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이달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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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후투티가 오는 저녁
ㅡ LP음악카페 뱅뱅에서
콧수염의 주인이 돈가스를 만들고
엊그제 들여온 포도주를 거를 때
저만치 메타세쿼이아도 잠시 숨을 고른다
후후훗! 하고 운다는 새 이름 후투티
커피와 음악이 무료해지는 늦은 오후
돌아온 인디언처럼 화관무(花冠舞)를 시작한다
갈아둔 이랑을 뛰어다니는 음표들
그 콩나물 대가리를 연신 쪼아먹다가
갸우뚱, 철새임을 잊고 사람과 눈을 맞춘다
노을이 시나브로 어둠과 몸을 섞어도
추장의 몸짓은 끝나지 않는다
대지의 신께 바치는 거룩한 제의(祭儀)의 춤
밥 딜런을 생각하다 존 덴버를 말하는
60대의 간이역을 깜박이는 기억들
후투티, 너의 GPS를 입력하며 길을 나선다
장송(長松)의 말
ㅡ 난중일기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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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베어 여항산(餘航山) 다함 없이 편안하다면 눈 밝은 최 목수 네 눈길에 사로잡혀 산지니 울어서 붉은, 눈물 속에 나는 가리
언제는 산에 기대고 또 언제는 강에 물으며 낙동정맥 한 허리를 꼿꼿이 떠받히며 예까지 왔느니 설마하니 선 굵은 나이테, 아름드리 장송을 하룻밤 뉘 집 구들을 데울 땔감으로야 쓰겠느냐 왕조의 누대 받드는 대들보 아니어도 칠석날 은하를 가로지른 오작교 아니어도 재선충, 그 역병의 중산간을 죽음으로 지키리라 |
정진(精進)
늪은 태초부터
청산을 그려왔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같은 풍경은 없었다
나날이
새로워지는
노화가(老畫家)의 캔버스
자선시
늙은 사자
죽음 곁에 몸을 누이고 주위를 돌아본다
평원은 한 마리 야수를 키웠지만
먼 하늘 마른번개처럼 눈빛은 덧없다
어깨를 짓누르던 제왕을 버리고 나니
노여운 생애가 한낮의 꿈만 같다
갈기에 나비가 노는 이 평화의 낯설음
태양의 주위를 도는 독수리 한 마리
이제 나를 드릴 고귀한 시간이 왔다
짓무른 발톱사이로 벌써 개미가 찾아왔다
통영 세병관에서 적조를 아룀
ㅡ 난중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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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감, 그곳 소슬한 청죽바람은 여전하온지요? 전하께옵서 기우제 드린 소식은 접했으나 이 남도 균열의 대지엔 미금만 풀썩입니다.
삼복염천을 나면서 이렇게 지필묵 놓고 글 올리는 이즈음이 매양 우울해서인지 한여름 고뿔이 찾아와 요 며칠 고생 중입니다.
문득 임진년 대승첩이 떠오릅니다. 아무리 왜적이라지만 떠오른 주검 앞에서 승전의 축하 일배주는 허할 수 없었나이다.
오늘 한산 바다는 동백이 지고도 한참, 다홍빛 저 붉음을 어찌 꽃답다 하겠습니까. 떠오른 고기들의 울음이 놀빛인 양 서럽습니다.
두창 뒤에 따라온 검붉은 호열자처럼 창궐한 떼죽음을 어이 필설로 다하오리까. 이럴 땐 목민의 자리가 죄스러울 뿐입니다.
세월을 당겨서 은하도 가까워진 오늘, 저 붉은 뉫살을 대적할 무기가 벽방산 무릎을 파낸 한 줌 황토뿐이라니.
