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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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함기석 

이달의-시인-상단_202106.jpg

 

 

 

 


신작시


 

 

 

 

 소리 산책자 〔ilíps〕

 

 

 

 

  1

  우린 타원의 두 초점, 빈 둥지야

  밤의 공중에서 천둥이 천둥의 목소리로 침묵했다

  신의 혈육인 까마귀가 내 귀를 막았다

  꼭꼭 막아서 또렷이 다 들렸다

  어깨 찢긴 오동나무 따라 흰 음지로 걸어갔다

 

  2

  책들이 으르렁거렸다

  무지해서 이미 읽힌 갈기 무성한 사자들

  톱밥이 줄줄 새는 구멍 뚫린 자루야 사람은 아름다운 흉몽들

  빛이 하지도 않은 말이 하지도 않아서

  어두운 눈들이 떠다녔다

 

  3

  무쇠 닻과 나와 죽은 봄을 동시에 바다에 던지면

  누가 영원히 안 떠오를까

  넌 모르지? 신의 양말이 왜 짝짝이 얼룩말인지

  산책로 남쪽 항구에서 비옷 차림의 외다리 컴퍼스가 걸어왔다

  북쪽으로 걸어가며 내 눈을 찔렀다  

 

  4

  책은 불안한 뇌, 불길한 시한폭탄이야

  컴퍼스가 내 목발에게 어두운 혀로 더 어둡게 속삭였다

  너는 F1 나는 F2, 생사 혹은 연인

  땅에 박힌 목발이 하늘하늘 천둥이 사는 곳으로 자라났다

  뒤돌아보니 발자국마다 머리칼이 우수수 빠져 길을 덮고 자라났다

 

  5

  담에 박힌 박카스 유리들이 푸드덕 날개 투명한 새가 되어

  내 눈을 향해 날아왔다

  땅에 붉은 타원들이 겹겹 작도되었다

  신과 인간의 거리 합, 기울기 m을 측량 중인 저 검은 사제 신부

  내 귀를 만졌다 유골함이고 재가 흘렀다

 

  6

  눈을 감았다 벼랑이 된 내 등에

  썩은 비가 음의 접선방정식으로 기록되었다

  하늘은 검은 돛처럼 펄럭이며 끝없이 항해 중이었고

  나는 나를 눈 감았다

  감은 눈을 더 깊이 감아 해저의 어둠으로 눈을 떴다

 

  7

  세계는 우둔한 판관처럼 떠도는 노래

  우린 눈먼 나무들, 몸에 박혀 은빛으로 빛나는 수천 개의 도끼들

  우주에서 신의 삼각형 눈이 핏빛 타원 짐승으로 변형되고

  궤도 밖 비가 내장을 꺼내놓고 웃기 시작했다

  비, 비, 파란 비  

 

 

 

 

 

 

 

 

 물렁물렁 육면체

 

 

 

 

  점O. 아침

  육에서 육(肉)을 뺏더니 빈 그릇

  묵을 비운 제로가 남았다 쾅! 새로운 몸이 폭발했다

  햇살이 사람 살에 살을 맞대고 우는 곳으로 나는 걸어갔다

  아름다운 사람을 만났다 그녀는 입이 없고

  눈도 코도 없어 세계와 꼭 닮았다

  사랑이 꽃피었다 

 

  점P. 정오

  하늘에서 흰 촛농이 한 방울씩 떨어지는 소리

  누가 죽고 누가 태어나는 소리

  저수지가 상영 중인 영화 저수지의 개들, 나도 세계도 개였던 시절

  비둘기를 잡아먹었다 배가 고프면, 신과 함께

  인간의 이성은 무서운 폐가였다

  비가 내리면 집들이 어두운 야수로 돌변하던 빛의 폭정시대  

 

  점Q. 저녁

  몸에서 공포가 버섯처럼 계속 자라났다

  몸 바깥에서 흉몽이 사막의 선인장처럼 계속 자라났다

  불이 신의 살을 태워 내 육에 알렸다

  물이 나의 살을 저며 내 꿈에 알렸다

  주의하라 지금 읽는 이 문장은 정육점이고 고압선 철탑이니

  주의하라 지금 읽는 이 문장은 너를 물어 죽일 수 있는 악어이니

 

