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심우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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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뱀
푸른 거죽의 미묘한 꼬리를 가졌다 매일 잘라내도 새로운 꼬리를 갖추고 출근길에 오른다
묵은 외피를 비듬 털듯 문지르고 나오는 아침 저마다 번들거리는 얼굴
아침마다 전기 10리터는 반드시 먹고 나온다 반짝 켜지는 휴대폰 형광으로 빛나는 도마뱀 노트북 컴퓨터가 스팟하고 꺼진다 핑하고 티비가 튕겨나간다 막 도착하는 전철은 거대한 전기 먹는 하마이다 어둠의 구멍에서 나온다
마구 꽂아넣은 콘센트로 벽의 이곳저곳을 쑤셔댄다 땅과 하늘을 날아온 전깃줄 잘라도 잘라도 새로 잇고 새로 자란다 검버섯이 마치 도마뱀의 원래 무늬였던 것처럼 회색 밀림의 숲에서 무럭무럭 자란다 넘쳐나는 도마뱀들
네온 불이 영원한 적이었던 것처럼 몰아세운다 휴식을 모르는 게임 지치고 졸린 눈알이 하품하고 멍한 눈빛으로 자판과 모니터를 본다 찌든 피부에 전자파가 날름거린다
클릭하면 한 인물이 죽고 새로운 사건과 비리가 터진다 클릭클릭 너무 재미있는 세상 진지함이란 읽지 않은 종이책과 같다 정점 부분만 무한 반복으로 나오는 음악처럼 Let it go 무조건 전진 가는 거다
툭 치면 느릿하게 뛰쳐나오는 도마뱀 전깃줄로 온몸을 칭칭 감고 반쯤 감은 눈으로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다 아는 척한다 선지자처럼 방금 보인 꼬리를 냉큼 자르고 도망친다 똥 싸놓은 개처럼 사라진다

심우기
2011년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 『검은 꽃을 보는 열세 가지 방법』이 있음. 가천대학교 출강.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5. 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