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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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임채성 

 

 

 

 

산처럼 우뚝 서서

용처럼 힘껏 날자

 

 

 

  

 

  20024년 푸른 용의 해가 밝았다. 그러니까 60간지의 41번째 해인 갑진년(甲辰年)이다. 10개의 천간(天干)에는 오행을 상징하는 다섯 가지 고유의 색이 정해져 있는데, 가장 먼저 나오는 갑과 을은 나무[木]를 상징하며 푸른색을 띤다. 그 때문에 푸른색의 ‘갑’과 용을 의미하는 ‘진’이 만나는 갑진년을 ‘청룡(靑龍)’의 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음력으로 날짜를 계산하는 방식이라서 엄밀하게 말하자면 갑진년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설날(구정)을 지나야 진정한 청룡의 해가 된다. 하지만 양력으로 새해를 맞는 오늘날, 이러한 지적은 거의 무시되고 있다. 묵은 것들과 좋지 않은 기억들을 하루빨리 떠나보내 버리고 새로운 희망으로 대체하려는 개인적 욕구가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용에 대한 이미지는 동양과 서양이 다르다. 생김새부터 서양의 용은 날개가 달렸고 몸에 비늘이 없지만, 동양의 용은 날개가 없는 대신 온몸이 비늘로 덮여 있다. 서양에서 용은 파괴와 살육을 일삼는 악의 화신이다. 유럽의 중세 신화나 전설에는 용을 죽이고 세상을 구하는 영웅담이 곳곳에 전해온다. 이러한 이야기의 요지는 강력한 힘을 가진 어둠의 세력에 대항해 인간사회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 단결하라는 의미로도 읽힌다. 반면 동양에서 용은 대단히 친근한 존재이다. 농경시대에는 물을 관장하는 수신(水神)으로 추앙받으며, 마을의 안녕과 행복을 지켜주는 수호신이 되기도 했다. 서울 용산, 포항 구룡포, 제주 용두암 등은 용의 기운을 얻고자 지명에 ‘용’자를 넣은 사례이다. 이러한 수호신의 이미지는 왕이나 황제 같은 절대 권력으로도 이어졌다. 왕의 얼굴을 용안, 왕의 자리를 용상, 왕이 입는 옷을 곤룡포라고 한 것은 여기에서 연유한다.

  용상의 자리에 있는 절대 권력자가 선정을 베풀면 백성들의 생활은 안정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백성들은 도탄에 빠지게 된다. 특히나 국제 관계에 따른 안보 상황은 국가의 존립을 좌우하는 중요한 사안이다. 그런데 새해 벽두부터 국제 정세가 심상치 않다. 미국과 중국의 전략 경쟁 심화,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의 지속, 또 중동의 이스라엘-하마스전쟁 등 복합적 역학 관계 속에서 신냉전 구도를 활용해 핵보유국이 되겠다는 북한과 강력한 힘에 의한 평화를 이루겠다는 우리 정부의 ‘강대강’ 대치가 얽히면서 한반도는 올해도 불안정한 정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격화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암투는 우리의 처신을 더 어렵게 하고 있다. 강대국 사이에 낀 우리로서는 슬기로운 외교술로 이 난처한 상황에 대처할 수밖에 없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전략적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한국외교의 목표가 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충고한다. 어쩌면 조선 시대 광해군이 펼쳤던 실리 외교가 참고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조선 시대 임금 중에 광해군만큼 평가절하된 왕은 없다. 이복동생인 영창대군을 죽이고 인목대비를 폐한 폐모살제(廢母殺弟)의 패륜 때문에 폭군의 오명을 쓰고 있지만 연산군과 동급의 폭군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조선의 조세 제도에 일대 전환을 가져온 대동법을 처음 시행한 개혁군주이자 명·청 교체기에 국제 정세를 읽고 중립 외교를 펼쳐 국가의 안위를 도모했다는 치적은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임진왜란의 참상을 몸소 겪은 광해군은 이 땅에 참혹한 전쟁이 다시 일어나거나 백성들이 무참하게 희생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신념이 명을 부모의 나라로 받드는 당시 사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균형 외교로 이끌었던 것이다.

