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김준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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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
티베트와 같은 고지의 어린이 중 몇몇은 시선이 아주 먼 곳까지 자란다. 단 한 곳만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시선이 자라면 자랄수록 아이들은 눈에 힘을 주지만 끝내 아득히 먼 곳에 이르면 눈은 힘을 잃는다. 밑줄처럼, 길게 그을수록 힘을 잃는 밑줄처럼 모든 것이 중요해서 중요한 것이 하나도 없어지는 순간 눈이 멀게 된다 그 후부터 눈이 먼 아이는 눈을 감아버리고 그 어린이가 끊어버린 긴 시선은 세상을 떠돌다가 ‘죽음’만을 생각하고 있는 한 시인의 시를 이루는 핏줄이 된다. 그런 핏줄이 옹골차게 박혀 있는 시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오랜 시간 자리를 잡게 된다.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도 피의 성질을 간직한 채로 사람이 더는 사람이 아닌 상태까지 도달할 수 있는 긴 활주로가 된다. 그 위를 달려 아주 높은 곳까지 날아오르는 데 성공한 몇몇 영혼들을, 눈이 먼 어린이가 본다. ‘너는 나로구나’ 오랜 시간 어둠 속을 떠돌며 어둠에 지칠 때마다 그렇게 하나, 둘 보이는 영혼에 의지해 어린이는 어둠 속에서 변성기를 겪고, 어둠 속에서 수염을 밀고, 어둠 속에서 세수를 하고 어둠 속에서
유리창에 맺힌 빗방울 그림자들이
우리를 덮쳤다, 우리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점박이 인종이었다
“자?”
다음은 침묵이었으므로
글은 마치 눈먼 티베트 아이의 끊어진 시선처럼
빗소리 속을 떠돌았다
팔베개의 피가 통하지 않을 때까지 너는 잤고
나는 내가 아닌 느낌이 들었다

김준현 ㅣ
201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2015년 〈창비어린이 신인문학상〉 동시 등단. 시집 『흰 글씨로 쓰는 것』, 동시집 『나는 법』이 있음. 〈문학동네 동시문학상〉 수상.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9년 07월