한차례 태풍이라도 다녀가시면 모를까 의서에도 이 병의 처방이 묘연타 하니 이만큼 차오른 울화만 다독일 뿐입니다. |
이달균 |
1987년 《지평》, 시집 『南海行』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열도의 등뼈』 『늙은 사자』 『문자의 파편』 『말뚝이 가라사대』 『장롱의 말』 『북행열차를 타고』 『南海行』, 6인시집 『갈잎 흔드는 여섯 악장 칸타타』, 시선집 『퇴화론자의 고백』, 시·사진집 『탑, 선 채로 천년을 살면 무엇이 보일까』,현대가사시집 『열두공방 열두고개』, 영화에세이집 『영화, 포장마차에서의 즐거운 수다』가 있음.
〈중앙시조대상〉 〈이호우·이영도시조문학상〉 〈조운문학상〉 〈경상남도문화상〉 등 수상.

바람의 문장(文章), 길 위의 시학
ㅡ 이달균 시인의 시 세계
이달균 시인이 시인의 길로 접어든 지 올해로 35년의 세월이 흘렀다. 1987년 첫 시집 『남해행』을 상재하면서 문단에 첫발을 내디딘 그는 여덟 번째 시집 『열도의 등뼈』(2019년)를 펴내기까지 그만의 활달한 서정과 끊임없는 형식 실험으로 한국 시조단의 우뚝한 봉우리로 자리잡았다.
시인은 자유시로 시작하여 1995년 《시조시학》 신인상을 받고부터 오히려 시조시인으로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해오고 있다. 초창기 특유의 멜랑콜리한 서정과 저항 정신을 오랜 습작기와 동인 활동을 통해 터득한 글 솜씨로 유려하게 녹여내어 자유시에서도 상당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런 그가 돌연 정형시조에 입문함으로써 주위를 놀라게 했다. 그가 왜 시조로 방향을 틀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그가 시조에서 이룬 성취가 괄목할 만하고, 시 세계가 한층 광활하고 원숙해졌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하여 그의 시적 성취에 대한 전문 연구자들의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연구가 조속히 이어지길 희망하면서, 여기서는 본격 시론도 시인론도 아닌 그 중간쯤에서 이달균 시인의 궤적을 짚어보고자 한다. 그 연장선에서 신작시와 대표시도 함께 살펴보려 한다.
이달균은 시조라는 정형성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새로운 형식을 끊임없이 실험하고 심화하고 확장시켜 온 대표적인 시인이다. 때로는 복잡한 현대인의 삶에 감추어진 비의(秘意)와 존재의 비극성을, 때로는 삶의 역동적 감흥과 다양한 무늬를 해학과 풍자, 은유와 역설로 시조라는 그릇에 맛깔나게 담아왔다. 그의 중장을 길게 늘어뜨리는 사설시조(시조집 『말뚝이 가라사대』, 2009년)와 가사(歌詞)문학에서 차용해온 가사시 창작(가사시집 『열두 공방 열두 고개』, 2017년)은 대표적인 형식 실험의 예로 꼽힌다.
그의 형식 실험과 존재 탐구는 장르를 뛰어넘어 다양하게 진행되었는데, 그가 6편의 장편 시극(詩劇)을 창작하고 직접 연출까지 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그의 시가 짧은 정형시 속에서 이른바 ‘극적 장면들’을 효과적으로 연출할 수 있었던 것도 시극 경험에 힘입은 바 커 보인다〔시극 〈윤동주, 새벽을 기다리며〉(1999년), 〈북행열차를 타고〉(2000년), 〈개미사냥〉(2001년), 〈3·15 그 못다 부른 노래〉(2002), 〈연어〉(2003)〕.
또한 오광대를 비롯한 마당극에 대한 열정은 실로 대단하였다. 90년대 말부터 근 10년간 고성과 통영, 진주 등지 공연장을 뻔질나게 찾아다녔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민중의 정서와 몸짓, 미학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는 다시 이것을 자신만의 시의 형식으로 수렴하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한편으로 대중음악과 미술, 영화 등 인접 분야도 관심이 지대하여, 영화의 경우 에세이 형식의 책(『영화, 포장마차에서의 즐거운 수다』 2015년)을 묶어내기도 했다. 그의 지적 호기심은 흡사 진공청소기와 같아서 모든 것을 빨아들였고, 그것은 오롯이 시 창작의 밑거름이 되었다. 이런 호기심과 개방적 태도는 변화에 대한 갈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간관계도 매우 넓어 주변에는 늘 문인은 물론이고 기인(技人)과 예술가들로 북적였다. 이 시기 세기말적 분위기도 한몫 거들어 멜랑콜리한 언술과 저항의 행위는 종종 허무주의와 아방가르드적 시작(詩作)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다행인 것은 이러한 전위적 태도에 변방의 시인이라는 자의식과 자각이 겹쳐지면서 이후 변혁의 시정신을 추동하는 동력이 되어주었다.
