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이문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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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시인] 이문재
신작시: 다시 땅끝 / 민간인 / 새벽 기도
자선시: 어싱 / 이제야 꽃을 든다
[시인론] 노지영 “연상하고, 연결하고, 연장하려는 마음”
신작시
다시 땅끝
그날 처음
땅끝에 왔을 때는
혼자서 바다만 바라보았다
그다음 둘이서 왔을 때는
섬과 섬 사이를 바라보았다
사방으로 달려나가다 문득 멈춰
바다 밑으로 빠져드는 섬들을 보았다
오늘 여럿이 와서 보았다
모든 섬이 바다 밑으로 이어져 있으며
땅은 땅대로, 바다는 바다대로
한 치의 빈틈없이 이어져 있었다
땅과 바다 또한 서로 이어져 있었다
땅끝이자 땅의 시작
바다의 시작이자 바다의 끝 여기
지구의 피부 위 작디작은 한 지점
두 팔 벌려 하늘을 우러르다 보았다
민간인*
1951년 1월
황해도 옹진에서 연평 백령
백령에서 다시 흑산 거쳐
목포까지 뱃길 아흐레
삼대는 미 군함에 타고 있었다
목포에서 영암 해남 거쳐
강진 성전까지 걷기를 몇 날 며칠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큰형
그리고 세 살 난 둘째 형
북풍한설 남도 초행길
말로만 듣던 아랫녘에 닿은
아는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는
농사꾼 삼대가 봇짐을 푼 성전 월출산 기슭
첫 끼니 첫날 밤 첫 주인장 첫 눈물
첫 모내기 첫 누명 첫 가을걷이 첫 이별…
저 수많은 맨 처음이 대체 어떠했는지
1959년 가을 김포에서 태어난 막내조차
내내 알려 하지 않았다
* 김종삼의 시 ‘민간인’에서 많이 빌려왔다.
새벽 기도
— 김초혜 시인께
먼동 틀 때
어제가 선물이었다고
두 손 가지런히
땅거미 질 때는
오늘도 누군가에겐 선물이리라고
먼 동쪽으로 눈길
사람의 마을에 불 들어오고
밤하늘에 별 돋고
달 뜨고
나는 다시
정면을 향해 두 손 가지런히
자선시
어싱
어싱, 저도 최근에야 들었는데요,
맨발로 땅을 밟고 걷는 것을 어싱이라고 한답니다.
조금 낯설지요. 어감도 그렇구요. 예, 그렇습니다.
영어입니다. earthing. 사전에는 접지라고 나옵니다. 接地.
우리말로 땅 밟기라고 옮기면 의미가 조금 달라지겠지요.
정초에 악귀 잡신을 물리치는 지신밟기가 떠오를 수도 있겠습니다.
어싱은 지신밟기와 거리가 멉니다. 말 그대로 접지입니다.
맨발로 땅을 밟는 단순한 행위인데 얼마 전부터
새로운 건강법으로 떠올라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고 합니다.
병을 고치기 위해 자발적으로 평생 신어온 신발을 벗는 것입니다.
혹은 건강을 지키기 위해 그토록 외면하던 맨땅을 찾는 것이지요.
접지가 그리 낯선 것은 아닙니다. 피뢰침이나 전기용품
자동차도 지표, 즉 지구 표면과 연결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돌아보면 우리의 문명화, 즉 산업화, 도시화는 단순했습니다.
맨땅과 결별하는 과정이었습니다. 튼튼하고 편한 신발을 신고
지구의 살갗을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덮어 온 것입니다.
어싱 예찬자들은 강조합니다. 지구는 전자기로 이뤄져 있으며
우리 몸 또한 전자기로 이뤄져 있거니와 그런데 두 전자기가
서로 교류하지 못하게 되면서 우리 몸에 탈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니 두 맨발로 지구의 전자기와 다시 만나야 한다……
네, 동의합니다. 그런데 맨발 걷기 붐 소식을 접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편리, 건강, 성장, 풍요를 위해
잃어버린 것이 어디 맨발뿐인가 되묻게 된 것이지요.
