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김효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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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ㅡ 멀리서 나를 부르는 빛
목소리도 아니고 기타도 아니고 피아노도 아니다. 대금이나 소금도 아니다. 아니 그 모든 것이다. 음악이 단지 듣는 행위가 아니라 대상이라고 처음 느꼈던 때는 이성복 시인의 「정든 유곽에서」라는 시에서였다. “누이가 듣는 음악 속으로 늦게 들어오는/남자가 보였다 나는 그게 싫었다 내 음악은/죽음 이상으로 침침해서 발이 빠져나가지/못하도록 잡초가 돋아나는데”라는 시구. 이 문장에서 ‘음악’은 ‘누이’와 ‘나’ 사이의 이질감 혹은 변화로 인해 달라지는 혼란스러움을 상기한다. 시를 해석하거나 해설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음악’이라는 단어가 시에서 매개체 혹은 발화의 대상으로 연결된다는 생각에 처음 이 시를 읽었을 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처음 시를 쓰겠다고 다짐했을 때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나는 죽어도 이런 시를 쓸 수는 없겠구나 하는 어떤 좌절을 먼저 맛보기도 했었다.
음악은 과연 무엇일까. 무엇이길래 심금을 울린다느니 혼을 빼놓는다니 하는 걸까. 어디서 오는 감정일까. 어릴 때 만화영화에 빠져서 ‘캔디’나 ‘빨강머리 앤’, ‘마징가Z’, ‘코난’ 뭐 그런 노래를 줄기차게 들으며 따라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눈앞에 보이는 아름다움에 마음이 온통 빼앗길 나이였다. 초등학교 5학년 무렵 담임선생님이 새로 부임해 오면서 획기적인 수업 방식과 함께 처음 듣는 노래를 가르쳐 주셨다. 얼마나 강렬했는지 지금도 그 멜로디를 잊을 수 없다. 아마 민주화 열풍이 거세게 불어 닥친 시기라 그런 노래를 들려주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첫 부임이었고 혈기 왕성한 이십 대였으니까. 그때 배운 노래 중 기억에 남는 노래 가사는 “살찐 강아지 한 마리 어어 철뚝길로 뛰어가요 새끼 염소도 한 마리 어어 강아지만 쫓아가요”와 “장막을 걷어라 너의 좁은 눈으로 이 세상을 떠 보자”라는 노래다. 훨씬 나중에야 노래의 의미를 알게 됐을 때 뭐랄까 강렬하게 소름이 돋았다. 나의 이십 대에도 민주화에 대한 열망으로 데모가 끊이지 않을 때였다. 물론 나야 어떤 목소리도 낼 수 없었지만 친구들과 노래로 힘을 한데 모으곤 했었다. 시절은 노래로 남아있고 노래는 어쩌면 시절의 기억인지도 모른다. 그때 흘린 피와 눈물이 고스란히 노래에 스며들었는지도.
한번 꽂힌 노래는 종일 지겨울 때까지 듣는 버릇이 있다. 멜로디가 온몸에 스며 골고루 퍼져 피가 되고 살이 될 때까지. 그래서 지겨워지면 한동안 듣지 않기도 한다. 별로 좋지 않은 버릇이다. 팝송이든 가요든 피아노곡이든 뭐든 그렇다. 원래 한번 나에게 온 것들은 오랫동안 가지고 있는(사람이든 사물이든 취미든) 편인데 노래는 참 이상하게 한번에 체할 때까지 듣는 버릇이 있다. 멜로디가 나를 장악해서 더 이상 놓지 않으면 안 될 때까지. 어떤 날은 새벽까지 듣다가 아침을 맞기도 했다. 대체 노래가 뭐길래 이렇게 집요하게 내 속을 파고드는 것일까.
장르를 가리지는 않지만 유일하게 듣지 않는 노래는 트로트다. 트로트를 들으면 멀미가 쏟아지던 기억으로 현기증이 먼저 생긴다. 어릴 때 고향 집으로 내려갈 때 시외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그때마다 버스 안에서 트로트가 흘러나왔다. 트로트 때문이었는지 버스의 흔들림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멀미를 주체할 수 없어 거의 실신 지경에 이르렀다. 그때부터 버스와 트로트는 한 몸이 되어서 나를 괴롭혔다. 집에 가는 일보다 버스를 타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미치도록 괴로웠다. 사람들은 “무슨 그런 일로”라고 쉽게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고통을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속이 메스껍고 위로 계속 올라오는 느글거림을. 한 시간을 버티기가 쉽지 않았다. 버스에서 내린 뒤에도 어지러움과 두통이 계속 딸려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어디선가 트로트가 들리기만 해도 멀미가 자동으로 생산된다. 그 뒤로 꽤 오래 버스를 타지 않게 되었고 운전을 하면서 멀미는 사라졌다. 지금은 가끔 버스를 타는데 예전만큼 멀미가 심하지는 않았다. 아마 심리적인 문제도 있었을 테고 지금은 예전처럼 버스에서 트로트 음악을 크게 틀지 않아서일 것이다. 물론 지금도 시외버스를 타려면 꽤 용기가 필요하긴 하다.