  점R. 자정

  육(肉)에서 육을 빼는 참혹과 황홀

  인간은 임신과 유산을 반복하는 검은 도형이고 흰 종이다

  백색 탄환이 되어 시방세계를 돌고 돌다 내 흉곽에 박히는 새들

  점X 점Y 점Z 그리고 실종된 점, 은폐되는 병

  밤은 거대한 아가리, 나를 삼켜라 세계는, 조용히 나를 지워라

  만상은 낙서된 환(幻)의 글자들이니

 

 

 

 

 

 

 오해의 오차

 

 

 

 

  조심조심 불을 만지면서 몸을 나누었다

  곱했다 뺐다 제거된 상수는 와삭와삭 얼음과 으깨 먹으며

  남은 날 제거했다 슬픔 때문에 목에 가시가 걸린 장미

  끓는 포트를 열면 증발 중인 숲, 너는

  유리잔에 따르면 검은 모래가 사르르 쏟아지는 세계

  기억을 태우면 살갗이 넓게 벗겨지는 밤하늘, 망국의 지도처럼

  흥건한 피였다 역사는 사랑은

  멍을 닦아주면 꿈에 붉은 날개 달린 글자들이 쏟아지고

  녹는 얼굴 녹는 입술 녹는 이빨 녹는 잠

  옥상 난간까지 파도가 번져왔다 빛, 빛, 나의 가지빛깔 파도

  멈추지 않는 우울, 점점 깊어지는 수심

  선한 시는 뾰족한 눈 무더운 눈 가시 돋친 세계의 신부가 된

  악의 꽃이다 얼음을 먹으며 고통을 나누었다

  곱했다 뺐다 0으로 양분했다 무한대로 분양되는 죽은 자의 얼굴들

  불을 만지면서 질겅질겅 어두운 생고기를 씹으면서

  남은 감정, 남은 피를 뺐다  

 

 

 

 

 

 

 


자선시


 

 

 

 

 뒤 보이스

 

 

 

 

  독이 퍼지는 하늘이다

  블루베리 케이크 옆 비틀어진 손목이고

  사각(死角)의 탁자다

  그 위에 놓인 검은 브래지어 찬 구름이다

  끓고 있는 빗물이고

  차도르 쓴 이란 여인의 슬픈 눈동자다

  몇 방울의 타액, 몇 점의 가지 빛깔 흉터들

  새벽안개 속 무연고 무덤이다

  아무도 없는 겨울 숲에 번지는 흰 총소리

  뒤의 깊은 뒷면

  납치된 피, 물속에서 피아노가 울고 있다   

 

 

 

 

 

 

 

 

 

 광야

 

 

 

 

  시인아, 파도를 노래하지 말고

  흰 종이 속에서 검푸른 파도가 솟구치게 하라  

 

  백지는 근육체고 핏줄다발이고 숨 쉬는 광야이니

  형용사의 숨통을 조여라

 

  이 숭고한 명사, 하늘은 찢어 앞치마로 써라

  이 독재자 명사, 혀는 찢어 흩날려라

 

  보라! 죽은 고양이 눈동자에 내리는 햇빛

  보라! 인간이 망친 땅을 뚫고 날아오르는 새싹들

 

  어떤 시는 빛이고 새, 인간의

  갇힌 꿈을 찢고 살을 찢어 심장을 꺼내는 사자

 

  시인아, 사자를 가두어 사육하지 말고

  갈기 무성한 사자가 사납게 광야를 달리게 하라

 

 

 

 

 

 

 

 

 

 

 

 

함기석 | 

1992년 《작가세계》 등단. 시집 『디자인하우스 센텐스』 『힐베르트 고양이 제로』 『오렌지 기하학』 등이 있음. 〈이상시문학상〉 〈이형기문학상〉 〈박인환문학상〉 등 수상.

