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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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장수진 

   

 

 

 

 언 라일락, 개 한 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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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장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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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켜진 청색 작업복 사이에 갈색 개가 엉덩이를 푹 찔러 넣은 채 앉아 있다. 공장의 굴뚝처럼 길게 솟은 개의 목. 안개와 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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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것도 걸려 있지 않은 옷걸이가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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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개죠. 라일락 나무 아래에서 태어났어요. 어머니는 돌아가셨고요. 마지막으로 말씀하셨어요. 빳빳한 모자를 쓰고 책상이 있는 곳으로 가거라. 눈보라가 너를 따라올 거야. 네 머리통만 한. 그것을 잘 살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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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년 동안 나는 책상에서 눈보라를 견뎠어요. 식빵만 한 갈망과 헝클어진 밤하늘을요. 이렇게 말하는 방식도 조금은 이상하죠. 어머니를 탓할 순 없을 거예요. 죽기 직전, 어머니의 몸은 아주 납작해졌어요. 누군가 땅에 그려놓은 개 같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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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자의 죽음. 상실. 그런 감정을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그땐 알지 못했어요. 어머니는 먹지 않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죠. 개의 몸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인간들은 영혼을 상상하죠. 자신의 얼굴로. 장애가 없고 동식물이 아니고 벌거숭이가 아닌, 명예로운 정상성의 연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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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팔을 뻗어 밤하늘을 휘저을 수 있어요. 조용하고 평온한 아름다움과 쉬운 말, 이별하는 얼굴들, 벨벳 피코트를 입은 소년의 옷깃에 내려앉은 눈송이를 떠올려요. 하지만 누군가 내게 고기를 던져준다면 나는 무섭게 뛰어올라 그것을 주둥이로 낚아챌 거예요. 턱 근육을 부르르 떨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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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병으로 시력을 잃은 코미디언이 토크 쇼에 나와 가장 많이 사용한 동사는 ‘보고 있어요’였어요. 부드러우면서도 웅장한 목소리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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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눈보라라는 모자를 쓰고 있어요. 이 도시에 탱크와 군대가 몰려오고 젖먹이들의 가랑이가 박박 찢겨져도 나는 눈보라라는 모자를 쓴 개죠. 개새끼죠. 어떤 손을 ‘햇빛처럼’이라고 부르는지 나는 알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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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 나는 보고 있어요. 어머니는 머리칼을 쓸어 올리고 있군요. 입안 가득 벌과 별을 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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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진  l 

2012년 《문학과사회》 등단. 시집 『순진한 삶』 『그러나 러브스토리』 『사랑은 우르르 꿀꿀』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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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호 신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