맨 자가 들어간 생생한 우리말이 다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맨발을 필두로 해서 맨손, 맨주먹, 맨밥, 맨몸, 맨정신, 맨땅……
그렇습니다. 우리가 저 맨을 버리고 잊어버리는 사이에
몸뿐 아니라 집, 도시, 사회, 국가, 문명이 다 이상해졌습니다.
몸뿐 아니라 마음이 마음자리를 찾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진정 건강을 되찾으려면, 맨발만으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모든 생명체가 지구와 다시 연결되어야 합니다.
지구의 뼈와 살이 간직해온 소중하고 거룩하고 위대한 힘
지구가 품고 있는 신비하고 장엄한 힘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어싱, 맨발로 맨땅을 밟는 일은 그러니까 탕자가
어머니 품으로 돌아가는 것과 다르지 않아야 합니다.
어머니 지구란 말은 듣기 좋으라는 구호나 메타포가 아닙니다.
사실입니다. 자명한 사실이어서 때로 비현실로 보이는 것입니다.
나의 안팎, 이 문명 안팎에 넘쳐나는 신발을 다시 볼 때입니다.
맨눈, 맨정신, 맨몸으로 곧추서서 직시할 때입니다.
이제야 꽃을 든다
이름이 없어서
이름을 알 수 없어서 꽃을 들지 못했다
얼굴을 볼 수 없어서 향을 피우지 않았다
누가 당신의 이름을 가렸는지
무엇이 왜 당신의 얼굴을 숨겼는지
누가 애도의 이름으로 애도를 막았는지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우리는 알 수 있다
당신의 이름을 부를 수 있었다면
당신의 당신들을 만나 온통 미래였던
당신의 삶과 꿈을 나눌 수 있었다면
우리 애도의 시간은 깊고 넓고 높았으리라
이제야 꽃 놓을 자리를 찾았으니
우리의 분노는 쉽게 시들지 않아야 한다
이제야 향 하나 피워올릴 시간을 마련했으니
우리의 각오는 쉽게 불타 없어지지 않아야 한다
초혼(招魂)이 천지사방으로 울려퍼져야 한다
삶이 달라져야 죽음도 달라지거늘
우리가 더불어 함께 지금 여기와 다른 우리로
거듭나는 것, 이것이 진정 애도다
애도를 기도로, 분노를 창조적 실천으로
들어 올리는 것, 이것이 진정한 애도다
부디 잘 가시라
당신의 이름을 부르며 꽃을 든다
부디 잘 사시라
당신의 당신들을 위해 꽃을 든다
부디 잘 살아내야 한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물려줘야 할
우리 모두를 위해 꽃을 든다
2022년 11월
이문재 l
1982년 《시운동》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 『산책시편』 『마음의 오지』 『제국호텔』 『혼자의 넓이』 『지금 여기가 맨 앞』 등, 산문집 『바쁜 것이 게으른 것이다』 등이 있음. 〈노작문학상〉 〈박재삼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 수상.
시인론 / 노지영
연상하고, 연결하고, 연장하려는 마음
ㅡ 이문재의 최근 시를 읽고
1.
문학을 깊이 사랑하는 사람은 겸손하기 마련이다. 문학이라는 것이 언어예술이기 때문이다. 언어는 이 세계의 실재를 낱낱이 드러낼 수 없다. 구체적인 사물과 지시하는 개념에 다다르려 할 때 한계라는 것이 노정되고, 강력하게 주장하면 주장할수록 소통에 실패한다. 언어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유한한 존재고, 실패하는 약자다.
그러나 언어는 그러한 한계를 통해 다시 인간을 도발하기도 한다. 그래서 문학을 깊이 사랑하는 사람은 도전하기 마련이다. 표현되지 못한 변두리의 의미를 궁구하고, 발견되지 못했던 진실을 파헤친다. 더 심미적이고 보다 윤리적인 영역에 질문을 던지며, 인간의 근원적 제약 조건에 반응하기도 한다. 쉽사리 의미를 확정하지 않으며, 머뭇대고 지연시키면서도 새로운 진실들을 언어로 연결하여 기존에 보지 못했던 영역을 다양하게 창조한다. 문학은 그렇게 자신의 유한성에 저항하게 만들고, 진실의 새로운 가능성을 실현하게끔 추동한다.