 

 

 

​

 

 

 

 

 

 

 

시인론-상단-권온.jpg

 

 

 

고통의 극복 또는 갱신 가능성으로서의 “저 밖”을 찾는 방법

ㅡ 함기석의 시 세계

 

 

 

 

함기석의 시를 읽는 일은 모험에 가까울 수 있다. 그가 조성하는 언어의 모험은 1992년 이후 30년 가까이 진행 중이다. 시인의 시적 모험을 즐기는 이도 있을 테고 그 모험을 부담스러워하는 이도 있을 게다. 함기석은 한곳에 안주하지 않는다. 그는 늘 새로운 장소를, 낯선 공간을 찾아서 이동한다. 독자로서는 시인이 이번에 소개하는 시들을 방문하는 일도 모험일 수 있다. 함기석을 만나는 일은 습관에 익숙한 자신을, 타성에 젖은 스스로를 깨뜨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테다. 그의 시가 가리키는 길을 걸으며 갱신의 가능성과 조우해 보자.

 

 

(…)

 

2

 

책들이 으르렁거렸다

 

무지해서 이미 읽힌 갈기 무성한 사자들

 

톱밥이 줄줄 새는 구멍 뚫린 자루야 사람은 아름다운 흉몽들

 

빛이 하지도 않은 말이 하지도 않아서

 

어두운 눈들이 떠다녔다

 

(…)

 

5

 

담에 박힌 박카스 유리들이 푸드덕 날개 투명한 새가 되어

 

내 눈을 향해 날아왔다

 

땅에 붉은 타원들이 겹겹 작도되었다

 

신과 인간의 거리 합, 기울기 m을 측량 중인 저 검은 사제 신부

 

내 귀를 만졌다 유골함이고 재가 흘렀다

 

(…)

― 「소리 산책자〔ilíps〕」 부분

 

시인은 이 시에 1부터 7까지 숫자를 붙이고 일곱 개의 부분으로 구성하였다. 인용한 부분은 2와 5인데 우선 2를 보면 5개의 행이 각각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그곳에는 “사람”이 있고 “책들이” 있다. 사람은 “어두운 눈들”로 책을 읽고 “아름다운 흉몽들”을 꿈꾼다. 사람이 읽는 책에서는 “갈기 무성한 사자들” 또는 역동적인 상상력이 뛰쳐나오기도 한다. 거기에는 어두운 눈과 대비되는 “빛”이 있고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도 존재한다. 다음으로 5를 보면 5개의 행이 개별적으로 분리된 상황은 2와 동일하나 여기서는 각각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데 치중하기보다는 연속적인 흐름을 형성한다. 2와는 달리 5에는 시적 화자 ‘나(내)’가 등장한다. “담에 박힌 박카스 유리들”은 날카로운 공격성을 지닌 채 “투명한 새가 되어 / 내 눈을 향해 날아왔다” 이어지는 “땅에 붉은 타원들이 겹겹 작도되었다”는 유리에 찔린 눈에서 흘러내리는 피로 이해할 수 있다. “검은 사제 신부”가 “신과 인간의 거리 합”이나 “기울기 m을 측량 중인” 까닭은 무엇인가? “사제” 또는 “신부”는 “신과 인간” 사이를 매개하는 존재이므로 양자의 거리를 합하거나 기울기를 측량할 수 있다. 여기에서 “사제 신부”를 수식하는 “검은”은 형용사 “검다”의 활용형이다. “검은”에 내재하는 의미가 ‘죽음’이라고 할 때 “유골함”이나 “재”와의 연결은 자연스럽다.

 

 

점O. 아침

 

육에서 육(肉)을 뺏더니 빈 그릇

 

묵을 비운 제로가 남았다 쾅! 새로운 몸이 폭발했다

 

햇살이 사람 살에 살을 맞대고 우는 곳으로 나는 걸어갔다

 

아름다운 사람을 만났다 그녀는 입이 없고

 

눈도 코도 없어 세계와 꼭 닮았다

 

사랑이 꽃피었다

 

 

점P. 정오

 

하늘에서 흰 촛농이 한 방울씩 떨어지는 소리

 

누가 죽고 누가 태어나는 소리

 

