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김영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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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흑산도 홍어
흑산도 홍어는
잘 썩지 않는다
미끼 없는 주낙에 낚여 차겁고 어두운 바다에서 몇 날 몇 밤을 버둥대다 애간장이 녹아 없어진 탓이다
그물 속 칠레 홍어는
창자가 있어
쉬이 썩는다
변방
잊을 만한 여배우
시골 버스 광고에 있었다
옛 모습 그대로 늙지 않았다
조금 잊혀졌을 뿐
인생은
내키지 않아도
변방이 있는 것이다
희망 없다 혀를 차네
정년을 잘 마치고 홀가분한 친구 끼리
한 잔이 2차 3차 비틀비틀 돌아온 집
아내는 술이 그리 좋으냐 묻고 또 물었다
한 달에 한 번 꼴로 뭉치며 마신 노땅들
그러기를 몇 달 지나 아내가 또 물었다
술 말고 해야 할 일이 그렇게 없느냐고
아! 하! 이게 큰일이네
이 나이에 뭐! 할 게 있나
만나서 사고 안 치고 마시고 잡담하는 일
그 말을 귀에 담은 아내
희망 없다 혀를 차네
자선시
히말라야 짐꾼
제 몸의 무게보다
큰 짐을 지고 가는
네팔 친구 할리는
아이가 다섯이다
하루에 일만 원 벌어
다섯 아이 지고 간다
마음
연필을 날카롭게 깎지는 않아야겠다
끝이 너무 뾰쭉해서 글씨가 섬뜩하다
뭉툭한 연필심으로 마음이라 써본다
쓰면 쓸수록 연필심이 둥글어지고
마음도 밖으로 나와 백지 위를 구른다
아이들 신나게 차는 공처럼 대굴거린다
화엄동백
뚝뚝 목이 지는 화엄사 동백을 만나
일자리 작파하고 유랑하는 친구의 말씀
지리산 반야봉 너머 환한 세상 있것다
천왕봉 상상봉에
매어놓은 <바람집 한 채>
바람을 부르면 슬픈 가락이 되고 구름 몰려오면 벼락 치는 노한 소나기로 우르릉 쾅쾅, 섬진강 은어 떼 뛰듯 철없이 튀어 올라 평사리 무논바닥 잡풀 자라듯 그렇게 한 시절 살아보려 했는데 절뚝이며 절뚝이며 술잔 비우네
동백은 생살로 목이 뒹굴고
어둠은 말 없는 산을 감춘다

1974년 《현대시학》 등단.
시집 『히말라야 짐꾼』 『화답』 『홍어』 『겨울별사』, 여행 산문집 『외로우면 걸어라』 등이 있음.
〈중앙시조대상〉〈이호우시조문학상〉〈고산문학대상〉〈가람문학대상〉 등 수상.

둥글어진 상처는
천왕봉도 지고 가네
김영재 시인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등산복 차림으로 나타난다. 차림만 그런 것이 아니라 아주 전문 용품으로 언제든지 히말라야라도 오를 듯 잘 갖춘 복장이다. 작고 마른 몸매와 날쌘 동작으로 산에서는 거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속도와 등산로는 물론이고 샛길까지도 아주 환하게 꿰고 있어서 그와 한 번쯤이라도 근교의 산을 다녀오고 나면 감탄을 금할 수 없다. 그래서 당연히 김영재 시인의 나이가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올해 그도 고희가 되고 말았다. 선생의 나이를 이렇게 쉽게 공개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는 크게 괘념치 않을 것이다. 20년 가까이 지근에서 자주 만나면서, 시집 『화엄동백』『홍어』 등을 통해 그의 시가 산과 생생한 삶의 현장에서 습득한 활기를 가득 지니고 있음을 느끼며 그가 고희가 되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필자도 잊고 지냈다. 그리고 잦았던 만남에서도 본인 스스로 ‘어른’의 티를 내지 않았던 것을 떠올리며, 어느새 세월이 참 많이 흘렀음을 느낀다.
