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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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효선 

 

 

 

복도

ㅡ 나를 만나러 가는 길

        

 

 

 

 무슨 생각을 하느냐고 묻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무슨 일이냐고, 왜 그러냐고도 자꾸 캐묻지 말아 주세요. 없던 생각도, 없던 일에도 꼬리가 달려버리니까요. 그토록 애써 없앤 꼬리를 굳이 진화론에 다시 편입시킬 생각은 아니시죠. 사라진 꼬리는 엉치뼈에 붙어 바닥을 추앙하는 일로 만족합시다. 매끈하게 비어 있는 허공이 좋아요. 엉덩이라고 해 두죠. 허공이라고 엉덩이가 없겠어요. 저녁노을이 우리가 모르는 그곳에 걸터앉아 있는 걸 매번 봤잖아요. 보고 있으면 눈시울까지 붉어져서 주르륵 흘러버리는 마음을. 무슨 말이냐고요. 있지만 보이지 않는, 양파나 청양고추처럼 섞여서 맛을 내는, 사소한 어떤 장소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는 중입니다. 물론 사소함에 어떤 방점을 찍으려는 건 아닙니다만.

 그곳의 사소함은 생각에 잠기는 일입니다. 멍때리기에 최적의 장소하고 할 수 있죠. 수없이 걸레질하며 반들반들 윤을 내던. 가끔 너무 미끄러운 나머지 파리도 엉덩방아를 찧곤 했지요. 들키지 않으려고 발끝을 들고 걷거나 털어놓을 데가 없는 분함을 삼키던 용도로 쓰일 때도 있었지요. 이쪽에서 저쪽으로 이어지는 혹은 삶의 통과의례처럼 놓여 있는 곳입니다. 우리는 아마도 그곳을 복도라고 부르지요. 그런데 복도는 언제부터 그렇게 쓸쓸히 길어진 얼굴이었을까요.

 처음 복도를 접한 건 아마 학교였을 겁니다. 초등학교 땐 질서와 규칙을 배우기 위해 무릎이 닳도록 잔소리를 들었을 테고요. 삶에서 뛰어다니지 않는 법을 처음으로 배운 곳이기도 하지요. 지나는 창문 사이로 다른 반을 기웃거린 적도 있었지요. 사춘기 시절 남녀공학을 다닐 때는 남자반 여자반 순서로 나란히 복도에 번갈아 있었습니다. 교실에 선풍기도 없던 시절이었으니 여름이 얼마나 끔찍했겠어요. 더구나 호르몬이 왕성할 시기였으니. 어느 반에서 먼저 시작했는지 모르겠지만 창문을 뜯어냈어요. 아마 1반이었던 남자반이었을 거예요. 복도 창을 통해 바깥바람이 들어오도록 말이죠. 그걸 시작으로 모든 반의 창문을 떼어내 버린 겁니다. 쉬는 시간 종이 울리면 우르르 복도로 나와 깔깔거리기 일쑤였죠. 그 나이에만 누렸던 알 수 없는 웃음의 세계가 건물을 호기롭게 흔들기도 했습니다. 가끔 누군가 휘파람을 불어 알 수 없는 눈빛이 오가기도 했죠. 또 어떤 날엔 교실 뒤편 환경정리로 전시해 놓은 시화와 그림이 몽땅 없어지기도 했어요. 끝까지 누구 짓인지 밝혀내진 못했어요. 그때 제 시화도 도둑맞았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그 복도에서 오가던 눈빛들, 설렘, 떨림이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 힘이었다는 걸. 특별한 한 사람이 아닌 그저 무리 속에서 느끼는, 사람 냄새 혹은 열정의 기운이 우리를 지탱하는 힘이었다는 것을 말이죠.

 복도 얘기를 하다 보니 또 다른 복도가 떠오릅니다. 실은 복도 이야기의 시작은 여기라고 해야 맞습니다. 짧다고도 길다고도 할 수 없는 길이와 보폭을 가진. 물론 복도는 길이보다도 공기의 무게로 채워진 표정이 더 어울립니다. 복도 양옆으로는 아파트 호실처럼 번호가 새겨진 방이 죽 늘어서 있습니다. 복도는 사람들이 깨어남과 동시에 일을 시작합니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가득 차 있죠. 느리게 뒷짐을 지고 걷거나 주머니 안에 손을 넣거나 고개를 바닥으로 떨어뜨리거나. 무표정한 얼굴로 복도는 걷고 있어요. 표정의 변화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가끔 인사를 건네면 웃어주기도 하지만 고개를 홱 돌려 버리거나 도망쳐 버리는 발걸음도 있었죠. 무념무상의 편안한 얼굴이 아닌 잔뜩 굳어 찡그린 표정들입니다. 나는 애써 목소리 톤을 높이며 “안녕하세요~ 잘 주무셨어요?”라는 말을 던져 봅니다. 지극히 내향적인 나조차 그 우울에 갇혀버릴 것만 같았거든요. 그때야 미소로 인사를 건네거나 내 손을 잡는 사람도 있습니다. 보통은 고개를 아래로 떨어뜨린 채 말없이 걷기만 합니다. 복도는 활기차게 아침을 맞고 싶어도 우울한 기운을 벗어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꿈도 희망도 살지 않는 곳처럼요. 가끔 복도에 누워 있는 사람들도 만납니다. 아늑하고 따뜻한 방보다 복도의 그 서늘함이 좋다면서요. 쪼그려 앉아 물끄러미 있기도 하죠. 무슨 생각을 하느냐고 물으면 고개를 떨구어 버리거나 고개를 흔듭니다. ‘그냥 아무 생각도’라는 침묵이 돌아옵니다. 물론 복도를 지나 밖(마당)으로 나가는 문이 있습니다. 볕을 쬐려고 바깥 벤치에 앉아 있는 사람들도 있죠. 그래도 대부분은 복도를 벗어나려 하지 않습니다. 봄볕이 따듯하게 내리쬐는 날에도 겨울 외투를 입은 채 주머니 안에 두 손을 꼭 넣어 두죠.