문학이 무력해진 시대,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구태의연한 선언에 오래도록 중독되었던 우리는 그동안 문학이 얼마나 왜소해졌는지 알기에 문학의 지난날 앞에 더욱 겸손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때때로 유한성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도 새로운 진실의 가능성을 추구하려는 어떤 유의 작품들을 만나게 되면, 우리는 잠시 유약해진 마음을 내려놓고 문학의 못다 한 소임에 설레어 보기도 하는 것이다. “내가 쓰는 시가 이 세상을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없다면 어떤 시를 써야 하는가”(「생명에의 옹호」, 『뒤를 보는 마음』)를 수시로 자문해온 이문재의 시를 만나며, 새삼 미더움을 느끼는 이유다.
잘 알려졌다시피 이문재는 고도로 발달한 도시 문명을 산책하며, 성장 지상주의의 폭주하는 문명을 엄중히 경고하고 인류 문명이 지향해야 할 대안적 전망을 제시해왔다. 인류가 처한 막다른 골목에서 공포스러운 ‘묵시문학’적 상상력을 보여주기도 하고, 종말과 절멸의 위기 감각 속에서도 현자의 잠언 같은 ‘지혜문학’적 상상력을 선보이기도 하며 인류가 함께 무릎 꿇고 기도해야 할 언어적 성소를 마련해주기도 하였다. 도시 산책자로 알려진 시인은 저널리스트 출신답게 도시 곳곳을 고현학적으로 살펴보며 산업 문명과 자본주의 제국에 대한 저항적 시선을 보여주었지만, 동시에 지구 생활자로서 농본적 가치를 지향하는 방법을 고민하며 겸손한 태도로 민주주의의 공유지를 일궈오기도 하였다.
이문재의 이번 신작시가 「다시 땅끝」에서 ‘시작’하는 것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땅끝’은 인간종 으로서의 겸손과 도전의 태도를 견지해온 시인이 일찍이 힘을 주어 거론해왔던 상징적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는 산문집의 머리말에서부터 “땅끝마을에 가본” 경험을 이야기하며, “땅끝에서 돌아서면, 돌아선 그 자리가 바로 땅의 처음, 땅의 시작이었”(「글을 묶으면서」, 『바쁜 것이 게으른 것이다』)음을 강조한 바 있다. 이러한 시인의 땅끝에 대한 관심은 기존의 시 작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땅끝이 시작이다」(『지금 여기가 맨 앞』)라는 절절한 명편을 통해 ‘땅끝’과 ‘시작’이라는 것의 역설적 관계를 탐색한 바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인은 왜 그렇게 ‘땅끝’이란 장소에 사무치는 것일까. 그렇게 반복해서 ‘다시 땅끝’을 얘기해야 하는 내적 이유를 아래 시를 통해 읽어보도록 하자.
그날 처음
땅끝에 왔을 때는
혼자서 바다만 바라보았다
그다음 둘이서 왔을 때는
섬과 섬 사이를 바라보았다
사방으로 달려나가다 문득 멈춰
바다 밑으로 빠져드는 섬들을 보았다
오늘 여럿이 와서 보았다
모든 섬이 바다 밑으로 이어져 있으며
땅은 땅대로, 바다는 바다대로
한 치의 빈틈없이 이어져 있었다
땅과 바다 또한 서로 이어져 있었다
땅끝이자 땅의 시작
바다의 시작이자 바다의 끝 여기
지구의 피부 위 작디작은 한 지점
두 팔 벌려 하늘을 우러르다 보았다
- 「다시 땅끝」 전문
땅끝이라는 기표는 아득한 대륙의 끝으로 상징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해남군에 속한 특정 지역 마을을 일컫는 지명이기도 하다. 그곳은 여행객에게 아득한 낭만을 자극하는 장소이지만, 속세로 적절히 귀환하려는 프로그램을 원하는 어떤 개인에게는 세속적 순례 여행을 가능하게 만드는 일종의 관광지로 인식되기도 한다.