혁명하라 길들여진 모든 것들에 대해
노래가 지루하다면 불 속에 던져버려라
상상을 뒤엎는 상상, 그 불기둥에 입 맞춰라
ㅡ 「시조(時調)」전문
그는 이 짧고 호쾌한 시에서 천명했듯이, 형식뿐만 아니라 삶의 방식과 사유체계, 노래와 상상까지 ‘길들여진 모든 것’을 바꾸려 하였다. 지금까지 일관성 있게 지키는 그의 ‘시작(詩作) 원칙’이다. 선배인 이달균 시인과 동시대 시인이자 30년 넘게 벗하며 살아온 문반(文伴)으로서 그의 시의 변화 양상을 살펴볼 기회를 가진 것은 나로서는 큰 행운이다. 우린 서로를 너무 잘 안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을 굳이 글로 표현하자니 다소 생소하고 난감하기까지 하다. IMF가 닥친 그 엄혹한 시절, 우리는 지역에서 계간문예지 《시와생명》을 창간했고 여러 변혁 운동도 함께했다. 와중에 백두산과 금강산 기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참 많은 곳을 바람처럼 쏘다녔다. 그때 심정을 시인은 “울어서 퉁퉁 부은 채 쏘다니고 싶었다”(「솔리타리 맨」)고 표현한 바 있다. 지금껏 그가 펴낸 시집과 에세이를 다시 읽어보면서, 나는 그가 대단한 시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너무 가까웠던 탓에 다 안다고 착각했던 지난날이 부끄러워졌다.
이달균 시인의 시세계는 2000년대를 넘어서면서 뚜렷한 변화를 보인다. 초창기 상실과 결핍에 기초한 비극적 세계관이 걷히고, 멜랑콜리한 서정은 활달하고 밝은 서정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밀레니엄이란 새로운 시대를 담아내기 위한 암중모색은 여행과 사색으로 더욱 깊이를 더해갔다. 다른 한편으론 탈춤과 마당놀이 현장, 공방 등에서 만난 여러 예인과 장인들과 사귐을 통해 작품은 깊이와 구체성을 띄며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좀 더 세밀하게 보자면, 이달균의 시는 대체로 세 단계의 과정을 거치면서 변화를 거듭했음을 알 수 있다. 첫 번째 단계는 소멸과 퇴락의 정서가 강하게 묻어나는 등단 이후부터 1999년대까지(1987~1999), 두 번째 단계는 견딤과 발효의 과정을 거치면서 변화에 대한 갈망을 분출한 2000년대(2000~2009), 세 번째 단계는 그만의 자유자재한 문법과 포용적 시학을 구축해가는 시기(2010~현재)로 구분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고성오광대를 주제로 한 서사시조집 『말뚝이 가라사대』(2009년)는 단연 신호탄이었다. 이 시집으로 시인은 한국 시단에 그 이름을 확고히 각인시켰고, 시적 세계관도 질량과 깊이와 강도를 동시에 담보하게 되었다. 시집 『말뚝이 가라사대』 중 한 편을 보자.
