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 저자 | 박균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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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물 위에 서 있던 나무
처음 만난 날
당신은 오래된 노래를 불렀다
시간도 기억도 거기에서 멈췄다
당신은 바람처럼 가벼운 씨앗
어느 세상에서 왔는지
물 위에 내려앉아 싹이 트고
뿌리를 촘촘히 뻗어 물을 움켜쥐고
당신은 물 위에 서 있던 나무
물고기들이 잔뿌리를 뜯어 먹고 토하면
당신은 간신히 길어 올린 신물을
피가 통하지 않는 곳에서 엎지르고
파르르 잎을 떨며
어지럼증의 가느다란 목덜미 휘청이며
만나고 싶었다고 희미하게 웃었다
새들이 무서운 대륙을 하염없이 떠돌다 돌아와
당신의 가느다란 가지 위에 앉아 울었다
눈물이 물에 떨어졌다
물결이 점점 커져 해일이 되어
바다 건너 낯선 언어의 해안을 덮쳤다
당신이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바람보다 가볍게
어느 세상으로 갔는지
씨앗이 되어 나무가 되어
숙성된 술처럼 우아하게 출렁이며
다른 물 위에 무장무장 자라나고 있는지
마지막 만난 날
당신은 오래된 노래를 불렀다
후렴구가 끝없이 되풀이되었다
당신은 우리가 흘러가던 물 위에서
만나고 싶었다고 반갑게 웃던 나무
밤새 눈이 펑펑 내렸다
길도 기억도 천천히 지워질 것이었다

박균수 l
199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등단. 시집 『적색거성』 『소멸의 산책』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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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호(VOL.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