“독한 술 털어 넣고 겨울 죽령 오른다” (「겨울 죽령」), “간절한 그리움이란 육신으로 말하는 것” (「간절한 그리움」) 등의 구절들을 기억하는 필자는 다시 그의 시집을 꺼내 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삼 년 지난 줄 알았던 시집 『홍어』도 2010년에 나온 것이었다. 그러니 이번 신작을 받아 들고는 새삼 그에게 들이닥친 세월도 만만치 않음을 감지하게 되었다. 날카롭던 시선도 둥글어지고 격하던 언어도 부드러워진 그의 시들은 이제 덧난 상처도 부둥켜안고 등을 토닥이며 진짜 어른이 되어 나직하게 주위를 돌아본다.
흑산도 홍어는
잘 썩지 않는다
미끼 없는 주낙에 낚여 차겁고 어두운 바다에서 몇 날 몇 밤을 버둥대다 애간장이 녹아 없어진 탓이다
-「흑산도 홍어」 부분
인생은
내키지 않아도
변방이 있는 것이다
-「변방」 부분
젊은 시절에는 나를 위주로 모든 것을 생각하고 언행도 거칠 것 없이 힘차지만 지천명이 지나면 주변을 배려하는 법이다. 그래서 “흑산도 홍어”의 “애간장”도 왜 그렇게 되는지 곰곰 생각하고 평생 인생 주류에 서 있을 것 같았던 자신의 역정에도 “내키지 않아도/변방”이 생긴다는 것을 감지하고 스스로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늙어가는 것이 얼마나 삼삼한지 아무나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나’를 많이 낮추고 지워 내야만 남의 사정이 이해되고 비로소 나의 밖인 ‘남’과 ‘사물’이 새롭게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중심’만이 좋고 ‘변방’은 쓸모없는 하찮은 것이라는 편협된 생각도 드디어 활짝 트이게 된다. 주변과 마찰하고 대립하며 각을 세우고 살아온 젊은 날들이었으니 얼마나 많은 상처들이 생겼을까 모른다. 그러고 한때 곪은 상처를 끌어안고 속을 끓였겠지만 이제는 그 상처를 통하여 넓어진 안목과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까지 알게 된 것이니 ‘나이’는 인생의 새로운 반려자라 할 수도 있겠다.
정년을 잘 마치고 홀가분한 친구 끼리
한 잔이 2차 3차 비틀비틀 돌아온 집
아내는 술이 그리 좋으냐 묻고 또 물었다
한 달에 한 번 꼴로 뭉치며 마신 노땅들
그러기를 몇 달 지나 아내가 또 물었다
술 말고 해야 할 일이 그렇게 없느냐고
아! 하! 이게 큰일이네
이 나이에 뭐! 할 게 있나
만나서 사고 안 치고 마시고 잡담하는 일
그 말을 귀에 담은 아내
희망 없다 혀를 차네
- 「희망 없다 혀를 차네」 전문
김영재 시인의 시가 이렇게 편안해질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아마 본인도 이 작품을 써놓고 너무 헐렁하지 않은가 몇 번 뒤돌아보며 망설였을 것이다. 늘 긴장과 대립 속에 팽팽하게 삶을 조여 오는 편편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위 작품을 보면 ‘아내’가 “희망 없다 혀를” 찰 만은 하겠지만 “정년을 잘 마치고 홀가분한 친구 끼리” 만나는 일은 노년에 중요한 일이며 이것만큼 ‘희망’으로 가득한 일이 또 있는지 절로 반문하고 싶어진다. 우리 인생이 언제까지 긴장하고 새로운 도전에 희망을 품으며 매진할 수 있을까. 고희의 나이에는 이렇게 “한 잔이 2차 3차 비틀비틀 돌아온” 것도 “한 달에 한 번” 쯤은 그리 나쁘지 않은 일이라 믿어주자. 아니 그렇게 “만나서 사고 안 치고 마시고 잡담하는 일”로 마무리 하는 것이 ‘우리의 희망’이라고 손잡아주어도 좋지 않겠는가.