저수지가 상영 중인 영화 저수지의 개들, 나도 세계도 개였던 시절

 

비둘기를 잡아먹었다 배가 고프면, 신과 함께

 

인간의 이성은 무서운 폐가였다

 

비가 내리면 집들이 어두운 야수로 돌변하던 빛의 폭정시대

 

(…)

― 「물렁물렁 육면체」 부분

 

함기석은 4개 연의 서두에 각각 “점O. 아침”, “점P. 정오”, “점Q. 저녁”, “점R. 자정” 등을 붙이고 네 개의 부분으로 구성하였다. 시인이 각각의 연에 붙인 소제목을 보면 ‘O→P→Q→R’의 순차적 질서를 이루고 동시에 ‘아침→정오→저녁→자정’의 또 하나의 순차적 질서를 형성한다. 그는 이 시에서 ‘점’과 ‘.’을 활용하고 ‘물렁물렁 육면체’라는 제목을 붙임으로써 수학적인 체계 또는 구성을 시도하고 있다. 함기석은 특정한 시간을 자신만의 색채로 다채롭게 형상화하였다. 시인이 바라보는 “아침”은 시적 화자 ‘나’와 “아름다운 사람”으로서의 “그녀”가 “꽃피”우는 “사랑”의 시간이다. 그에게 아침은 “세계” 그 자체와 다르지 않았다. 또한 함기석에게 “정오”는 시적 화자 ‘나’가 “세계”와 함께 “개였던 시절”을 가리킨다. 정오에는 “누가 죽고 누가 태어나는 소리”가 들렸고 “배가 고프면”, “비둘기를 잡아먹었”던 처절한 시간이다. 그때 ‘나’는 “신과 함께”한다는 거룩한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했으나, “비가 내리면 집들이 어두운 야수로 돌변하던 빛의 폭정시대”는 ‘나’에게 “인간의 이성은 무서운 폐가였”음을 알려줄 뿐이었다. 시인에게 정오는 이성이 작동하지 않는 본능의 시간이고 이는 사랑의 시간으로서의 아침과 극적으로 대비된다.

 

 

조심조심 불을 만지면서 몸을 나누었다

 

곱했다 뺐다 제거된 상수는 와삭와삭 얼음과 으깨먹으며

 

남은 날 제거했다 슬픔 때문에 목에 가시가 걸린 장미

 

끓는 포트를 열면 증발 중인 숲, 너는

 

유리잔에 따르면 검은 모래가 사르르 쏟아지는 세계

 

기억을 태우면 살갗이 넓게 벗겨지는 밤하늘, 망국의 지도처럼

 

흥건한 피였다 역사는 사랑은

 

멍을 닦아주면 꿈에 붉은 날개 달린 글자들이 쏟아지고

 

녹는 얼굴 녹는 입술 녹는 이빨 녹는 잠

 

옥상 난간까지 파도가 번져왔다 빛, 빛, 나의 가지빛깔 파도

 

멈추지 않는 우울, 점점 깊어지는 수심

 

선한 시는 뾰족한 눈 무더운 눈 가시 돋친 세계의 신부가 된

 

악의 꽃이다 얼음을 먹으며 고통을 나누었다

 

곱했다 뺐다 0으로 양분했다 무한대로 분양되는 죽은 자의 얼굴들

 

불을 만지면서 질겅질겅 어두운 생고기를 씹으면서

 

남은 감정, 남은 피를 뺐다

― 「오해의 오차」 전문

 