사랑이 오신다면 스미듯 오셔야지
시나브로 꿈 적시는 봄비처럼 오셔야지
화들짝 헤픈 도화처럼 왜 난분분 오시는가
내사 못할 짓이네 당췌 못할 짓이네
눈물에 자물자물 시나브로 잠이 들면
문풍지 실바람에도 흠칫 놀라 잠을 깬다
과부야 애솔나무 송화분 흩어지면
은근짜 옷고름 풀 듯 보리밭도 흥감터라
궁노루 흐벅진 욕정의 중중모리 휘모리
어디선가 맹렬히 별똥별 떨어지고
들물날물 한데 엉켜 소용돌이 뺑이 돈다
들끓던 햇살의 산조, 차츰 숨이 잣는다
쟁여둔 시간과 한 송이 목화구름
연둣빛 보료는 향기롭고 따뜻하다
달디단 밀봉의 오후, 꿈처럼 봄날은 간다
ㅡ 「4. 정분」 전문
서막에 수록된 것으로, 본격적인 춤판이 벌어지기 전 광대들이 등장하는 장면의 한 부분을 묘사한 시다.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어 오히려 슬프면서도 정아(精雅)한 느낌을 준다. 이 역시 ‘이달균 미학의 진수를 보여주는 명편’이 아닐 수 없다. 김열규는 시집 해설에서 “말마다, 몸짓마다, 사설마다, 몸 사위마다, 대사마다, 표정마다 구석구석 남김없이 이 잡듯 잡아내고는 그 모든 것을 그의 시법으로, 시학으로 드디어는 시정신(포에지)으로 삼을 수 있었다. 가장 한국적인 폴키즘의 시학”(「한국다운 폴키즘의 깨춤」)이라고 상찬한 바 있다.
바람이 없으면 바람을 일으키고, 바람이 막아서면 바람 속을 뚫고 내달리고, 바람에 휩쓸리면 바람의 머리채를 잡아채던 시인은 이제, 높이 치솟아 바람을 타고 노는 한 마리 매나 연처럼 자유자재함을 얻어가는 것이다. 절창인 시 한 편을 더 보자.
소리는 날고 싶다 들바람 둠벙 건너듯
휘몰이로 돌아서 강물의 정수리까지
아름찬 직소폭포의 북벽에 닿고 싶다
적벽강 채석강을 품어 안은 변산반도
북두성 견우성이 어우러져 통정하고
윤슬의 만경창파는 진양조로 잦아든다
결 고운 그대는 국창(國唱)이 되어라
깨진 툭바리처럼 설운 난 바람이 되어
한바탕 쑥대머리나 부르며 놀다 가리니
그날은 찾아올까 우화등선은 이뤄질까
가을빛 스러지면 어느새 입동 무렵
노래는 구만리 가고 기러기는 장천 간다
ㅡ 「득음(得音)」 전문
그가 탈춤과 판소리 마당을 쏘다니며 익혔던 민중적 언어가, 농울진 시절 서정과 절정에 가닿은 예인의 경지와 어우러져 ‘고고(高古)한 비감미’를 자아내는 명편을 만들어 냈다. 입에 쩍쩍 올라붙고, 터진 듯 걸린 듯 국창의 목청이 가을 들판 저편에서 들려오는 듯하다.
이달균의 시는 이처럼 활달함과 장중함, 은미함과 현저함, 비극의 이면에 가려진 낙관성, 중심과 주변, 절제와 파격, 긴장과 이완, 눈물과 웃음 같은 이항대립적 요소들을 관통하면서 삶의 비의와 묘미를 획득해 나간다. 유성호는 『열도의 등뼈』 시집 해설에서 “그동안 우리가 배타적으로 경계를 그었던 인식의 관행들을 상상적으로 무너뜨리는 깊고 둥근 원융무애의 사유를 보여준다”며 그의 시적 성취를 옹호하였다.
