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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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강은진 

무생물 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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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네모난 공중에 나를 그려놓았는데

나는 벽지에 그려진 구름처럼 아무 소용이 없다

 

뭉개지는 얼굴에 스며드는 무표정

 

생물과 무생물 사이에는 가끔 곤혹이 있고

언젠가의 기분을 되살리려 애쓰면서

우리는 점점 과거로 변해간다

 

당신은 입술을 굳게 다문 나를 그려놓았지만

어쩌면 그것은 무생물의 고요

 

언제부터였을까

잠 속에서 꿈을 꾸고 꿈속에서 자는 것

지금 꾸는 꿈이 꿈인지 잠인지 알 수 없는 것

 

꿈에서 본 것이

당신이었는지 당신이 그린 나였는지

왜 구름 벽지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것

 

오랫동안 원형감옥이라고 믿고 있었던 그림에

포도나무 가지의 일부를 횡단면으로 절단한 다음 중간 아래쪽을 반으로 쪼갠 것*

이라는 제목이 아주 조그맣게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한 날

꿈속에서 열 손가락이 가시덤불처럼 자라난다

 

 

 

* 니어마이아 그루의 『식물 해부』​(1682)에 실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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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강은진.jpeg

강은진​​​​​​ ​​​ ■

2011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달콤중독』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