여러 욕망들이 겹쳐 있는 그 장소를 화자는 세 번에 걸쳐 방문한다. 그리고 매번 ‘처음’으로서의 풍경을 만난다. 셋이란 숫자는 차이를 가능하게 하는 일종의 반복이기도 하지만, 그의 시에도 자주 사용되는(가령 『소로의 오두막』에 나오는 ‘세 개’의 의자처럼) 가장 완전한 숫자를 떠올리게도 만든다. 바다를 ‘독대’하는 처음의 만남과, ‘섬과 섬 사이’를 바라보게 하는 ‘두 사람’의 다음 차례 만남, 그리고 모든 섬이 바다 밑으로 이어져 있음을 깨닫게 하는 ‘여럿’과의 세 번째 만남은 바다를 바라봐야 하는 고유한 관점이자 그 모든 관점에 해당한다. 바다는 화자에게 매번 새로운 지경을 보여주며 화자의 시야에 포획된 천편일률적 풍경을 깨뜨리는 방식으로 ‘처음’이 된다.
일상언어 속에서 ‘끝’을 ‘시작’이라 칭하는 것은 모순된 표현임이 틀림없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며 과학적이지도 않은 말이다. 하지만 이 시는 새로운 연이 전개됨에 따라 점차적으로 바다라는 대상에 시야가 열리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끝이라는 것이 왜 ‘시작의 감각’이 될 수 있는지를 드러내고 있다. 땅끝이라는 장소에서 목격되는 제1의 풍경과 제2의 풍경, 그리고 제3의 풍경이 순차적으로 개방 되면서 ‘끝’이란 것이 품고 있었던 ‘시작’으로서의 속성이 그 문맥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곳은 다시 내륙의 속세로 돌아서야 하는 반환점으로서의 시작이기도 하지만, 재차 바라볼 때 그 ‘사이’를 품고 있는 장소로 변하며, 또다시 바라보면 땅과 바다가 “한 치의 빈틈없이” 이어져 있다는 숨겨진 진실을 발견하게 하는 장소로 변신한다.
경험적 시야 속에서 동일한 풍경을 보는 게 아니라 우리 안의 감수성에 따라서 매번 새로운 시적 진리를 만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이 시는 그래서 “땅끝이자 땅의 시작”인 ‘여기’를 “바다의 시작이자 바다의 끝”으로 말한다. 인간의 유한함을 상징하는 땅끝이라는 한계선은 이제 바다와의 이음선이 되어 또 다른 새로운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는 상상력을 가동시킨다. ‘땅끝’이란 장소는 비가시적인 심층 구조를 여러 차례에 걸쳐 발견하는 무한의 연결지로서 기능하며, 그러한 연결의 장소는 이문재 시인이 간직한 평소의 세계관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류 절멸의 신호가 깜박이던 코로나 무렵, 모두가 “끝이 시작되었”다고 두려워할 때도 그는 이러한 시적 역설을 부르짖으며 우리의 ‘끝’을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고 말한다. “바야흐로 끝이 시작되었다 / 춤추고 노래하자 안팎의 새것을 마중하자 / 이번이 마지막 끝일지도 모른다 / 이 시작이 처음일지도 모른다 / 어쩌면 이 첫 시작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끝이 시작되었다」, 『혼자의 넓이』)”라고.
2.