  그러나 광해군은 명나라에 대한 사대 외교를 고집한 서인들이 일으킨 인조반정(1623)으로 폐위됐다. 그 결과는 정묘호란(1627)과 병자호란(1636)으로 이어졌고, 백성들에게 참혹한 피해를 안겼다. 인조 스스로도 1737년 1월 30일, 새해를 축복할 겨를도 없이 삼전도에서 오랑캐 장수 앞에 3번 무릎을 꿇고 9번 머리를 조아리는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를 행하는 굴욕을 당했다. 용이 풀뱀 수준으로 몰락 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보통의 경우 위기와 마주한 리더는 세 가지 형태의 대응 양상을 보인다. 적절한 대응이거나 부적절한 대응,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대응이 그것인데 인조의 선택이 바로 무대응 이었다. 나태와 무능, 무사안일과 현실 회피에서 비롯된 치욕의 역사가 바로 ‘삼전도의 굴욕’이다.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고국 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 하여라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 시조는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로 끌려가면서 지은 김상헌(金尙憲, 1570~1652)의 작품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일부 문서에서는 『청구영언』에 실려 있다고 하지만, ‘진본’ 『청구영언』에는 보이지 않는다. ‘육당본’과 같은 이본에만 수록된 것으로 보아 출전에 대한 검증과 수정이 필요해 보인다. 김상헌은 1596년 임진왜란 중에 실시한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했다. 병자호란 때는 예조판서로서 주화론(主和論)을 배척하고 끝까지 척화론(斥和論)을 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남한산성에서 벌어진 최명길로 대표되는 주화론자와 김상헌으로 대표되는 척화론자 간의 명분 싸움은 소설과 영화, 드라마 등으로 만들어져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가 됐다. 훗날을 도모하며 일단은 목숨부터 살고 보자는 현실주의자와 어찌 오랑캐와 화평을 도모하겠냐며 죽을 때까지 싸우자는 사대주의자의 첨예한 말다툼은 무능한 군주 앞에서 마침표 없는 도돌이표에 불과했다.

병자호란의 결과 조선은 명나라와 단교하고, 왕자를 볼모로 보내며, 청나라에 대해 신하로서의 예를 지키고, 청이 명을 공격할 때에 원병을 파견할 것 등을 약속했다. 그리하여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두 왕자가 볼모로 가고, 강경 척화파의 중심이었던 홍익한, 윤집, 오달제의 3학사는 청나라에 잡혀가 죽임을 당했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청나라로 끌려갔고, 나중에 몸값을 바치고 풀려난 숫자만 해도 63만 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끌려갔다 살아서 돌아온 부녀자들은 또 환향녀(還鄕女)라 부르며 멸시와 천대까지 했으니 위정자의 무능이 빚어낸 오욕의 시간은 국가와 사회에 깊은 앙금을 드리웠다.

  김상헌은 인조의 항복을 보고는 안동으로 내려갔다. 그 뒤 명을 공격하기 위한 청의 출병 요청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청나라로 압송되어 6년 동안 감금되었다가 풀려났다. 그런데 훗날 최명길도 반청(反淸)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청나라에 끌려가 2년간 억류생활을 했다. 김상헌이 갇혀 있던 바로 옆방이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약 100년 뒤 이긍익이 지은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는 선양 감옥에서 두 사람이 나누었다는 한시가 기록돼 있다. 김상헌은 “두 세대에 걸친 교분 다시 찾아서, 백 년 의심 모두 풀어버렸네[從尋兩世好 頓釋百年疑]”라고 했다. 이에 대해 최명길은 “그대 마음 굳은 바위 같아서 끝까지 변하지 않지만, 나의 도는 둥근 고리 같아서 믿음에 따라 움직인다네[君心如石終難轉 吾道如環 信所隨]”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김상헌의 시조 속에는 고국산천에 대한 그리움, 다시 조선 땅을 밟을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이 뒤섞여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삼각산과 한강수는 조선의 서울이자 임금이 거처하는 궁궐이 있는 한양을 가리킨다. 중장 첫 구의 “고국 산천”에서 ‘산’과 ‘천’을 대표하고 있는 것이다. 한양에서 서울로 이름이 바뀐 대한민국의 수도는 정도(定都) 600년을 기념해 1994년 11월 29일 당시 서울의 모습과 시민들의 생활을 대표하는 문물 600점을 타임캡슐에 담아 남산골 한옥마을 타임캡슐광장에 밀봉해 두었다. 타임캡슐은 정도 1,000년이 되는 2394년 11월 29일에 개봉될 예정이다.  

