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2024
Extra Form Output
저자 권현형 

 

 

 

 

슬픔으로부터 멀리 달아나기, 빛의 속도로!

 

 

 

 

   기억에 부재하면 잃어버린 것이 맞을 것이다. 이미 내게 무늬가 옮겨붙었는데도 그는 기억에 없다. 권상균 씨의 무늬를 찾아서, 나와 닮은 무늬를 찾아서, 함께하면서도 계속 잃어버리게 되는 시간을 찾아가 꽃을 바치고 왔다. 개미와 낙엽, 바람과 바다, 인간과 공기, 하늘과 땅, 자연과 사물이 아귀가 딱 들어맞을 때가 있다. 의도하지 않았으나 바코드처럼 산 자와 망자가 연결되어 있다는 걸 느낄 때가 있다. 묘지 옆에 누군가 두고 간 토기 화병에 물기 없는 가을꽃을 꽂아드리고 왔다.

  내 일을 남의 일처럼 말하고 싶을 때가 있다. 사실은 전설처럼 아득한 대학 1학년 여름 처음 찾아뵈었을 때, 나중에라도 표식이 될 수 있도록 가져간 목이 긴 화병이었다. 그리고 수십 년이 흘러 다시 찾아갔을 때 토기 화병은 끈질긴 DNA처럼 녹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었다. 전날 미리 맞춰두고도 깜박 잊은 화원의 꽃바구니 대신 야생화를 꽂아드리고 오게 되었으니 이보다 더 강렬하고도 우연한 의도가 있을 수 있을까 싶다.

 

  “네가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단다. 존. 너는 너무 잘 잊어버려. 이걸 알아야 해. 죽은 사람은 몸이 묻힌 곳에 머물지 않는다는 걸 말이야……. 천국 얘기가 아니야. 아무튼 이건 다른 얘기란다. 망자들은 죽으면 지상에 머물 곳을 선택할 수 있단다.”

  존 버거의 이 문장은 나의 불효를 구원해 주는 듯했다. 존 버거의 소설을 읽다가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말에 말할 수 없는 위로를 받았다. 아들은 그들의 조국, 그들의 고향으로부터 먼 리스본의 광장에서 돌아가신 어머니의 익숙한 걸음걸이와 우연히 만났다. 망령인 채 어머니는 살아 있는 아들의 팔짱을 끼고 생전처럼 다정하게 말한다.

 

  중요한 걸 깜박 잊을 때가 있다. 주문해 놓은 꽃바구니를 잊듯 사람을 잊은 적 있다, 30년간이나 중요한 사람을 잊은 척했다. 잊었던 아버지를 찾아뵈러 가는 길에 비가 잠깐 빛처럼 왔다가 그쳤다. 더 방치하다 영원히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남편의 설득에 번개팅하듯 기일을 앞둔 아버지를 찾아 나섰다. 아버지의 본적이 있는 영천시 화산면 행정 복지센터를 내비게이션의 목적지로 설정하고 길을 나섰다. 아주 늦게 오는 기별처럼 아주 늦게 알게 되는 진심도 있다. 그날 공공 기관에서 알 수 없는 기표들끼리의 닮음을 확인했다.

  

숫자가 신의 표식이라는 걸 공공연한 비밀처럼 느낀 지 오래다

 

  숫자에도 뼈가 있다면 33이라는 숫자는 뼈에 그늘이 고여 있다고 생각했다. 어머니가 남편을 잃은 숫자 26도 뼈에 그늘이 고여 있다고 생각했다. 그토록 의미를 부여한 숫자들에 대한 기억의 오차를 확인했다. 서른셋에 돌아가신 줄 알았더니 서른둘에 돌아가셨다는 걸 확인하게 되는 순간 빈틈없는 슬픔의 골밀도에 균열이 생기면서 묘한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그건 그렇다 하여도 10월 10일이 내 결혼식 날짜인데, 10월 10일이 아버지 생신이라는 건 새롭게 확인하게 된 놀랍지도 않은 진심이었다.

  숫자가 신의 표식이라는 걸 공공연한 비밀처럼 느낀 지 오래다. 아버지 기일과 딸아이의 주민등록 번호 끝자리가 일치한다. 사라지지 않는 유전자의 넘버링 정도로 이해하려면 되려나. 이건 미신의 문제가 아니다. 존 버거의 소설 속 어머니가 말했던 “이건 천국이(천국의 문제가) 아니다”라는 맥락과 비슷하다.