‘끝’의 상상력이 가득한 시편을 살펴 보았으니, 이제 ‘맨 처음’의 상상력이 가득한 시편을 하나 살펴 보자. 이문재의 최근작 「민간인」은 그가 각주에 밝힌 대로 제목에서부터 김종삼의 「민간인」을 차용하고 있는 시이다. 이 시는 이문재 시인이 시민들과 ‘시 이어쓰기’, ‘시 다시 쓰기’ 강좌를 진행할 때도 종종 사용되는 시편이기도 하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이야기, 시대와 문명을 구축해온 이야기, 알게 모르게 내면화되어 때로 검열관 행세를 하는 낯익은 이야기들에 균열을 내보자”(「생명에의 옹호」, 『뒤를 보는 마음』)는 제안을 하며, 시민들과 기존의 이야기들을 “흔들어보는” 글쓰기를 해왔다고 밝힌 바 있다. 그리고 그와 함께 글쓰기를 훈련하는 시민들이 기존의 낯익은 서사들을 ‘다시 쓰기’ 하듯이, 시인 자신이 직접 자전적 서사를 활용하여 「민간인」이라는 시를 이어 써 보기도 한다.
1951년 1월
황해도 옹진에서 연평 백령
백령에서 다시 흑산 거쳐
목포까지 뱃길 아흐레
삼대는 미 군함에 타고 있었다
목포에서 영암 해남 거쳐
강진 성전까지 걷기를 몇 날 며칠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큰형
그리고 세 살 난 둘째 형
북풍한설 남도 초행길
말로만 듣던 아랫녘에 닿은
아는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는
농사꾼 삼대가 봇짐을 푼 성전 월출산 기슭
첫 끼니 첫날 밤 첫 주인장 첫 눈물
첫 모내기 첫 누명 첫 가을걷이 첫 이별…
저 수많은 맨 처음이 대체 어떠했는지
1959년 가을 김포에서 태어난 막내조차
내내 알려 하지 않았다
- 「민간인」 전문 (* 김종삼의 시 ‘민간인’에서 많이 빌려왔다)
우리 사회에서 ‘민간인’이란 말은 어떤 용법으로 사용되어 왔는가. 그 단어는 공직에 속하지 않는 사람을 일컫는 단어이자, 군인이 아닌 사람을 군인에 상대하여 이르는 국가 본위의 언어가 아니던가. 전쟁과 국가폭력이 죄 없는 희생자를 호명할 때 주로 사용하는 단어가 바로 ‘민간인’이다. 김종삼의 「민간인」」이란 시는 전쟁과 분단에 의해 희생당하는 죄 없는 피난민들의 슬픔이 잘 묘사되어 있다. “이남과 이북의 경계선”인 용당포를 몰래 건너오면서 우는 아이 하나를 희생시키는 강렬한 장면을 통해 민족의 비극을 담담히 드러내는 시이다. 날짜와 장소를 제시하며 시작하는(1947년 봄 / 심야 / 황해도 해주의 바다) 원작시 「민간인」처럼, 이문재의 위 작품도 사건이 일어난 시기와 장소를 적시하면서, ‘수심(水深)’을 알 수 없는 바다를 건너온 한 가족의 자전적 이야기를 「민간인」이라는 제목에 담아 소개하고 있다. 1.4 후퇴가 일어나던 51년에는 시인 자신이 한국에 태어나지도 않았을 시기임에도, 미 군함에 승선하여 남도로 이동하던 피난민 가족들의 기나긴 뱃길을 상상하면서 당시의 민간인들이 겪은 역사가 ‘나’의 서사와 무관하지 않음을 밝혀보는 것이다.
이 시에서 서술하듯이 실제로 이문재 시인의 가족들은 1·4후퇴 시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출산 자락으로 피난해 거주하다가 통일이 되면 빨리 고향에 가자며 59년 김포로 이주하였고, 같은 해 이문재 시인은 그곳에서 출생하였다(《서정시학》, 1995.6.). 즉, 부모가 이문재 시인을 회임한 지역은 피난지였던 남도였고, 그의 실제 출생지는 강화도 임진강과 가까운(빨리 고향에 갈 수 있는) 김포의 전방 지역이었다.