     

1.

온 장안이 눈 속에 들어

눈빛들 형형한 날

 

너는 결연한 생각

꼬나 잡은 붓끝이다

 

만인소 산 같은 글을 마무리한 수결이다

 

2.

갓 떠온 생수보다

더 차가운 새벽빛을

 

소슬한 이마 위에

명주 수건 동여매고

 

동천을 걷어 제친다, 방짜유기 징을 치며

 

3.

가파르게 막히곤 하던

역사, 그 외성의 안쪽

 

지축을 누가 흔드나

명치끝 얼얼하다

 

아침은 점고를 끝낸 듯 산을 슬쩍 내려서고 

- 신필영, 「정월 인수봉」 전문

    

  김상헌의 시조에서 서울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차용됐던 삼각산은 북한산의 옛 별칭이다. 주봉인 백운대(835.6m)를 중심으로 북쪽에 인수봉(810.5m), 남쪽에 만경대(800.6m)의 세 봉우리가 삼각뿔의 형태로 자리하고 있어 삼각산이라 불렀던 것이다. 뫼 산(山) 자의 고대 상형 문자를 떠올리면 딱이겠다. 이들 세 봉우리는 북한산의 으뜸 경관으로서 웅장하면서도 수려한 자태를 자랑한다. 1억 7천만 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거대한 화강암 봉우리는 대자연의 위세를 당당히 드러내며 반만년 우리 역사의 지킴이와도 같은 모습으로 수도 서울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중 거대하고 오뚝한 석순 같은 모습으로 솟아있는 인수봉은 일반인의 발길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특수 장비를 갖춘 전문 암벽 등반가들에게만 그 품을 잠깐 내어주며 도도한 역사의 흐름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위용을 보여준다.

  신필영 시인의 「정월 인수봉」은 이러한 대자연에 대한 헌사이자 유구한 역사를 지켜온 우리네 배달 겨레의 얼에 대한 찬사이다. 정월은 새해의 시작이다. ‘정월’의 ‘정’은 바를 정(正) 자를 쓰는데 ‘처음’ 이라는 뜻도 있다. 그러니까 정월은 국태민안(國泰民安)과 풍년 등을 기원하며 ‘마음(계획)을 바로 하는 달’이라는 의미로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새해에 내리는 눈은 상서로운 기운을 띤다 하여 서설(瑞雪)이라고 했다. 서설에 덮인 인수봉의 자태는 더욱 장엄하다. 그런 암봉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도 ‘형형하게’ 빛나고 있다. “온 장안이 눈 속에 들어” 있는 배경으로 우뚝 솟은 검은 암봉의 모습은 일견 ‘붓끝’을 연상시킨다. 그 붓은 뭇 백성들의 목소리가 담긴 “만인소(萬人疏) 산 같은 글”을 적바림 하는 도구이다. 눈 덮인 하얀 배경은 종이가 되어 거뭇거뭇한 풍경들을 만인소 글로 승화시킨 것이다. 그런 상소문 위에 ‘수결(서명이나 사인)’처럼 위치한 인수봉의 이미지는 단순한 자연이 아니라 단결과 화합을 통해 큰 산이 된 민초들에 대한 대유(代喩)이리라. ‘만인소’의 이미지는 ‘명주 수건’과 ‘방짜유기 징’으로 이어지면서 역사의 주인으로 우뚝 선 민초들의 주체성을 더욱 강화시킨다. 그리하여 “가파르게 막히곤 하던 / 역사, 그 외성의 안쪽”에도 아침이 온다. “명치끝이 얼얼”할 정도로 느껍고도 가슴 벅찬 새해 아침이 국운 상승의 희망으로 타오르고 있는 것 같다.

