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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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신미나 

 

 

 

어서 말을 해

 

        

 

 

   

  경수와 해원은 타이거 새우와 맥주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할지 고민했다. 경수는 타이거 새우를 먹자고 했지만, 해원은 맥주를 진탕 마시고 취하고 싶었다. 물론 타이거 새우도 먹고 맥주도 마신다면 좋았겠지만, 주머니를 털어 봐야 가진 건 고작 10달러 남짓이었다.

  싸구려 호텔에서 나오자마자 습한 바람을 머금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야자수가 비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렸다. 경수와 해원은 홍등이 줄지어 선 바통의 골목으로 들어섰다. 빗줄기가 점점 거세졌고, 해원이 삼십 분 가까이 공들여 컬을 넣은 머리가 젖어 들었다. 샌들 바닥이 미끈거렸고 홀터넥 원피스가 얼룩졌다. 해원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돈도 없으면서 왜 이딴 여행을 가자고 허세를 부린 걸까. 구질구질하게.’

  경수와 해원은 비를 피해 불 켜진 바로 들어갔다. 실내가 상당히 어두웠다. 바 중앙에 샤워 부스가 있었다. 체구가 아담한 여성이 봉춤을 추고 있었다. 경수와 해원은 그냥 나가버릴까 하다가, 시야를 뿌옇게 가릴 정도로 빗줄기가 거세게 내렸기 때문에 체념한 듯 구석 자리 테이블에 앉았다. 둘은 항상 그런 식이었다. 결정을 미루다 결국 좋지 않은 선택을 하곤 했다. 그들은 맥주를 마시기로 한 것이다. 소낙비 때문에.

 

  경수와 해원이 자리에 앉자마자 서버가 산미구엘 두 병을 탁자 위에 탁 내려놓았다. 병뚜껑을 이미 따놓은 상태였다. 직원은 선불을 요구했고, 경수와 해원은 혹시 0이 잘못 적힌 건 아닌지 계산서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입을 쩍 벌렸다. 산미구엘 한 병에 10달러라니. 완전히 당한 것이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첫 주문은 쇼 관람비로 비싸게 받는 것이고, 두 번째 주문하는 맥주부터 제값을 받는 모양이었다. 해원이 어깨를 으쓱하며 난처한 표정을 짓자, 서버가 이런 상황이 귀찮다는 듯이 밖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에띠엠! 에띠엠!”

  서버의 팔뚝에 이레즈미가 새겨져 있었다. 천수관음처럼 손이 여러 개인 문양이었다. 서버는 턱짓으로 밖에 나가자는 시늉을 했다. 경수가 하는 수 없이 현금 서비스를 받으러 서버를 따라 밖으로 갔다.

 

  해원은 빗물에 젖어 찌걱대는 샌들을 냅킨으로 닦아내며, 어쩌면 이번 여행이 경수와의 이별 여행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경수는 잘 생겼다. 해원은 그때마다 자신이 외모지상주의자가 된 것 같았다. 이상하게도 경수의 활주로처럼 날렵하게 뻗은 콧날을 보면, 화가 누그러졌다.

  ‘사귄 지 6년이 다 되어 가는데, 경수는 왜 청혼을 하지 않는 걸까.’

  경수가 여행을 가자고 했을 때 해원은 내심 프러포즈를 기대했다. 해원이 막 맥주 한 모금을 들이켰을 때, 중앙 스테이지에서 쇼걸이 다리를 벌리고 사타구니에서 두루마리 휴지 같은 걸 뽑았다. 쇼걸의 콘셉트는 거미 여인이었다. 거미 여인은 한 점의 교태도 묻어 있지 않은 파리한 얼굴이었다. 마치 마론 인형을 보는 것 같았다. 인조 속눈썹을 붙였고, 눈 밑에 그늘이 짙었다.

 

  해원은 불현듯 어릴 적에 거미집을 터트린 기억을 떠올렸다. 비 갠 날 아침 거미는 큐빅을 여러 개 달아놓은 레이스 보(褓) 같았다. 거미줄. 아름다운 속임수를 지닌 그물. 해원이 막대기로 거미집을 건드렸더니 새끼 거미 수십 마리가 바글바글 터져 나왔다. 거미 여인의 쇼가 끝나고 샤워 부스 안에서 두 명의 여자가 서로를 씻겨 주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가보시 힐만 신은 상태였다. 해원은 자꾸만 출입문 쪽을 돌아보았다.

 

  그중에 한 여자가 수건으로 대충 물기만 훔친 뒤, 요리사처럼 한 손에 팔레트를 들고 내려왔다. 머리카락 끝에서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Try to drawing” 하면서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 그녀는 눈빛으로 종용했다. 해원은 주저하다가 쇼걸의 배꼽 옆에 완두콩만 한 점을 찍었다. 육체에 붓으로 무언가를 그려본 적은 처음이었다. 마치 차가운 물고기를 만진 것처럼 차고 미끄덩한 촉감이 붓끝에 전해졌다. 다 됐다는 눈짓을 하자, 쇼걸은 상냥하게 웃으며 무릎을 살짝 구부려 인사했다. 팁을 바라는 것 같았지만, 해원이 팁을 주지 않자 다른 테이블로 갔다.

 

  옆자리 테이블에는 서너 명의 한국 남자들이 앉아 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이 깔깔대며 쇼걸의 몸에 뭐라고 썼다. 그들은 테이블을 두드려대며 요란하게 웃어댔다. 해원은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싶었다. 쇼걸은 그들을 향해 웃어 보였다. 남자들이 또 한 번 자지러질 듯 웃어댔다. 쇼걸이 다시 스테이지 위로 올라가 거품을 내며 몸을 씻었다. 색색의 물감이 녹아내리듯 흘렀다. 해원은 실내 공기가 역하고 비릿하게 느껴졌다. 그때 경수가 현금서비스를 받고 돌아왔다. 온몸이 쫄딱 젖은 상태였다. 해원은 맥주를 다 마시지 않은 채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해원과 경수는 호텔로 돌아가기 위해 툭툭이를 잡았다. 비가 한결 잦아들었다. 빗방울이 토독, 토도독 툭툭이 지붕을 때렸다. 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라디오에서 밥 말리의 노래가 흘러 나왔다.

  “Everything's gonna be all right, So, woman, no cry…”

  해원은 밖을 보는 척했다. 툭툭이 안으로 빗물이 들이쳐, 해원이 울고 있는지 경수는 모를 것이다. 아니 어쩌면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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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나  l 

200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집 『싱고,라고 불렀다』 『당신은 나의 높이를 가지세요』, 산문집 『다시 살아주세요』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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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