비교적 근년에 나온 『늙은 사자』(2016년)와 『열도의 등뼈』(2019년) 두 권의 시집에서는 웅혼한 시상 전개와 활달한 상상력, 재미와 함께 자유자재함의 경지를 돌올하게 보여주고 있다. 시편들을 읽노라면 마치 『장자(莊子)』를 읽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시집에서는 ‘사자’ ‘과메기’ ‘베짱이’ ‘개미’ ‘코뿔소’ ‘딱따구리’ ‘사마귀’ ‘악어’ 등 온갖 곤충과 짐승이 등장해서 말을 한다. 심지어 나무인 ‘장송’과 ‘장롱’도 말을 걸어온다. ‘공사감독’과 ‘대리운전’ ‘명인’ ‘순례자’ ‘늙은 어부’ ‘떠돌이’ 등이 나와 나름의 삶의 철학과 넋두리를 펼쳐놓는다. 가히 난장이고 난전이다. 잘 알다시피 『장자』에는 온갖 짐승과 벌레들, 병신과 도둑들, 도인과 광인 등 기상천외한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특히 왕후장상이나 공자와 그 제자들은 이름만 빌렸을 뿐 스스로 묵은 탈을 벗어던지고 무지를 고백하도록 패러디한 가공 인물로 등장한다.
조선의 문체혁명을 일으킨 연암 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장자를 ‘저술가의 영웅’이라 칭하고 스스로를 그와 비교하기도 했다. 그는 글쓰기의 전범으로 『주역』과 『춘추』를 꼽고, 주역의 우언(寓言)은 은미한 진리를 말하면서도 현저함을 지향하고, 춘추의 외전(外傳)은 현저한 사실을 말하면서도 은미함을 지향한다고 했다. 은미함과 현저함, 사실과 허구가 갈마들며 변화무쌍한 조화를 부리는 문장이 최고라는 것. 의도했는지 모르지만 이달균의 글쓰기가 장자와 연암의 맥에 닿아 있음을 느낀다. 시집의 내용도 결코 가벼운 골계(滑稽)에 머물지 않고, 무겁고 깊고 통절함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오늘 한산 바다는 동백이 지고도 한참, 다홍빛 저 붉음을 어찌 꽃답다 하겠습니까. 떠오른 고기들의 울음이 놀빛인 양 서럽습니다.
두창 뒤에 따라온 검붉은 호열자처럼 창궐한 떼죽음을 어이 필설로 다하오리까. 이럴 땐 목민의 자리가 죄스러울 뿐입니다.
세월을 당겨서 은하도 가까워진 오늘, 저 붉은 뉫살을 대적할 무기가 벽방산 무릎을 파낸 한 줌 황토뿐이라니.
한차례 태풍이라도 다녀가시면 모를까 의서에도 이 병의 처방이 묘연타 하니 이만큼 차오른 울화만 다독일 뿐입니다.
ㅡ 「통영 세병관에서 적조를 아룀-난중일기1」 부분
*
날 베어 여항산(餘航山) 다함없이 편안하다면
눈 밝은 최 목수 네 눈길에 사로잡혀
산지니 울어서 붉은, 눈물 속에 나는 가리
언제는 산에 기대고 또 언제는 강에 물으며
낙동정맥 한 허리를 꼿꼿이 떠받히며 예까지 왔느니 설마하니 선 굵은 나이테, 아름드리 장송을 하룻밤 뉘집 구들을 데울 땔감으로야 쓰겠느냐 왕조의 누대 받드는 대들보 아니어도 칠석날 은하를 가로지른 오작교 아니어도
재선충, 그 역병의 중산간을 죽음으로 지키리라
ㅡ 「장송(長松)의 말-난중일기 29」 전문
「난중일기」연작 시리즈 첫 번째와 최근작이다. 「난중일기」는 통영을 주 무대로 경남 전역을 배경 삼고 있다. 짙은 향토색과 역사성을 드러내고 있는 이 연작들은 李충무공의 『난중일기』 오마주인 셈이다. 「통영 세병관에서 적조를 아룀」은 남녘 바다를 죽음의 바다로 몰아간 적조(赤潮)에 대하여, 「장송의 말」은 남녘 산의 소나무를 죄다 죽음으로 몰아가는 재선충에 대하여 쓴 것이다. 적조와 재선충을 역병으로 규정하고, 이를 퇴치하지 못해 속수무책 당하고 있는 현실을 풍자하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긴박했던 전황을 사실적으로 기록했던 『난중일기』에 빗대어 오늘날 역병으로 피폐해 가는 산하의 처참한 모습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민초들의 생활고를 은유와 풍자로 고발하는 시편들이다. 