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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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재훈 

행려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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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만 마디의 말을 쏟아내고

하루치의 밥값을 벌어 동네에 도착했다

골목을 걸으며 늠름하게 풀벌레 소리를 듣고

고샅을 돌아 밤바람을 맞았다

코트 깃 사이로 말들이 새어나왔다

유목민의 피를 얻어 태어난 말

경쟁하지 않아도 모두 불행했다

신문에는 칼부림 소식이 가득했다

신령들은 팔을 휘저으며 걸었다

돌아가신 외삼촌이 찾아오는 꿈

눈동자에서 불꽃이 일고

가슴에 칼 긋는 소리가 났다

흙더미 속으로 내가 쓴 모든 시가 사라졌다

첨탑 십자가가 피를 흘리고 있었다

독사의 말이 뱃속에서 피리 소리를 냈다

내 몸은 단풍나무로 변했다

단풍이 메마르는 소리가 온몸에 일렁였다

활기 없는 신비만 남아 몽롱했다

어두운 거리에 자전거를 탄 사람이

저 멀리 공중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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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 ​​​​​​​​​​■

1998년 《현대시》 등단. 시집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 『명왕성 되다』 『벌레 신화』, 저서 『현대시와 허무의식』 『딜레마의 시학』 『부재의 수사학』, 대담집 『나는 시인이다』가 있음.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 〈현대시작품상〉 〈한국서정시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