수학적인 체계나 구성을 지향하는 함기석의 면모는 이번에도 여전하다. 이 시의 제목 “오해의 오차”와 14연 또는 14행으로 간주할 수 있는 “곱했다 뺐다 0으로 양분했다 무한대로 분양되는 죽은 자의 얼굴들”에 주목해 보자. ‘오차’, ‘곱하기’, ‘빼기’, ‘0’, ‘양분’, ‘무한대’, ‘분양’ 등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수학적인 체계나 구성은 탄탄하다. “조심조심 불을 만지면서 몸을 나누었다”라는 1연 또는 1행과 “녹는 얼굴 녹는 입술 녹는 이빨 녹는 잠”이라는 9연 또는 9행은 ‘나’와 ‘너’의 “사랑”을 감각적으로 형상화한다. 시인은 격렬한 “사랑” 또는 “역사”를 펼쳐 보이는데 그러한 사랑이나 역사의 과정에는 다양한 부정적인 요소가 개입되곤 한다. 가령 “슬픔”, “망국”, “피”, “멍”, “우울”, “수심”, “악의 꽃”, “죽은 자의 얼굴들” 같은 것들이 떠다니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시”가 있고 무엇보다도 “세계”가 존재한다. 그는 작품의 마무리에 해당하는 16연 또는 16행에서 “남은 감정, 남은 피를 뺐다”라고 진술함으로써 얽히고설킨 “오해의 오차”를 해소했음을 밝히고 있다. 축하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시인아, 파도를 노래하지 말고

흰 종이 속에서 검푸른 파도가 솟구치게 하라

 

백지는 근육체고 핏줄다발이고 숨 쉬는 광야이니

형용사의 숨통을 조여라

 

이 숭고한 명사, 하늘은 찢어 앞치마로 써라

이 독재자 명사, 혀는 찢어 흩날려라

 

보라! 죽은 고양이 눈동자에 내리는 햇빛

보라! 인간이 망친 땅을 뚫고 날아오르는 새싹들

 

어떤 시는 빛이고 새, 인간의

갇힌 꿈을 찢고 살을 찢어 심장을 꺼내는 사자

 

시인아, 사자를 가두어 사육하지 말고

갈기 무성한 사자가 사납게 광야를 달리게 하라

― 「광야」 전문

 

이 시는 함기석이 독자들을 위해서 선택한 작품이다. 시인의 시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작품으로 보아도 무방할 테다. 우리들의 기억 속에 가장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는 ‘광야’라는 제목의 시는 아마도 이육사의 작품일 게다. 독자들은 이제부터 함기석의 ‘광야’를 새롭게 위시 리스트(wish list)에 등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번 시를 이해하려면 일차적으로 “시인”, “흰 종이”, “백지”, “형용사”, “명사”, “인간”, “시”, “꿈” 등의 어휘에 주목해야겠다. 시인은 흰 종이 또는 백지 위에 형용사나 명사 같은 언어를 활용하여 시 또는 인간의 꿈을 펼치는 중이다. 이육사의 「광야」가 그러하듯이 함기석의 「광야」도 꽤나 역동적인 시이다. 독자로서는 “살을 찢어 심장을 꺼내는 사자”가 “사납게 광야를 달리”는 장면에 집중해야겠다. 생생하게 살아있는 시, 불타오르는 미래의 시가 여기에 있다.

 

신작시 3편을 중심으로 함기석의 시 세계를 살피었다. 그의 시편에서 가장 돌올하게 떠오르는 키워드로는 ‘세계’가 있다. 시인은 「소리 산책자〔ilíps〕」, 「물렁물렁 육면체」, 「오해의 오차」 등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세계’라는 단어를 활용하였다.

헬렌 켈러(Helen Keller)는 세계와 관련하여 이런 언급을 남겼다. “세계는 고통으로 가득하다. 세계는 또한 고통의 극복으로 가득하다.(All the world is full of suffering. It is also full of overcoming.)” 헬렌 켈러의 진술에 따르면 세계는 이중적인 속성을 지닌다. 그것은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동시에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계기로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영국의 작가 톨킨(J. R. R. Tolkien)에 따르면 “세계는 당신의 책과 지도 안에 있는 게 아니라 저 밖에 있다(The world is not in your books and maps, it’s out there.).” 톨킨의 언급한 저 밖이 정확하게 어디인지 아는 이는 아마도 없을 테다. 우리는 다만 진정한 세계가 위치한 저 밖을 찾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기 위해서 함기석의 시를 부지런히 읽어 보는 일도 나쁜 선택은 아닐 것이다.

 

 

 

 

권 온 ■ 문학평론가

2008년 《문학과사회》 평론 등단. 문학박사.

 

 

 

 

 

이달의시인 2021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