노래의 힘은 어디까지일까. 아주 오랫동안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멜로디는 좋거나 나쁘거나 각인되는 기억으로 남는다. 막 중학생이 되었을 때였나 아무튼 조금 컸을 때 새벽에 화장실을 가려고 일어나는데 안방 라디오에서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 음악에 나는 화장실 가려던 생각을 잊고 노래에 빠진 채 그대로 서 있었다. 가수 조동진 님의 ‘제비꽃’이었다. 어두컴컴한 새벽에 조곤하게 울려 퍼지던 그 목소리는 육체를 떠나 영혼에 폭 꽂혀버렸다. 그 뒤로 한동안 조동진 님 노래에 빠져 살았다. 테이프가 늘어져 더 이상 들을 수 없을 때까지. 목소리가 갖는 힘은 어디까지일까. 인류가 사라지기 전까지 목소리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우주선에 음반을 실어 보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지구인을 알릴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였다. 우리는 우주인들이 듣는 노래를 생전에 들을 수나 있을까. 음악이 주는 신비로움이 어디까지인지 모르는 채 살아가겠지.
반복되는 리듬이 갖는 힘인가. 중고등학생 시절에는 주로 팝송을 들었다. 당시 영화와 맞물려 팝송의 시대가 열린 듯도 하다. 물론 발라드풍의 가요도 쏟아졌다. 아마 내가 당시에 가장 좋아했던 노래는 김창완 가수, 김광석 가수, 동물원 등이었던 것 같다. 나머지는 주로 팝송 계열을 들었다. 그때 들었던 팝송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면 그 시절의 등굣길과 친구들, 만화방 그런 것들이 떠오른다. 어딘가에 매몰되지 않으면 견디기 힘든 날들이었다. 아프면서 씁쓸하면서 풋풋한 사과향 같은. 발랄하면서 우울한 리듬이었다. 그 시절엔 그 음이 주는 느낌을 정확하게 몰랐다. 지금은 동시에 여러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노래의 힘이 아닐까 싶다. 노래도 시도 한 편의 이야기라고 한다면 그 안에는 여러 감정이 뒤섞여 있을 것이다. 그러니 온전히 경쾌한 리듬이라고 해서 경쾌하게만 들리는 것은 아니다. 그 안엔 희로애락이 스며들었기에. 그 당시에는 마이마이라고 부르던 조그마한 카세트가 있었는데 라디오에서 좋은 노래가 흘러나오면 공테이프에 녹음해서 듣기도 했다.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듣던 노래들. 언제 어디서나 들고 다니던 그 작은 사물이 내게 주던 위안을 잊지 못한다. 그러니 내가 껴안고 있던 음악으로 한 시절을 버텼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얼마 전 친구들과 LP바에 간 적이 있다. 스무 살 무렵 들락거렸던 음악다방(?)의 분위기를 연상시키는 곳이었다. 지금도 이런 곳이 있다니. 들어서자마자 흔히 말하는 7080의 노래들이 쏟아져나오고 있었다. 한 테이블에서 자신들의 신청곡이 나오자 환호를 지르며 따라불렀다. 조용히 듣고 싶었지만 요즘 보기 힘든 광경이라 놀랍기도 하고, 그 시절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자아내고 있어서 그냥 즐기기로 했다. 술을 마시며 신청곡을 듣는 곳이라 그런지 의자가 들썩거리는 꽤 발랄한 분위기를 풍겼다. 꽤 오랜 시간이 흐르고 수많은 노래가 쏟아져 나오는데도 저절로 노래를 흥얼거리게 되는 곡들. 마음에 뿌리를 내려 내 몸에 피가 되고 살이 되어 나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음악의 힘일까. 나로 살아가는 데에는 세상 모든 것들로부터 만들어진다는 것. 그리고 먼지로 흙으로 돌아가 다시 생명력을 가진 무엇으로 흥얼거리게 되는 건 아닐까. 꽃 피는 힘이 그곳에서 나오는 건 아닐까.

김효선 l
2004년 《리토피아》 등단. 시집 『서른다섯 개의 삐걱거림』(문화체육관광부우수도서), 『오늘의 연애 내일의 날씨』 『어느 악기의 고백』(2020년 아르코문학나눔도서), 합동시집 『시골시인-J』가 있음. 〈시와경계문학상〉 〈서귀포문학작품상〉 〈서귀포칠십리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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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