여기서 우리는 시인의 역사인식과 공동체적 감수성을 만나게 된다. 눈에 띄는 점은 의고체의 서한문 또는 표문의 격식을 빌어씀으로 해서 상황의 엄중함을 드러내는 기법을 동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엄중함을 드러냄으로써 무력함과 엉뚱함도 도드라지게 하는 의외의 효과를 낳게 한다. 그리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속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또 적조 대책을 대감께 호소해 보지만 기껏해야 ‘벽방산의 황토’나 ‘한차례 태풍’에 의지해볼 수밖에 없는 처지라든가, 직접 나서 ‘역병의 중산간을 죽음으로 지키’고자 하는 각오를 드러낸 것은 ‘이중의 역설(逆說)효과’를 염두에 둔 것이라 짐작된다. 형식적으로는 가사시(歌詞詩)로 썼던 것을 사설시조로, 사설시조로 썼던 것을 다시 가사시로 변용해가면서 시조와 가사의 상호 보완적 미학을 실험하고 있다. 가사의 원심력과 시조의 구심력을 균형 맞추는 이 실험은 시의 보폭과 속도를 짧게 길게, 빠르게 늦게 조율하면서 한층 역동성을 불어넣고 있다.
이달균 시인은 앞선 시집들에서 증명했듯이, 시의 형식 실험과 존재 탐구를 꾸준히 해오고 있다. 바슐라르식으로, 언어 생성과 존재 생성을 동시에 추구함으로써 삶의 심원한 차원을 궁극으로까지 밀고 가는 중이다. 그의 대부분 시가 새롭고, 꿈틀거리는 약동으로 다가오는 것은 이 같은 노력에 터 잡은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런가 하면 신작시 「후투티가 오는 저녁」은 내일의 변화에 대한 ‘예감’으로 다가온다.
커피와 음악이 무료해지는 늦은 오후
후후훗! 하고 운다는 새 이름 후투티
돌아온 인디언처럼 화관무花冠舞를 시작한다
갈아둔 이랑을 뛰어다니는 음표들
그 콩나물 대가리를 연신 쪼아먹다가
갸우뚱, 철새임을 잊고 사람과 눈을 맞춘다
노을이 시나브로 어둠과 몸을 섞어도
추장의 몸짓은 끝나지 않는다
대지의 신께 바치는 거룩한 제의祭儀의 춤
밥 딜런을 생각하다 존 덴버를 말하는
60대의 간이역을 깜박이는 기억들
후투티, 너의 GPS를 입력하며 길을 나선다
ㅡ 「후투티가 오는 저녁- LP음악카페 뱅뱅에서」 부분
시인은 어느날 저녁 무렵 LP음악카페에서 음악을 듣다가 ‘우연히’ 후투티라는 철새와 만난다. 머리 꼭대기에 있는 깃[羽冠]을 접었다 폈다 하며 논 이랑을 음표처럼 뛰어다니는 이 새를 보며, 인디언 추장이 추는 화관무를 떠올린다. 시인은 그 춤을 구경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에 사로잡힌다. 그때 흘러나온 노래는 밥 딜런 아니면 존 덴버의 것이지 싶다. 밥 딜런이 누구인가. 대중음악의 가사를 문학의 경지로 끌어올려 노벨문학상을 받은 전설적인 가수가 아닌가. 두 살 아래인 존 덴버는 계관시인으로 밥 딜런과 함께 미국의 포크 음악을 이끌었던 인물. 둘 다 주류에 맞서는 저항의 아이콘으로 깊은 인간애와 높은 예술성으로 세계인의 존경을 받는 음유시인들이다. 시인도 청춘 시절 두 음유시인의 노래에 심취했다. 지금은 기억조차 깜박거리는 60대 중반을 지나고 있는 시인은 후투티라는 ‘타자’를 우연히 보다가 짧은 눈맞춤을 하고, 후투티가 추는 춤을 ‘대지의 신께 바치는 거룩한 제의(祭儀)의 춤’으로 받아들인다. 