그래서일까. 이 시에서 시인은 정주민(定住民)으로의 정체성과 이주 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동시에 자신의 속성으로 연결한다. 당시 김포로 불리는 지역에서 정주민으로 태어났지만, 자신이 전쟁을 통해 세상을 떠돌던 난민의 아들임을 기억하며, 위의 시를 통해 시적 화자의 ‘맨 처음’을 ‘다시 쓰기’ 해보고 있다. 국가가 인정한 1959년이란 출생 연도를 ‘흔들어’, 자신의 마음이 닿고 있는 1951년의 피난 연도로 ‘처음’으로서의 경험을 연장시켜보는 것이다. 시인의 공식적인 생애에 해당하지 않는 51년에서 59년 사이에도 “첫 끼니 첫날 밤 첫 주인장 첫 눈물 / 첫 모내기 첫 누명 첫 가을걷이 첫 이별” 등 기억할 만한 ‘맨 처음’들은 가득했을 것이고, 그런 처음들의 연쇄 속에 시인이 태어난 사연이 배태되었을 것이므로, 그러한 연상들을 통해서 51년은 누군가의 ‘맨 처음’이 될 수 있다.
물론 한때 이문재 시인은 한 ‘문학적 자서전’에서 ‘맨 처음’의 기억들을 다음과 같이 회고한 바 있다. “내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쉰이었고, 어머니는 마흔둘이셨다. 바로 위의 형과는 다섯 살 터울. 내가 기억하고 있는 최초의 기억들은 다 내가 혼자 있는 풍경이었다” (「내 생을 지배해온 ‘막내·고아 의식’」, 《문학사상》, 2002.5)라며, 자신의 ‘처음’이란 기억이 가족과의 단절감 속에 존재했음을 고백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고아 의식’ 속에서 혼자 있다고 생각하던 한 시인의 ‘내면아이’가 이제는 자신의 ‘처음’에 대해 전혀 다른 서술을 한다. 자신의 생을 자신의 실제 출생연도보다 ‘연장’시켜 민간인으로서 자기 혈육이 겪었던 역사적 이야기까지 ‘자기화’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렇게 국가가 공식적으로 집계하고 호명하던 민간인들의 삶은 한 가족의 서사적 뿌리 찾기 속에서 다시 쓰일 수 있다. 연루되지 않았던 시공간이 새롭게 연루되며, ‘민간인’으로 불리던 누군가의 삶은 어느덧 고유한 ‘우리 자신’의 서사가 되었다.
3.
‘끝’에서부터 시작되고, ‘맨 처음’을 연장해내는 이문재의 시 속 이야기들은 오늘날 우리들이 속한 근대세계의 시스템을 흔들며, 우리와 새로이 연결된 것들을 바라보게 한다. ‘이야기하다’의 영어 동사인 내레이트(narrate)가 라틴어 ‘나라레(narrare)’에서 나왔고, 이 ‘나라레’가 바로 ‘연결하다’ 라는 뜻이 아니던가. 이야기하는 것은 연상하고, 연결하는 것이며,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시적 진실로 우리를 환대하는 것이다.
여기서 시인이 말하는 ‘시’라는 것이 우리가 써나가야 할 ‘이야기’의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주의 깊게 살펴볼 부분이다. 시인은 특정한 장르적인 문학 형식으로서의 ‘시’라기보다는 ‘누구나 가진 시적 감수성’으로서의 ‘시’의 범위를 상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장르성에 복무하는 좁은 의미의 서정시라는 관념에서 벗어나 ‘연결의 감수성’을 갖는 시적 사고 자체를 더욱 강조한다. 그래서 「어싱」이란 시에서는 그토록 ‘잃어버린 감각’을 되찾는 일에 집중하는지 모른다.
