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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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곽효환 

아무도 쓰지 않는 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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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간신문 1면을 가득 채운

사진 한 장 없이 활자만 가득한

아무도 쓰지도 읽지도 않는 부고를 본다

최소한의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스물세 살 청춘을 불에 사른 청계천 피복 노동자 전태일이 작고한 지 50주년을 이틀 앞둔 날

하청업체 계약직 노동자 스물네 살 청년 김용균이 태안화력발전소 석탄 이송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사망한 지 2년을 꼭 한 달 앞둔 날

우리가 잠든 지난밤에 죽어간

무명의 노동자 143명에 대한 죽음의 기록을 본다

 

작업 중 지지대가 넘어지며 구조물에 맞아 숨진 도장기술자

갑자기 작동한 리프트에 머리가 끼여 즉사한 제조업체 생산직 노동자

흙막이 작업을 하던 중 무너진 토사에 매몰된 일용직 흙막이 설치공

혹한과 혹서를 비좁은 초소에서 초과 근무하다 쓰러진 아파트 경비원

고정 야간운전자로 일하다 운전석에서 끝내 나오지 못한 택시기사, 버스기사, 택배기사

24시간 2교대로 야간 근무를 하다 숨진 사출 기술자, 보일러 기사, 정신병동 요양보호사, 주유소 주유원

그리고 터널 굴착 갱도에서 축전 차량에 끼여 숨진 미얀마 노동자를 비롯한 외국인 노동자들

 

비정규직 아버지, 어머니가

특수 고용직 형과 누나와 동생들이

플랫폼 노동자 이웃들이

그리고 내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지난밤에 이렇게 죽었고 죽어갔다

 

현직 검찰총장이 대권후보 1순위가 되는

초유의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고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이

오늘은 이렇게 대립각을 세웠다고

모든 신문과 방송이

앞다투어 호들갑스럽게 떠드는 아침

아무도 관심 가지지 않고

아무도 쓰지 않고

아무도 읽지 않는 부고에 담긴

반세기가 지나도 끊임없이 속출하는

수많은 전태일, 김용균 앞에서

이 위로할 수 없는 슬픔 앞에서

나는 움직일 수 없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말이

공허한 메아리로 여전히 맴도는 오늘

‘사람이 먼저’인 세상이

오고 있는 것인지

아니 언젠가 마침내

미륵처럼 오기는 오는 것인지

무엇이 아니고 무엇이 먼저라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나는

 

 

 

* 2020년 11월11일자 서울신문 1면.

 

 

 

 

 

 

 

 

 

 

 

 

 

 

 

 

 

 

 

 

신작시_곽효환.jpeg

곽효환​ ​​■

1996년 《세계일보》와 2002년 《시평》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작. 시집 『인디오 여인』 『지도에 없는 집』 『슬픔의 뼈대』 『너는』 등, 저서 『한국 근대시의 북방의식』 『너는 내게 너무 깊이 들어왔다』 등, 편저 『이용악 시선』 『구보 박태원의 시와 시론』 『아버지, 그리운 당신』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 백석 시그림집』 『이용악 전집』(공편) 『청록집 ― 청록집 발간 70주년 기념 시그림집』 『별 헤는 밤 ― 윤동주 탄생 100주년 기념 시그림집』 등이 있음. 〈고대신예작가상〉 〈애지문학상〉 〈편운문학상〉 〈유심작품상〉 〈김달진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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