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김성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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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
의자는 기다랗고 커다랗다, 이런 문장이 떠올랐다. 느닷없이. 모습엔 피가 없다, 이런 문장도 있었다. 그것이 형식이고 건축이고 아름다움이다, 이 문장은 책상 책꽂이에 붙은 포스트잇에 있는 문장이다. 문장들을 쓴다. 저것은 파랗게 생겼는데 은은한 광채를 발하고 있다, 이런 문장도. 이 세계는 저녁의 낯빛을 황홀히 하여 느려지는 바람을 별들에게 준다, 이런 문장도. 죽음엔 날 모르는 조각들이 출렁거린다. 파도다. 어깻죽지다. 너의 시적 선언이고 우리가 반으로 가르는 사과 속의 씨앗이다. 또는 가능한 순간이고 존재의 순간이며 타오르는 간추린 늦봄이다. 자전거를 타고 가자. 아니지. 상자를 열고 그 안의 것을 꺼낸다. 누가 감각하는가. 손을 내려놨었다. 저 멀리 그리고 침묵에 다다르는 때까지. 나는 들뜨고 힘이 없다. 또 어떤 문장은 문 열리는 냉장고 뒤로 나타나고 또 어떤 문장은 붙여 쓰고 띄어 쓰는 그 순간에 보인다. 나는 그러니까 나를 좀 더 천천히 생각하고 모든 쇳덩어리들은 여전히 휘어지고 있다. 나는 목적과는 다른 문장을 쓴다. 누군가는 귀가한다. 누군가는 누가 놓았는지 모를 창틀의 돌멩이를 쳐다보고 있다. 나는 나를 훔쳐볼까 문장으로 쓰곤 이곳에 나를 가져다 놓는다. 가끔 몸이 으스스 떨리는데 이유는 알 수 없고 어디까지나 내 순간들은 장황해지는 중이고 어디까지나 불도 빛도 거품도 어둠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람들도 사물들도 물컹물컹하다. 어떤 문장은 잠시도 내 잠을 기다려 주지 않고 내가 가졌던 어떤 문장은 내 휴식을 메워 하얗고 지루하다. 나의 예감 나의 불가능 정열까지 지어내면서 다가오는 문장은 지금도 다가오고 있고 지루하다. 책이 계속 펼쳐져 있다. 저기 전깃줄이 내려와 있다. 고양이 한 마리가 좁은 담 위를 걷고 있다. 배가 고프다. 지금도 그 소리가 들린다는 문장도 있었다.

김성호 l
2015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로로』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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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호 신작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