후투티를 기억 속 GPS에 입력하며 길을 나서는 시인을 통해 앞으로 그의 시가 ‘신께 바치는 춤’과 같은 시가 되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이 시는 내용보다 ‘시간’과 ‘우연’ ‘타자의 시선’을 대하는 태도를 많이 생각하게 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삶을 지탱하는 신념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삶이란 것이 신념대로 펼쳐지지 않는다. 뜻밖의 사건, 즉 우연의 연속으로 인해 대처하기가 여간 쉽지 않다. 모든 우연에 대처하는 일관된 삶의 해법은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는다. 방법은 우연을 받아들이고, 우연과의 대화 속에서 신념과 조율을 모색함으로써, 그 순간순간들이 인식의 지평을 넓혀 주게끔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시는 그래서 ‘삶이 건네는 우연에 충실하라’는 은유의 메시지로 읽힌다. 베르그송에 따르면, 우리의 신념 체계 밖에서 도래하는 우연은 그 자체로 ‘사건’이며, ‘불안’의 속성을 지닌다. 그 불안으로 인해 사람들은 관성에서 벗어나는 모험을 시도하고, 새로운 세계로 나가는 단초를 마련한다. 문제는 우연에 나를 열어놓고 살아가는 삶과 자기 필연에 갇혀 살아가는 태도 차이가 삶의 생동감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등 뒤에서 무엇이 다가오는지 모른다. 그것은 미지의 순간이다. 그것은 나와 마주한 타인의 시선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시에는 우연을 받아들이는 시인의 모습이 무척 따뜻하게 다가온다. 다음 짧은 시편도 시간에 대한 사유로 읽을 수 있다.
늪은 태초부터
청산을 그려왔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같은 풍경은 없었다
나날이
새로워지는
노화가(老畫家)의 캔버스
ㅡ 「정진」전문
‘한 획 글자를 갈겨쓰면 나비가 날고 / 또 한 번 휘감아 돌면 설경에 봉황이 울던’(「혁필」, 『늙은 사자』) 난전의 노화가가 혁필을 그리는 장면과 오버랩된다. 이 시는 ‘자연은 태초부터 풍경을 그려왔지만 한 번도 같은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는 단순한 진리를 노화가의 예술혼으로 치환시킴으로써 ‘자연의 시간’에 ‘인간의 시간’을 단번에 새겨 넣는다. 발상이 웅혼(雄渾)하고 청신(淸新)하다. 들뢰즈가 『차이와 반복』에서 적어놓았듯, 사유 이론은 회화와 같다. 화가의 역량이 달라질수록 그 그림의 성격 또한 변하는 것처럼, 사유도 부단한 ‘반복’ 속에서 ‘차이’를 발생시킨다. 시인은 단아한 평시조의 품격 속에 제목처럼, 꾸준히 노력하되 새로움을 추구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연암이 조선 최고의 국풍으로 치켜세웠던 시인 이덕무는 “문인이나 시인이 좋은 계절 아름다운 경치를 만나면 시 쓰는 어깨에선 산이 솟구치고, 읊조리는 눈동자엔 물결이 일어난다. 어금니와 뺨 사이에서 향기가 일고, 입과 입술에선 꽃이 피어난다”(『이목구심서』)고 설파한 바 있다. 그가 밝힌 대로 “자신의 감정, 마음, 뜻, 기운, 생각을 가식적으로 꾸미거나 인위적으로 다듬지 않고, 진실하고 솔직하게 드러내 표현하는 것이 진정한 시의 미학”임을 이 시를 읽으면서 다시 상기하게 된다. 진부한 관찰에 심오함을 덧씌우려는 태도라든가, 무슨 말인지 모르게 비비꼬아 놓고 안개 속으로 사라져버리는 국적 불명의 랩 같은 시들이 득세하는 요즘, 절제된 표현과 감정의 과잉을 경계하는 정형시조의 미덕이 더욱 돋보인다. 마지막으로 대표시 「늙은 사자」를 보자.
