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 저자 | 박수현 | ||
|---|---|---|---|
틸란드시아 이오난사 푸에고*
난 박쥐처럼 매달려 있지
허공에다 발을 묻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을래
흙이나 물은 없어도
내 두 발에다 발랄한 모자를 씌우고 싶어
찰리 채플린이 쓰던 볼러 아니 뉴스보이 캡도 괜찮아
사실 더 많은 모자를 신겨보고 싶어
골똘하게 생각하는 발이라면 누가 믿어 주겠어?
흐음, 모자의 자세는 발의 감정보다 먼저니까
먼 길 떠날 때는 신발보다
모자를 더 챙기는 풍속도 괜찮아
여행지 대합실에서 두리번대는 눈길을 가려주는 모자
딱딱한 사각턱도 부드럽게 만드는 모자
오래전 버렸거나
옷장 속에서 한 번도 꺼낸 적이 없는 모자
해바라기가 즐비한
멕시코 티화나의 그 골목들이 더 깊숙한 골목을 감아 돌듯
모자 한 개에 착생된 감정을 생각하는 그런 밤
나는 철봉대에 거꾸로 매달려 흔들흔들 텅 빈 운동장을 바라보지
아무 것도 기억하지 않는 모자의 표정을
아니 아직 도착하지 않은 나라의 푸른 발들을 궁금해 하면서
* 미세 먼지를 빨아들인다는 공기정화 식물(에어 플랜트)

박수현 ㅣ
2003년 《시안》 등단. 시집 『운문호 붕어찜』 『복사뼈를 만지다』 등이 있음. 2011년 서울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7년 9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