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김학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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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장례식
1
우리는 멀리 떨어져 있었다. 먼 거리를 가진다는 건 이별이나 다름없어 아팠다. 우리의 사이는 오래된 극지였고 어느 누구도 기록하지 않는 극지였다. 우리가 잃어버릴 것들의 기록은 우리가 남겨야 했으나 우리는 그것을 노래할 방법을 써둔 사물을 잃었고, 그 후의 방랑으로도 되찾지 못했다. 멀리
이별한 것들이 희미해지고 녹아내리고 있었다. 어느 날 우리는 빙하가 녹은 산맥 앞에 함께 서 있을 것이다.
차가운 바람과 얼음의 흔적이 남긴
거대한 상처가 드러났다.
2
카페에서 나는 아이스 아메리키노를 마시며 아침을 보내고 있었고, 거대한 창문 건너 상가의 가전매장의 대형 티브이에서는 빙하장례식이 치러지고 있다는 뉴스가 보도되고 있었다. 이곳의 도시는 기상기록을 갱신하는 더위로 녹을 듯했지만 아무것도 녹아내리지 않았다. 카페에선 느긋한 음악이 흐르고 있었고 투명컵 속의 얼음은 아직 투명하고 단단했다. 먼나라의 일들은 그저 뉴스일 뿐이었다. 거리에 쏟아지는 햇빛 속을 사람들은 빠르게 걸어갔다. 누구도 서로를 스쳐 지나가는 줄 알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 안에서 무언가가 녹아 사라졌다는 것을 모르는 사이
갑자기 폭설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모든 것이 갑작스러움의 반복이 되는 날들이 이어졌다.
폭설이 끝나면 폭염이 시작되고
폭염이 끝나면 폭설이 시작되었다
3
빙하장례식이 여러 도시에서 이어지고 있었다. 장례식을 치른 도시들은 도시의 역사보다 오래된 빙하가 회복되지 않는 겨울을 고통스럽게 맞이했다. 폭설이 내리는 겨울마다 그들은 빙하의 장례일을 기념일로 기렸다. 빙하의 자리를 기억하기 위한 기념비도 세웠다. 그러나 빙하는 회복되지 않았다. 빙하를 상실한 도시들에 찾아오는 사람들은 점점 줄었고, 겨울은 짧아졌다. 거리에는 전에 없던 여름 더위가 밀려왔다. 그것으로 도시들은 끝이었다. 기념비는 오래지 않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혀지며 사물로 돌아가고 있었다. 사라진다는 말이 녹는다는 말 속으로 스며들고 있었고 어느덧 그 뜻을 구분하지 못하는 세대가 태어났다.
4
빙하가 있는 곳에서 이어지던 빙하장례식은 끝에 이르렀다.
이 길은 우리 모두를 기억의 극지로 인도했다.
차가운 바람과 얼음의 흔적이 만든
거대한 상처를 등지고 서서
우리가 서로의 극지가 되었음을 깨닫지 못했다.
마지막 빙하장례식에 모인 문상객들의 표정인 우리를
우리는 읽어낼 수 없었다.

김학중 l
2009년 《문학사상》 등단. 시집 『창세』 『바닥의 소리로 여기까지』, 청소년 시집 『포기를 모르는 잠수함』, 소시집 『바탕색은 점점 예뻐진다』가 있음. 〈박인환문학상〉 〈오장환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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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호 신작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