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2024
Extra Form Output
저자 권현형 

 

 

 

 

거실 스튜디오

 

 

 

 

 

  항아리에 깊이 담긴 빛과 소금도 시간이 지날수록 때가 조금씩 묻는다. 이미 때가 묻어 있기에 어디로 흘러가든 빛의 본성은 자유롭고 너그럽고 명랑하다. 일출 무렵의 빛은 아주 짧은 순간 아침의 사물을 물들이다 사라진다. 겨울 아침을 부지런하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만 보여주는 붉고 푸른 색감의 신비는 1월 1일에도 순전히 새것의 느낌으로 빛나지는 않는다. 그래도 아침을 다시 시작하고 싶다. 다시 읽고 쓰는 삶을 살고 싶다. 새해가 시작된 지 채 보름이 지나지 않았건만, 며칠 전 항아리에 얼른 받아 놓은 빛의 바닥에는 묵은 빛의 찌꺼기가 남아 있다는 것을 알기에 강력한 현실을 살고 싶다.

  나의 강력한 현실은 거실이다. 서재라고 하는 방이 있으나 앨범과 잡지와 각종 도서와 운동기구와 액자를 한데 집어넣어 물건들의 창고가 되어가고 있어 답답하므로 집에서 가장 광활한 공간이라 할 수 있는 거실에서 글 작업을 한다. 남편도 아이도 다 자랐기에 구성원 중 그나마 거실 스튜디오에서 글을 쓰는 나를 방해하는 인물은 없다. 내가 나를 방해할 뿐이다. 30분마다 냉장고 문을 열어 물을 마시고 마른 자두를 꺼내 먹고 포도알을 뜯어먹는다.

  고대도 중세도 아닌 2024년도의 경기도 고층 아파트 거실에서 빛 한 조각을 겨우 얻어 다시 하루를 시작했다. 잔스카르도 파미르도 까보다로까도 해남도 아닌 거실 한구석이 나의 작업실이다. 그곳에서 가끔 길을 잃기도 하고 난파되기도 한다. 식탁과 그릇장과 의자 사이에서 종종걸음으로 움직이다가 옆구리를 서랍장 모서리에 세게 박아 갈비뼈에 금이 간 듯한 통증으로 몇 주를 견디다가 나은 적도 있다. 거실에서 아니 나의 스튜디오에서 식물이나 나나 자기 복원력을 갖고 살아간다. 거실이 작업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일상을 놓치지 않으려 애를 쓴다. 빛 가까이에서 주거 공간에서 하루 한 편씩 글을 쓸 수 있다면, 멀리 가 볼 수 있다면 그것도 자기 복원력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방구석이 늘 안전한 것은 아니다. 방구석에 놓여 있는 나의 작업실도 빛과 어둠의 파노라마 속에서 명멸의 신화를 거듭하며 진화한다. 화분에서 수북이 자라고 있는 애플민트 중 하나를 잘라 유리병에 물을 담고 꽂아두었더니 보기만 해도 마음이 몽글몽글해질 정도로 섬세하고 부드러운 뿌리를 내렸다. 기특해서 어항 속 움직이는 물고기 들여다보듯 유리병을 자주 들여다보다가 부주의로 줄기가 반으로 부러지는 사태가 벌어졌다.

  

식물이 부서지기 쉬운 나보다 낫다는 깨달음이 왔을 때 시도 함께 온다

   

