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하상만 | ||
|---|---|---|---|
편지
이제 가을이라 부를 수 없는 시간이 되었네요
집에 보일러는 잘 들어오는지 궁금합니다
우리 집엔 보일러가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틀어도 틀어도 냉골입니다
늦가을, 초봄까지 해서
겨울이 6개월은 된다고 생각하니
겨울이 참 두텁습니다
예전 성당 다닐 때
순교한 분들의 마음을 체험해 보는 행사가 있었는데 그중의 하나가
얼음 위에 올라가서 오래 견디는 거였습니다
맨발로 얼음을 딛는 순간 몸 여기저기 통증이 찾아왔는데
얼음의 차가운 기운이 몸 안으로 전해진 결과라고 생각했지요
요즘 우리 집 마루 바닥이 딱 그 얼음장입니다
저는 혼자서 발을 동동거리며 배교하겠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 혼자서 그런 놀이를 하고 웃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알고 있습니다
바닥을 짚을 때 느껴지는 고통은
따뜻한 것이 몸 밖으로 빠져나가면서 생기는 거라는 것을
때때로 외로움이 느껴지면 생각해요
이 외로움은 밖에서 찾아온 것이 아니라
제 속의 다정함이 빠져나간 결과라고
남이 저에게 슬픔을 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슬픔도 제 속의 기쁨을 잃어버린 결과였습니다
무엇이든 다 제 속에 있습니다
추위를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 속의 따뜻함을 지키기 위해
벗어 두었던 털신을 신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하상만
2005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간장』, 청소년 교양서 『과학실에서 읽은 시 1, 2』 등이 있음.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5. 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