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 저자 | 성동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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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3
많은 비문은 껍질을 까놓을 때 생겨나죠 그대로 둘 것을
발길에 채는 건 모두 당신이 던져놓은 것이라 생각하며 걷던 날들은 얼마나 어리석었나요
귤이 마르고 있죠 끈이 풀린 채 걷다가
귤을 까놓고 나온 걸 알았죠 끈이 풀린 채
걷다가
빈 화분 들고
나섰죠
처음 간 공원에
있었죠
누구도 끈을 매어주지 않았다면
풀릴 이유도 없어야 할 텐데
귤은 마르고 있고
끈이 풀린 채
걷고 있었죠 혼자선
처음 간 공원에서
겨울은 결심만 하다가 저물고
안전벨트를 맬 때의 소리와
레 파 라를 동시에 누를 때 나는 소리는 닮았고
상관없는 일들을 기어코 이을 필요는 없겠죠 그래도
넘어가는 해가 빈 화분 안으로 들어간 건
아무래도 그냥 일어난 일 같지 않았죠
화분을 안고 울었던 건 왠지 부끄러워 여기에만 적어놓아요 여력이 있는 사람 이 행을 찢더라도 원망하지 않아요
물을 주지 않아서 죽은 게 아니라
물을 많이 줘서 죽었다는 말
둘은 어떻게 다른지 생각하다가
화분이 아닌 다른 것이 텅 빌까 두려웠죠
빈 화분 안으로 들어오는 해를 안고
마르고 있는 귤들 사이에 서 있죠
끈이 풀린 채
있죠

성동혁 ■
2011년 《세계의문학》 등단. 시집 『6』 『아네모네』가 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