  잎사귀가 붙어 있지만 뿌리 부분이 없는 줄기와, 뿌리 부분은 있지만 잎사귀가 잘려나간 상흔을 꼭대기에 이고 있는 줄기를 함께 유리병에 그대로 두고 날마다 물을 새로 갈아 주었다. 삼사일 만에 뿌리가 없는 대에서는 뿌리가 새롭게 돋아나 물속에 뿌리를 내렸다. 부러진 자국을 머리에 이고 있던 대에서는 잎이 조그맣게 돋아났다. 며칠 후에는 잎사귀가 제법 수북해져 제 잎사귀로 제 상처를 덮을 정도가 되었다. 단 며칠 시간을 줬더니 말이다. 회복 탄력성이라는 것을 몸으로 실현하고 있었다. 식물의 상처는 자기 복원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한 계절, 식물은 전속력으로 살아 있다. 마그네슘을 챙겨 먹지 않아도 요가를 하고 명상을 하지 않아도 분열의 상태에서 식물은 스스로 안정을 찾는다. 식물이 부서지기 쉬운 나보다 낫다는 깨달음이 왔을 때 시도 함께 온다.

  거실을 스튜디오로 생각하기 이전에는 작업실 유목민 생활을 하기도 했다. 아주 오래전, 출산 직후 어쩌다 원고 청탁을 받으면 안방 문을 걸어 잠그고 침대에서 글을 썼다. 안방의 침대가 한동안 작업실이었다. 침대를 끌어안고 몸부림을 치며 간신히 원고를 마무리하는 동안 아이는 스스로 지칠 때까지 밖에서 문을 두드리며 치열하게 울었다. 아이가 말을 배우기 시작한 세 살 무렵에는 속이 상할 때마다 “엄마는 내 속을 몰라”하며 울었다. 울음의 속을 휘저어놓는 물보라와 눈보라의 파편들을 이마에 맞으며 아이와 나는 서로의 기원을 이뤘고 함께 성장했다.

  아이가 유치원에 갈 무렵에는 낮 동안 주거 공간을 바꿔 지내기도 했다. 친정어머니가 우리 집에 오셔서 아이를 봐주시고 나는 어머니 집에 가서 글을 썼다, 아니 농땡이를 부렸다. 온종일 글을 쓰진 않았다. 종일 음악을 듣기도 했고 종일 석류꽃을 내다보기도 했고 종일 남의 시집을 읽기도 했다. 작업실 유목민이었던 대개의 날들은 별 수확 없이 해가 졌으므로 아이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머리 위 창공으로 날아가는 비행기가 고래처럼 보이기도 했다. 고철 덩어리가 따뜻한 피를 갖고있는 조류나 포유류처럼 보인 무의식의 바탕에는 얄팍한 모성에 대한 죄의식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거실에서 바라보이는 산의 능선은 매일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 처음에는 사막의 대상들이 나귀와 함께 걸어 다니는 겨울 능선이었다가 초봄의 어린 산이었다가 제법 잎사귀가 푸른 어른의 산으로 변해갈 것이다. 식구들과 공동으로 쓰는 거실이 작업실인 불편함을 먼 산의 능선에서 위로받는다. 식구들과 공동으로 쓰는 공간을 작업실이라 우기는 나의 뻔뻔함을 식구들은 무엇으로 위로받고 보상받을까. 거실에서 식구들과 함께 밥을 먹으며 바라보던 권태롭고 일상적인 앞산 능선도 사무치게 그리워질 때가 있다. 거실에서의 시간은 어떤 맹목에 사로잡힌 시간은 아니지만 천천히 구워지는 시간이다. 시간을 살면서 그때그때의 현존이 늘 정확한 현상, 감정은 아닌 듯하다. 거실 스튜디오에서 나는 날마다 작아지고 날마다 광활해진다. 시간이 지난 후 희미해질 때 행복과도 흡사한 어떤 것, 더욱 선명하고 본질적일 수 있는 어떤 것 속에서 내가 생생히 살아있었음을 알아차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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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현형  l 

1995년 《시와시학》 등단. 시집 『중독성 슬픔』 『밥이나 먹자, 꽃아』 『포옹의 방식』(2013년 아르코 문학나눔 우수문학도서), 편저 『김영태 시선 초판본』, 공저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ㅡ김수영 50주기 기념시 해설집』 등이 있음. 〈미네르바작품상〉 수상. 200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 수혜, 2023년 아르코 문학창작기금 발간지원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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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