  

어디서 눈을 들어도 구름 속 저기 서 있다

 

오름이 오름을 받쳐 하늘 하나 보듬고 산다

 

딱 한 번 말을 뱉고는 입을 다문 저 사내

 

아버지 돌팔매 맞고 가신 지 하마 내 나이

 

휴화산 이름 하나로 참고 또 기다린다만

 

모슬포 돌개바람에 실눈 뜨는 4·3 적 동백

 

구름의 높이에서 먼 북쪽 멧부리를 보라

 

살아 온 시간의 멍에 누군들 기적 아니랴

 

가슴속 불을 내리면 아플 일 하나도 없다

- 최영효, 「한라산」 전문

    

  「정월 인수봉」에서 보여준 역사의식은 다시 최영효 시인의 「한라산」으로 이어진다. 제주도 한가운데 1,950m 높이로 우뚝 솟은 남한 최고봉 한라산은 예로부터 금강산, 지리산과 더불어 신선들이 사는 이상향이자 불로초가 자생한다고 믿었던 삼신산의 하나였다. 그 때문에 한라산은 신앙과 숭배의 대상으로서 신격화되며 민간 차원의 무속신앙이 국가 차원의 제사로까지 확대되었다. “가노라 삼각산아”를 지은 김상헌도 제주 기행문 『남사록(南槎錄)』을 통해 백록담에서 한라산신제를 봉행한 사실을 기록해놓았다. 김상헌은 1601년(선조34) ‘소덕유·길운절 역모사건’의 뒷수습과 불안한 민심을 진정시키기 위해 제주에 파견되었다. ‘소덕유·길운절 역모사건’은 모반을 꾀한다는 죄목으로 죽임을 당한 정여립의 처사촌인 소덕유가 제주에 유배 온 뒤 유배자 신분인 길운절과 역모를 모의한 사건이다. 당시 제문(祭文)에서 ‘나라와 제주의 안녕이 한라산 덕분임을 칭송하며 그로 인해 역모를 일찍 평정할 수 있었다’고 밝히고 있는 것을 볼 때, 국가 차원에서 한라산을 ‘영산’으로 인정하며 중히 여기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라산이라는 이름은 은하수란 뜻을 가진 ‘한(漢)’과 붙잡는다는 뜻을 가진 ‘라(拏)’를 합쳐 손을 뻗으면 은하수에 닿을 만큼 산이 높고 웅장하다는 시적 표현이다. 한편으로는, ‘하라’, ‘카라’, ‘할라’ 등으로 부르던 것을 후대 지식인들이 소리가 비슷한 한자를 빌어 표기하고 해석한 것이라고도 한다. 뿐만 아니라 하늘을 뜻하는 우리 옛말 ‘한울’에서 비롯되었다는 의견도 있다. 노산 이은상 역시 1937년 조선일보사에서 발행한 기행 수필집 『탐라기행 한라산』에서 ‘본시 우리말로는 하늘산이라 부르던 것’이라며 한라산의 이름이 ‘하늘산’에서 비롯됐다고 했다. 이 모든 기록과 사람들의 믿음은 바로 한라산을 신성시했기 때문이며 제주의 신화와 전설, 민담 등에는 이와 관련한 내용이 많다.

  이처럼 한라산이 제주도요, 제주도가 곧 한라산이라는 사실을 최영효 시인 또한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화산 폭발로 형성된 섬이 제주도인 만큼 한라산은 제주도를 낳은 어머니와도 같다. 동서남북 해안까지 어머니가 자식을 품듯 360여 개의 오름을 비롯해 동굴, 폭포, 들녘, 마을을 감싸고 있는 한라산을 통해 제주도의 역사를 아우르고 있는 것이다. 역사의 관점을 범우주적으로 확장한 빅 히스토리 시각에서, 한라산의 생성부터 비극적 근현대사인 4·3을 거쳐 오늘에 이른 제주도의 연대기적 서사를 알레고리 기법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가슴속 불을 내리면 아플 일 하나도 없다”는 마지막 진술처럼 평화의 섬을 지향하는 제주도민의 바람이 아픈 과거를 딛고 올바른 역사의 한 페이지로 우뚝 서길 소망해본다. 그리하여 대한민국의 국운이 용솟음쳐 세계 속에 드높은 지위를 확보하고, 국민 모두에게 사랑과 기쁨이 충만하기를 새해 아침에 간절한 마음으로 손을 모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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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성  l

200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등단. 시조집 『세렝게티를 꿈꾸며』 『왼바라기』 『야생의 족보』, 시조선집 『지 에이 피』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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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