죽음 곁에 몸을 누이고 주위를 돌아본다
평원은 한 마리 야수를 키웠지만
먼 하늘 마른번개처럼 눈빛은 덧없다
어깨를 짓누르던 제왕을 버리고 나니
노여운 생애가 한낮의 꿈만 같다
갈기에 나비가 노는 이 평화의 낯설음
태양의 주위를 도는 독수리 한 마리
이제 나를 드릴 고귀한 시간이 왔다
짓무른 발톱 사이로 벌써 개미가 찾아왔다
ㅡ 「늙은 사자」 전문
세 수의 단시조를 하나로 모아놓은 형태를 취한 이 시는 이달균 시조의 수작 중 수작이다. 시간이 멈춘 듯한 평원의 낯선 고요 속에 한 마리 늙은 사자가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먼 하늘을 응시하고 있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늙은 사자의 모습은 오히려 담담해서 더욱 숨 막히게 다가온다. 시인은 상상의 눈으로 늙은 사자를 마치 자신의 눈앞에 마주하고 있는 듯 세밀하게 그려낸다. 광활한 초원이라는 공간과 나를 내어 드리는 고귀한 죽음의 시간이 교차하는 한낮. 멈춰 있는 듯한 화면을 천천히 클로즈업해보면 그 속엔 나비가 놀고 있고, 머리 위론 독수리가 날고 있고, 발톱 사이로 개미가 오르고 있는 것이 보인다. 죽음이 경건하고 품위 있고 고귀한 사건임을 이토록 생생하게 깨우쳐주는 시를 일찍이 보지 못했다. 시상의 전개도 물 흐르듯 하고, 내용도 한 번 읽으면 알기 쉽다. 그래서인지 이 시는 읽지 않았으면 모를까 두 번 읽지 않는 독자는 없으리라. 한참을 생각한 후 다시 읽게 하는 어떤 힘이 시 속에 있다. 삶과 죽음이 한 공간, 한 시간 안에서 진행되고 있는 상상 속 장면을 절제된 언어와 여백으로 오롯이 살려내는 시인의 공력이 실로 대단하다.
장경렬은 『늙은 사자』시집 해설에서 “시인이란 시간의 벽을 넘어 세계의 진상을 환하게 응시할 수 있는 혜안을 지닌 존재여야 한다.”며 “이 작품은 흠잡을 데 없다.” 평했다. 그러면서 언어는 벼랑에 익숙해진 시인을 어느 순간 벼랑 아래로 내몰 수 있으므로 ‘언어의 배신’을 특별히 경계할 것을 주문했다. 그의 조언에 십분 공감하면서 필자 역시 ‘소경이 갑자기 눈을 뜨게 되면 길을 잃는다.’는 역설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무슨 심사일까.
35년이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형식 실험과 존재 탐구란 긴 여정에서 시작(詩作)에 고투한 결과 그가 보여준 시적 성취는 실로 상대하다. 안주하지 않고 자신을 항상 절벽 앞에, 바람 속에 세우고 모험의 길로 나섰던 그의 손에 언제까지 ‘불타는 대동여지도’가 들려 있길 소망한다. ‘불타는 대동여지도’는 한때 그의 별명이었다. 도보 여행광인 시인 랭보에게 ‘바람구두를 신은 사나이’란 별명이 붙여졌듯, 여행을 하도 많이 다녀 모르는 곳이 없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시의 뼈대는 길에서 가져왔고, 시의 숨결은 바람에서 가져왔다’ 할 정도로 시인은 걷기와 바람 쏘이기를 좋아한다. 하여 ‘바람의 문장, 길 위의 시학’이 어쩌면 시인 이달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리라. 창작자로서 최고의 경지라 할 수 있는 ‘자득(自得)’의 경지에 다다른 이달균 시인에게 앞으로 또 어떤 시 세계가 펼쳐질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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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태 ■ 시인 1989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집 『비 갠 아침』 등이 있음. 〈오월문학상〉 수상. 《시와생명》 창간 및 편집주간 역임. 현재 《경남문학》 주간, 경남문화예술진흥원 재직 중. |
이달의시인 2011년 10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