이문재의 근작에서 말하고 있듯이 ‘어싱(earthing)’이란 ‘접지(接地)’, 즉 “맨발로 땅을 밟고 걷는 것”을 말한다. 세간에 새로운 건강법이라 주목받으며 광풍처럼 유행하는 걷기 방식이다. 시인은 어싱의 세속적 유행을 바라보면서도 그러한 현상을 함부로 미신이라 치부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땅’의 감각과 얼마나 멀어져 왔는지를 문제 삼으며 이러한 현상이 건강을 잃은 이들이 선택하는 본능적인 수순임을 이야기한다. 시인에 의하면 근대 산업문명이 “지구의 살갗을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덮어”오면서 맨땅에 대한 감각을 느끼지 못하게 방해해 왔으므로, 우리의 몸뿐 아니라 “집, 도시, 사회, 국가, 문명이 다 이상해졌”다는 것이다. 감수성이라는 것은 일상적이고 정서적인 체험 속에서 몸을 통해 감각하여 훈련하는 것인데, 우리가 속한 산업 문명은 “편리, 건강, 성장, 풍요”라는 명분으로 많은 것들을 대행해주어, 우리 스스로가 감수성을 예민하게 발전시킬 수 있는 능력을 앗아갔다. 그리하여 시인은 ‘이상해진 세계’를 근원적으로 회복하기 위해서, 우리와 멀어졌던 몸의 감각을 섬세히 발달시키자고 말한다. 자연과 직접 닿는 ‘맨몸’의 감각을 통해, 나의 고통을 인식하고 타인의 고통을 통각하면서 말이다. 길들여지지 않은 자신의 온전한 감각을 통해서야 비로소 내가 타자와 연결되어 있다는 ‘시의 마음’이 얽혀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한 ‘시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기에 시인의 시선에는 여전히 ‘민간인’들이 희생당하는 장소가 포착되고 있는지 모른다. 그의 근작시 「이제야 꽃을 든다」는 시 말미에 기록된 날짜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10·29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를 애도하고 있는 작품이다. 시인은 국가시스템에 의해 보호받지 못한 채 희생당한 젊은이들을 보며 다시, ‘수심’ 모르는 아픔을 읽어낸다. 이제 한국 사회에서 이태원이란 장소는 “울음을 터뜨린 영아(嬰兒)를 삼킨 곳”(김종삼, 「민간인」 )과 다름없는 것이다. “초혼(招魂)이 천지사방으로 울려퍼져야” 함에도 희생자의 이름조차 제대로 부르지 못하는 현실에 시인은 마음 아파한다. 누구를 애도해야 하는지, 왜 이런 무참한 죽음이 생겼는지, 한정판 애도라는 게 가능한 것인지 질문하기도 전에 관에 의해 주도된 공식 애도만 강요되는 현실은 언젠가 제2, 제3의 재난을 불러올 것이다. 그 인과 관계가 너무나 명약관화하므로, 시인은 ‘애도’하고, ‘기도’하고, ‘분노를 창조적 실천으로’ 들어 올릴 수밖에 없다. 이 땅에서 뿌리 뽑혀버린 희생자들 앞에 어렵게 ‘절화(折花)’를 들며, 이들 희생자와 연결되어 있을 무수한 죽음들을 자기화하는 기억 방식이다.
시인은 세 번의 초혼을 한다. 다시 말하지만, 이문재에게 3은 완벽한 연결을 의미하는 숫자다. 억울하게 떠나간 ‘당신’과, 사랑하는 이를 잃어버린 ‘당신의 당신들’과, 어떻게든 죽음 이후의 생을 연결해나가야 하는 ‘우리 모두’를 위해서 시인은 그 모든 기도를 쉬지 않는다.
이것이 유한한 인간 존재를 견뎌내는 방식이기 때문일까. 시인은 홀로 기도하고, 서로 기도하며, 여럿이 함께 기도한다. 오늘 새벽도 “두 손 가지런히”, “먼 동쪽으로 눈길”을 주며, “다시 정면을 향해”, 세 번을 기도( 「새벽 기도」)했을 것이다. 그렇게 시인은 수천만, 수억만 번의 마음을 언어예술로 연결해낸다. ‘시의 마음’으로 ‘개인’의 서사를 갱신해 가며, 겸손하게 저항하는 ‘인간’의 길을 알려준다.

노지영 l
2010년 《내일을여는작가》 등으로 평론 활동 시작. 저서 『뒤를 보는 마음』 등, 공저 『오장환 전집』 『정본 노작 홍사용 문학 전집』 등이 있음.
—
2024년 3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