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 저자 | 최서진 | ||
|---|---|---|---|
귓속말
잠시 모란 보고 올게요
모란 앞에서 한참을 울었다
늪처럼
동굴처럼
두 손을 오해하면서
우리는 단맛과 쓴맛을 가진 과일처럼
자주 캄캄해진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각자 집으로 돌아가 냄새나는 손을 씻는다
손톱이 색을 바꾼다
겹겹이 걸어나가 후드득 지는 꽃잎처럼
오늘의 모란은 오래전 죽은 낙타의 얼굴
약속은 한참을 울다가 불이 된다 재가 된다
열흘 붉은 꽃은 없어요
약속이나 한 것처럼
이 별을 입을 다문 채 허물어지며 지나간다
녹아내리며 아무나 밟고 지나가는 눈발처럼
먼 하늘에서 모란이 오고 있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최서진 ■
2004년 《심상》 등단. 시집 『아몬드 나무는 아몬드가 되고』 『우리만 모르게 새가 태어난다』가 있음. 〈김광협문학상〉, 〈성호문학상〉 본상 수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