아직도 출판사 대표로 계간 시조 전문지를 내는 발행인으로서 활동하며 적잖은 작품을 발표하는 열혈 당신에게 가끔 이렇게 “희망 없다 혀를 차”는 일은 감수하여도 무방한 일이라 생각한다. 모처럼 일상이 다 풀어 헤쳐진 편안한 작품을 보며 참으로 우리 사회는 잠시라도 긴장을 풀고 살아가기 힘든 여건이라는 것을 재삼 돌아보게 된다. 시인이시여! 사모님께서 이 일을 또 다시 닦달하더라도 굳이 해찰해버리시고 짐짓 돌아서서 ‘다시 한 달 후에 희망 있네’라고 답하면 좋을 듯하다.
김영재 시인은 우리 현대 시조단에서 2세대 쯤에 속한다. 70년대 등단한 시인들은 각자의 직장에서 정년을 마치고 또한 협회나 기타 단체에서도 일선에서 물러나 있다. 돌아보면 그들은 60년대에 한국시조시인협회가 창립되고 나서 그 뒤를 오랫동안 굳건하게 지켜온 분들이다. 그러니까 ‘시조’가 한국문학에서 한 장르로 확실한 자리 잡을 수 있게 후위를 받치며 허리를 지켜낸 세대라 할 수 있다. 이 지면에 곁들인 발표작 3편은 김영재 시인을 대표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 2016년에 한국의 단시조 시리즈로 출간 된 시집 『히말라야 짐꾼』의 표제작은 그가 직접 현장을 다녀온 후 쓴 것이다. 단시조가 대중들에게 시조의 위상을 제고할 수 있는 좋은 방편이긴 하지만 빼어난 단수를 구사하기란 난망하기 그지없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그래서 단시조집을 내는 일은 힘든 도전이라 아니할 수 없다.
제 몸의 무게보다/큰 짐을 지고 가는/네팔 친구 할리는/아이가 다섯이다/하루에 일만 원 벌어/다섯 아이 지고 간다
-「히말라야 짐꾼」 전문
음보가 편안하고 기승전결이 순조로우며 아주 평범한 시어 속에 커다란 의미를 잘 갈무리하고 있다. 종장의 무게가 “네팔 친구 할리”가 지고 가는 짐의 무게보다 묵직하게 다가온다. “하루 일만 원”과 “다섯 아이”는 많은 이야기를 내포하고 있다. 이 짧은 형식 안에 소설로 써도 될 만한 이국의 세상살이가 가득하다. 시인과 짐꾼은 ‘친구’가 되었어도 귀가 열린 시인이 아니었다면 ‘할리’의 ‘다섯 아이’ 소식도 듣지 못하였을 것이니 당연히 이 작품이 탄생했을 리도 만무한 일, 결국 착한 시인의 마음이 좋은 시를 받아 오신 격이다.
