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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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한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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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호에서〉, 김청미 시 / 한보리 곡

   

 

 

   

‘나’에게 가 닿는 일

 

  

산이 물속으로 몸 낮춰 내려오면

호수는 제 속을 비워 산을 품는다

 

산이 꽃 피우면 물속도 청춘

산꽃이 지면 물속도 기억을 지운다

  

ㅡ 김청미, 「상사호에서」

 

*

 

 

   

   이곳에 아파트가 지어지면서 뒷산에 소로가 생겼다. 두 사람이 비껴가려면 한 사람이 길옆으로 나가 기다려야 했다. 마을의 규모가 커지자 그 길도 따라 넓어지고 산책로라는 이름이 주어졌다. 관리도 구청에서 하기 시작했다. 처음 소로일 때 산 위에 올라 반대편을 보면 논과 밭, 먼 곳으로는 강과 산이 보였다. 그 들에 공장과 아파트가 채워졌다. 뒷산은 이제 빌딩에 둘러싸인 도심 속의 숲섬이 되고 말았다.

  ‘공원조성사업’ 표지판이 산책로 입구에 설치되었다. 산책로 곳곳을 굴착기가 들어와 파헤친다. 잘려 나갈 나무에는 페인트로 표식이 칠해졌다. 나무와 나무들 사이로 난 작은 길, 겨울임에도 푸릇한 싹, 마치 비단인 양 깔려 있는 마삭줄, 사운대는 산죽과 맑은 공기,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되면 짓이겨지고 부서질 것들이다. 좁은 길은 넓게 구부러진 길은 바르게 펴고 산책길 곳곳엔 시민들의 건강을 위한 쉼터가 놓이게 될 것이다. 잡목이라 여겨지는 나무들이 있던 자리엔 새로 조경수가 심어지고 가파른 곳엔 걷기 좋은 계단이 놓이고 멋진 타일이 깔리겠지. 안락하게 꾸며진 새 공원으로 사람들이 몰려와 웃음을 풀어놓게 될 것이다.

  벤치에 앉아 곧 사라질 고적한 풍경을 본다. 낡은 것과 새것, 개발과 보존의 사이, 그 틈에 내가 앉아 있는 셈이다. 겨울 햇볕이 소나무 가지 사이로 든다. 아름답다. 딱 저만큼, 소나무가 가린 그늘과 볕이 만드는 풍경, 그것이 평화이겠다. 산책로 주변 세월의 무게로 쓰러진 나무둥치가 이끼를 덮은 채 삭아가고 있다. 한때는 우람한 몸으로 그늘을 거느리던 나무다. 해야 할 일을 마치고 그 숲에 누워 스스로 거름이 되어가는 중이다. 변방에서 이름 없이 작업을 해오고 있는 동료 아티스트들의 얼굴과 겹쳐 보인다.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한 뼘만 한 아름다움을 사람들과 나누고자 자신의 온 생애를 소비하는 몽상가들.

  과한 것과 부족한 것의 사이, 적절한 지점은 어디쯤일까? 사람 사는 곳이 인위적일 수밖에 없겠지만 어느 정도가 적당한가? 살면서 그리고 음악을 만드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갈등해온 것이기도 했다. 사실 우리는 너무 많이 정제된, 실제 연주로는 만들어 낼 수 없는 섬뜩할 정도로 섬세한, 매트릭스 같은 세상 속에 살고 있다. 음정이 틀려도 박자가 조금 어긋나도 기계와 엔지니어의 정교한 교정에 의해서 바로잡은 깔끔한 음악들과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옛날의 녹음 방식인 스테레오 시대를 동경한다. 있는 그대로 날것의 시대, 그렇지만 여유와 낭만이 있던 시대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나는 음악 작업을 하면서 동료들에게 종종 고집을 피운 적이 있었다. 음반, recording은 순전히 기록에 불과하다. 예를 들면 가수가 녹음하는 당일 감기에 걸렸다면 코맹맹이 소리로 음반에 남겨지는 것이 옳다는, 그래서 녹음의 목표가 ‘이를 수 없는 영역에 가 닿자는 것’이 아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지금도 그 생각에 변함은 없다. 시류에 맞지 않고 효율적이지 않으며 경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보기 좋게 포장된 나’, ‘과장된 렌즈로 본 나’가 아닌 자신의 얼굴로 자신의 손으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제대로 된 예술이지 않겠는가? 같은 성형외과에서 만들어진 비슷한 얼굴들이 미인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즈음엔 덜떨어진 소리로 들리겠지만.

  사랑과 이별이 범람하고 슬픔은 과장되는 시대이다. 내 사는 마을의 뒷산이 사람이 다니기에 최소한의 편의만 제공하는 불편한 공원이기를 바란다. 자연은 이미 제 안에서 최선의 방법으로 아름답게 반짝이고 아름답게 소멸하고 있으며 다정하고 담담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건네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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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보리  l

시인, 작곡가, 가수. 시집 『꽃 한 송이 주지 못했네』가 있음. 자작곡 음반 〈아내는 우동을 좋아해〉 〈소를 찾아서〉, 나팔꽃 동인 음반 〈아무도 슬프지 않도록〉 〈너를 향한 이 그리움은 어디서 오는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 참여 음반 〈집 나온 시,길 떠나는 노래〉 〈산〉 〈백창우-시를 노래하다〉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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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