‘추워요. 추워서 겨울 외투를 벗을 수 없어요. 그래도 겨울만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무도 나를 데리러 오지 않아요’. 들어갈 수 없는 벽입니다. 벽을 부수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 것처럼요. 마음이 추워서 오히려 추위에 중독된 사람들을 어떻게 햇볕 쪽으로 데려올 수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인간이라는 존재가 답이 없는 질문일까요. 인간이 궁극적으로 가 닿아야 할 미지가 있긴 한 걸까요. 마음을 안다는 건 마음을 연다는 말일까요. 대체 그 마음은 어디서 건너오길래 이토록 짚어도 짚어도 허방에 빠지는 걸까요. 정신은 우리가 알 수 없는 여러 현상을 경험하게 합니다. 쉽게 정복할 수 있는 분야도 아닐뿐더러 지식이나 정보로만 다가가기도 힘든 부분이죠.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말도 섣부른 판단이며 오류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마찰을 겪는 세계니까요. 인간과 인간, 혹은 인간과 이 세계, 인간과 삶, 인간과 시공간 등 무수히 많은 마찰 속에서 성장해 나가는 존재죠. 그중에서도 특별한 사이가 있다면 그건 바로 나 자신과의 관계가 아닐까요. 누구도 어쩌지 못하는 스스로와의 싸움. 내 안에서 누군가 끊임없이 소리칠 때가 있습니다. 윽박지르고 때론 닦달하기도 하죠. 그 상대가 나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세상을 향해 혹은 타인을 향해 소리칩니다. 욕을 내뱉기도 하고 허공으로 헛손질을 할 때도 있습니다. 그걸 숨기느냐 드러내느냐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싸움의 상대가 나 자신이라는 생각에 이르기까지 나는 어쩌면 늘 바깥을 사는 사람입니다.

 공자는 나이 예순 살에 이르기까지 예순 번이나 사고방식이 변화했다고 합니다. 처음에 옳다고 하던 것을 끝에 가서는 부정했다는 말입니다. 공자라서 가능했던 걸까요. 어쩌면 우유부단하거나 줏대가 없는 말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사고는 유연하게”라는 말을 하지만 실천은 늘 어렵죠. 내 생각과 고집을 꺾고 타인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일은 쉽지 않으니까요. 신념이라는 우뚝 선 고집이 내 안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나온 시간 켜켜이 나를 지탱해 준 힘이기도 하고요. 나이가 많든 어리든 나는 나 자신의 들러리로 살 때가 많습니다. 그러니 정말 깊은 곳에 있는 내 소리를 잘 듣지 못합니다. 정작 하고 싶은 말은 감춰버리기 일쑤죠. 무수한 나와 싸워서 이긴 사람들. 우리는 그 사람들의 무리에 섞여 보통의 삶을 이어나가는지도 모릅니다.

 돌고 돌아 다시 복도를 걷습니다. 그 복도를 걷는 사람은 망상과 환청에 시달리는 조현병 환자이기도 합니다. 우연히 개인적인 일로 그분들과 한 달을 함께 보냈습니다. 처음 조현병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땐 나를 해하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도 염려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하지만 곧 그런 생각은 지나친 강박이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분들 역시 연약한 자신과 싸우는 약한 존재일 뿐이었습니다. 스스로 그렇게 만든 것도 아닙니다. 나 자신조차 나에게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된 순간이었을 겁니다. 이십 년을 삼십 년을 이곳 복도를 수없이 걸어 다닌 분도 있습니다. 무슨 생각을 하느냐고 물으면 이젠 생각조차 다 지워 버렸다고 말합니다. 나 자신에 갇힌 사람이야말로 가장 끔찍한 지옥을 경험하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진짜 나는 어디에 있을까요. 여전히 바깥으로 도망만 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래서 늘 불안과 불만을 껴안고 사는 약한 존재인지도요. 복도는 그런 생각들을 한 걸음 한 걸음 옮겨놓다 그만 그렇게 쓸쓸히 길어진 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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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선  l 

2004년 《리토피아》 등단. 시집 『서른다섯 개의 삐걱거림』(문화체육관광부우수도서), 『오늘의 연애 내일의 날씨』 『어느 악기의 고백』(2020년 아르코문학나눔도서), 합동시집 『시골시인-J』가 있음. 〈시와경계문학상〉 〈서귀포문학작품상〉 〈서귀포칠십리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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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