  나무 유골함을 가슴에 안고 등에는 생후 두 달 된 아가를 업고 젊은 어머니가 기차를 타고 혼자 왔던 곳을 짧게 내린 비와 함께 찾아갔다.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고독하게 자란 경상도 남자가 강원도 여자를 만났고 그 아이가 채 백일이 되기도 전에 배롱나무 숲 사이로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아버지가 사라진 후 홀로 백일을 맞은 아가의 백일 기념사진 속 얼굴은 고독해 보였다. 어른들의 카르마가 아가에게 전해지지 않길 바라면서도 “카르마까지 사랑해야 한다는” 빌 게이츠의 연설문 속 문장을 사랑했다.

  그 아가가 설령 나였다고 하더라도 나는 언제나 그 서사 속으로 함몰되지 않으려 했다. 그들의 이야기는 그들의 이야기일 뿐 나는 나로 태어났다. 죽어서도 살아서도 뵐 일 없는 친척처럼 어머니와 함께 찾아갔던 집성촌의 선산을 수십 년 지나 다시 찾아갔다. 그렇다고 하여도, 시를 잊은 적 없듯 아버지를 아예 지운 적 없다. 연민에 휘둘리거나 휘감기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그도 그 자신의 기원을 이루었을 터이다. 사라지기 전까지 매 순간 고뇌하고 최선을 다해 살았겠으나 너무도 빨리 소멸 해버렸다. 그를 몰라도 너무나 모른다. 그러므로 나는 뿌리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허무주의자다. 변함없이 구름의 변주에 더 매혹되는 허무주의자다.

  화산 행정 복지센터에서 소개해주신, 집안 할아버지뻘이라는 이장님의 도움으로 간신히 아버지의 흔적을 되찾았으나 칡넝쿨로 뒤덮여 알아볼 수 없는 얼굴의 무덤을 마주하게 되었다. 장손인 아버지가 빨리 없어진 탓인지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버지, 그 윗대의 아버지까지 그리고 윗대의 어머니들까지 직계 전체가 위대한 칡넝쿨로 뒤덮인 채 침묵하고 있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고독한, 알 듯 모를 듯한 영혼을 위해 신이 계신다면 가호를 내리시기를 그저 바랐다. 새벽이 밝으면 그의 기일이었다. 우울한 민낯을 보고 그냥 갈 수가 없어서 근처에서 예기치 않게 숙소를 정하고 벌초를 하고 가기로 했다. 사람을 사서 직계 조상들의 묘비를 돌봐드리고 청주를 사서 예를 갖춰 엎드려 절을 하고, 그리고 서둘러 도망칠 계획을 했다. 도망쳐도 숫자로 기념일로 그는 악착같이 뒤쫓아올 것이므로 부담 없이 죄의식 없이 무거운 카르마로부터 망설임 없이 달아났다.

  죽은 사람은 몸이 묻힌 곳에 머물지 않게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아버지도 지상에 머물 생각이 있었다면 살고 싶은 곳에 가 머물고 계시길 바란다. 그러나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우연히라도 이국의 여행지에서 만나 망자인 아버지의 팔짱을 끼고 햇볕 좋은 광장을 거닐고 싶진 않다. 영천의 화산면 가상리로부터 멀리 최대한 멀리 달아나 배롱나무 숲까지 기차역까지 뛰어갈 것이다. 오래전, 막 사라진 자의 따뜻한 재를 가슴에 안고 젖비린내 나는 아가를 등에 업고 기차역에 내린 사람을 보고도 나는 모른 척할 것이다. 짐을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울지 않을 것이다. 묘지 근처에서 만난 가을바람의 몸과 마음처럼, 가을 하늘의 몸과 마음처럼, 맑기로 눈이 아플 정도로 맑기로 멀리 높기로 눈부시게 예쁘기로 작정한다.  ♦

 

 

 

 

 

 

 

 

 

 

 


 

권현형.png

권현형  l 

1995년 《시와시학》 등단. 시집 『중독성 슬픔』 『밥이나 먹자, 꽃아』 『포옹의 방식』(2013년 아르코 문학나눔 우수문학도서) 『아마도 빛은 위로』, 편저 『김영태 시선 초판본』, 공저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ㅡ 김수영 50주기 기념시 해설집』 등이 있음. 〈미네르바작품상〉 수상. 200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 수혜, 2023년 아르코 문학창작기금 발간지원 선정. 

 

 

 

ㅡ

2024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