재간으로 전락한 우려가 있으며 오직 곱고 착하고 아름다운 세계만 보여줌으로써 그렇지 못한 현실에 대해 환멸을 심어줄 수 있다. 현실 반영 동시의 경우, 소재주의에 빠질 수 있고 저급한 산문으로 전락하여 아직 미숙한 아동 독자에게 전달의 난점이 있으며 자칫 저항 일변도의 부정적인 인간을 길러낼 수 있다. 이준관은 이렇듯 두 경향의 동시들이 상호 보완의 입장에 있는 것이라는 요지의 글로서 자신의 동시관을 밝힌 바 있다. 이준관, 「순수 동시와 현실 반영의 동시」, 아동문학평론 봄호, 1988, 116~117쪽.
5) 김용희는 앞의 글 81쪽~82쪽에서 이준관 초기 동시의 미적 특성에 ‘문득’, ‘혼자’, ‘가만히’ 등 특정 부사를 활용하여 정적 미감을 조성하고 있는 점을 주목한다. 이러한 특정 부사가 많이 쓰이는 것은 ‘수줍고 외로운’ 그의 천성과도 닮은 체질적 몸짓이기도 하지만 현실에서 동심의 세계로 복귀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보았다.
글 · 신수진 | 시인. 동화 작가.
2014년 한국안데르센상 동화 부문, 201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부문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및 동대학원 박사과정 재학 중.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8년 5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