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 저자 | 최형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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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이름이 비칠 때
허리에 바람 무늬가 돋고 여자는 몸이 점점 헐거워졌다.
가슴뼈들이 바람에 달그락달그락 소리를 내기 시작했으므로 여자는 저녁의 찬 바닥에 발목을 담그고 자꾸만 깊어졌다. 발꿈치에서 물소리가 들렸고, 여자 곁에서 자라난 고요 혼자 몸집을 불리고 있었다. 허리의 바람 무늬가 안으로 안으로 파고들어
마침내 여자의 뱃속이 텅 비었을 때, 허공이 여자의 빈 곳으로 들어왔다. 순간, 여자의 빈 허리에 나비가 날아가는 풍경이 비쳤다. 여자는 고개를 숙이고 오래도록 몸 안의 허공을 들여다보았으나, 그리운 것들은 여자 바깥에 있었으므로 여자의 텅 빈 몸에서는 서러운 이름만 묻어나왔다.
허공이 점점 넓어져, 테두리만 남은 여자의 낡은 손이 허물어졌다. 흰 파편들이 허공 속으로 사라졌지만, 손이 없는 여자는 허공을 만질 수 없었다. 찬 바닥에 어두운 문장들이 내렸다. 여자가 가진 저녁의 목록에는 여자의 이름이 없었으므로 설 곳을 잃은 여자는 둥글게 몸을 말았다. 한 뭉치의 허공에서 바람 한 올이 빠져나왔다. 청사초 잎이 잠시 흔들렸고
마침내 아무도 없었다.

최형심 ■
2008년 《현대시》 등단. 시집 『나비는, 날개로 잠을 잤다』가 있음. 〈심훈문학상〉 수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