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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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권기덕 

닫힌 방에서 이성을 거부한 자들이 창조한 그림자들

 

 

 

 

 

# 숲

 

문을 열자 문이 닫혔어

 

코가 사라지고 눈이 멀어졌어

 

입은 잎사귀로 변했고

변해 가는 얼굴빛에 새들이 내려앉았어

 

얼굴은 작은 달이 되어 떠오르기 시작해

 

창문을 열어줘, 제발

내가 나를 벗어날 수 있게

 

어두워지지 않을 만큼 어두워질 테야

 

손톱은 벽 속의 벽을 할퀴었고

발은 물고기 꼬리로 변해 갔어

 

네 가슴에서 새 울음소리가 들려

 

# 비상구

 

너는 시계를 던졌고

나는 내 아름다움을 던졌다

 

우리는 비상구 계단을 내려오며

눈이 내리는 바닷가에 대해 얘기했다

 

계단을 내려가면

역진화가 시작될 수도 있어

 

내려온 계단들은 어느새 흘러내렸고

공간은 물소리로 채워진다

젖은 그림자들이 젖은 손을 빠뜨린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죽은 잠자리는 왜 날아다니는 걸까?

 

나는 슬픔이 없는 유희에 빠져 허우적댔다

 

# 광장

 

출입구가 없는 공간에서 담은 어떻게 쌓아야 합니까?

 

어제로 돌아가면 됩니다

어제로 돌아간 뒤, 다시 그 전날로 돌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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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고 이별이 되돌아오겠죠

어쩌면 짐승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럼 제가 본 오늘의 아름다움은 사라질까요?

 

아름다움은 출입구가 없습니다

 

절반이 사라진 그림자가 슬퍼 보입니다

 

# 창고

 

어둠 속에 폭설이 내린다

 

손가락을 던지고

거짓말을 만들고

자르다 만 귀를 내버려 둔 채

 

그림자 집을 짓는다

 

기하학적인 도형들을 훔쳐

투명물고기가 된다

 

설야(雪夜)는,

 

묻어야 할 것과 묻힐 것에 관한

무의식적인 보고서

 

자작나무 우듬지의

새 그림자에 나를 겹쳐본다

 

선반 위에 펭귄들이 가득하다

 

# 피팅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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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그녀가 AI 옷을 입는다

 

오늘도 주문서를 받아들고 절망한다 귀는 커질 만큼 커졌고 눈은 밝아질 만큼 밝아졌는데 왜 날지 못하는 걸까? 주문서를 찢는다 주문들이 흩어진다 주문을 해결할 수 있는 주문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잊을 수 없는 타인의 슬픔도 주문할 수 있나요? 타인인 척 행동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신체를 보다 인간적으로 변환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AI 고양이를 데리고 AI 나무 아래 슬픈 AI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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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사장

 

완성되지 못한 방은 예술입니다

 

시멘트로 둘러싸인 공사장 안에서 우리는 한 마리 늑대처럼 울부짖습니다 해가 진 뒤엔 더 쓸쓸한 어둠이 찾아올 테니까요

 

바닥에는 합판과 각목, 철근들이 널브러져 있지만, 곧 시멘트와 함께 오브제가 될 것입니다

 

마치 당신 몸처럼요

 

어쩌면 당신은 완성되지 않는 편이 나을지도 모릅니다

건너편 상점들로 가득한 건물을 보십시오

 

완성된 방은 노동일 뿐입니다

 

노동을 폄하하는 게 아닙니다 당신의 그림자는 예술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오늘도 귀를 자르고 입을 지운 채 얼굴 없는 얼굴이 됩니다

 

공사장 옆 공터에서 해바라기꽃이 쳐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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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덕 ㅣ

2009년 《서정시학》 시, 2017년 《창비어린이》 동시 당선. 시집 『P』가 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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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9년 0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