연필을 날카롭게 깎지는 않아야겠다
끝이 너무 뾰쭉해서 글씨가 섬뜩하다
뭉툭한 연필심으로 마음이라 써본다
쓰면 쓸수록 연필심이 둥글어지고
마음도 밖으로 나와 백지 위를 구른다
아이들 신나게 차는 공처럼 대굴거린다
- 「마음」 전문
위 작품에도 따듯하고 농익은 시인의 생각이 오롯하게 들어앉아 있다. 연필을 깎는 일이야 사소한 일상이지만 왜 시인은 “뭉툭한 연필심으로 마음이라 써본” 것일까? “끝이 너무 뾰쭉해서 글씨가 섬뜩하다”라고 느낄 수 있는 편안한 나이가 그렇게 시켰을 것이다. 옛날에 아버지가 연필을 뾰족하게 깎고 나서 두꺼운 갱지에 연필심 끝을 몇 번 둥글게 갈아주셨던 기억이 새로울 것이다. “쓰면 쓸수록 연필심이 둥글어지고” 아이들은 뭉툭해진 그 끝이 마음에 들지 않겠지만 시인의 마음은 한없이 편해졌나 보다. 뾰족한 연필 끝은 종이를 찢고 깊게 파여 지우개로 지우기도 어렵지만 둥글어진 연필심은 “백지 위를 구른다”. ‘마음’ 또한 날카로우면 자신은 물론이고 상대방에게 깊은 상처를 주게 되는 법이니 연필심이 둥글어지듯 마음도 그렇게 귀퉁이가 닳고 “공처럼 대굴거린다”고 시인은 마지막으로 말한다. 연필도 마음도 쓰는 방법에 따라 천차만별의 표현과 아량을 베풀어 낼 수 있는 도구지만 그것을 관리하는 데는 오랜 기간 실수와 착오가 반드시 동반되게 마련이다. 마음을 잘 추슬러 낸, 아름다운 연치가 시에 깃든 모습이 포근하고 향기롭다.
뚝뚝 목이 지는 화엄사 동백을 만나
일자리 작파하고 유랑하는 친구의 말씀
지리산 반야봉 너머 환한 세상 있것다
천왕봉 상상봉에
매어놓은 〈바람집 한 채〉
바람을 부르면 슬픈 가락이 되고 구름 몰려오면 벼락 치는 노한 소나기로 우르릉 쾅쾅, 섬진강 은어떼 뛰듯 철없이 튀어 올라 평사리 무논바닥 잡풀 자라듯 그렇게 한시절 살아보려 했는데 절뚝이며 절뚝이며 술잔 비우네
동백은 생살로 목이 뒹굴고
어둠은 말 없는 산을 감춘다
-「화엄동백」 전문
이 작품은 1998년 김영재 시인에게 제17회 중앙시조대상을 안겨준 작품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바람집 한 채>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 구절은 그와 절친한 시인 박시교의 「바람집2」에서 차용한 것으로 이 시의 소재와 아주 잘 상통하고 있어서 울림이 각별하게 컸다. 특히 둘째 수 중장의 확장된 사설은 심사위원들로부터 좋은 평을 받은 것으로 기억한다. 대구를 아주 자연스럽게 풀어 낸 중장이 자칫 지나치기 쉬운 만연체(蔓衍體)를 극복하며 좋은 효과를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화엄사 동백”에서 갈무리한 시제 「화엄동백」에서 ‘화엄’은 용어 자체가 간직한 커다란 울림을 내포하며 작품의 무게를 격상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한 것도 이 작품의 장점이다. “동백은 생살로 목이 뒹굴고/어둠은 말 없는 산을 감춘다”라고 마무리한 사설의 종장은 과음보임에도 불구하고 엄숙하고 절도 있게 냉엄한 화엄의 이치를 설파하며 멋지게 ‘화엄’과 ‘동백’의 절정에서 막을 내린 벅찬 피날레였다.
고희를 맞는 김영재 시인의 작품에서 읽은 세월의 흔적은 뚜렷하고 따스한 모습으로 독자에게 다가오고 있다. 자신의 상처와 고통을 다스려낸 시간들의 부대낌도 돌아보면 정겹고 벅찬 것이 세상의 인정이다. ‘홍어’의 버둥거림도 ‘변방’의 누추함도 ‘희망 없음’이라는 매정한 아내의 단정마저도 포근하게 자신의 시에 담아낸 시간들이 반짝이며 저무는 노을과 같이 아름답다. 둥글어진 상처가 천왕봉도 지고 갈만 하니 그 또한 너그럽고 고마울 뿐이다.
글 · 정용국 | 시인. 경기 양주 생. 2001년 《시조세계》 등단.
시집 『난 네가 참 좋다』 외 2권, 시선집 『눈이 물고 온 시』가 있음. 한국작가회의 시조분과 위원장.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7년 6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